기사도 기자만큼 겸손해야 한다

문장 어순을 지켜 읽기 쉽게 쓰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

by 류재민

기자는 겸손해야 하지만, 기사도 겸손해야 합니다. 기자의 겸손과 기사의 겸손이 어떤 차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자가 겸손하면 기사도 겸손하게 쓰는 것 아니냐는 건데요.

물론 그럴 확률이 높긴 합니다. 다만 겸손을 지키는 건, 겸손을 지니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도 실수는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기자의 겸손은 심신 수련과 단련으로 지킬 수 있지만, 기사의 겸손은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기사는 문장 어순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문장의 기본 순서라고 배웠습니다. 중학교에 가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5W1H’를 배웁니다.


영어나 중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말과 어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배탈이 나서 병원에 다녀왔대. 철수가 어제’라는 문장을 보면요.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어딘가 어수선하고, 어색하지 않나요?


이렇게 쓰면 어떨까요? ‘철수가 어제 배탈이 나서 병원에 다녀왔대’ 훨씬 부드럽고 전달력도 좋지 않나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어순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도 이 어순대로 작성해야 독자들이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특히 시작 문장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문장의 첫머리에 가장 많이 오는 항목은 바로 화제어나 주어다.
그래서 이 항목이 너무 길거나 다른 항목 속에 파묻혀 있어서 찾기 힘들다면 문장은 읽기 힘들어진다.
<출처> 어순은 위대하다: 문장의 깃발과 메시지의 초점 : 네이버 포스트


이미 그려진 도화지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보다, 처음부터 백지에 그리는 게 더 쉽고 빠를 때가 있습니다.

칼럼이나 르포 기사를 쓸 땐 기술적으로 어순 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진 이유를 내부 개혁과 쇄신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라는 문장을 보면요. ‘내부 개혁과 쇄신이 약해서였을까’라는 의문문으로 시작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보 전달만 목적으로 하는 소위 ‘스트레이트 기사’는 기본 어순을 지켜야 정확한 정보를 독자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문장의 어순이 뒤죽박죽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사를 보는 독자들은 기자를 건방지다고 여기기 십상일 겁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복문보다 단문(短文)으로 쓰는 것입니다. 또 수동형보다는 능동형으로 써야 독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중견 기자들도 이런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 습관이 몸에 배서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누가 지적한다고 해서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닙니다. 자각하고, 인식하고,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오랜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신입기자들의 습득력이 더 빠를 지 모릅니다. 이미 그려진 도화지의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보다, 처음부터 백지에 그리는 게 더 쉽고 빠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걸 극복해야 독자로부터 신뢰받고 인정받는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만 알고 이해하는 기사는 ‘기사’가 아닙니다. 읽기 쉽게 쓰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이고, 겸손입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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