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나 하는 받아쓰기를 기자가 하다니요

추가 취재와 후속 보도로 실체적 진실 알려야

by 류재민

초등학교 2학년인 제 아들은 매주 받아쓰기 시험을 봅니다. 시험 전날, 학교에서 준 프린트물을 보고 연습을 하는데요. 집에서 연습할 때는 백 점인데, 막상 시험을 보면 한두 개씩 틀립니다. 뭐, 그래도 한두 개만 틀리는 게 어딥니까. 하하 ;;


기자도 받아쓰기를 자주 합니다. 대표적으로 기자회견을 꼽을 수 있는데요. 기자회견 주최 측 주장이나 설명을 받아 적은 뒤 그걸 토대로 기사를 씁니다. 다만 불러주는 대로만 쓰는 기사는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내용에 살을 붙여야 기사를 키울 수 있습니다. 기사에 살을 붙이려면 추가 취재가 필요합니다. 우선은 회견의 배경과 목적을 살펴봐야 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기자를 모아놓고 회견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물론 주최 측이 회견이나 회견문을 통해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그들)의 얘기를 듣고 나면 기자는 질문을 통해 회견의 기획과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반대편에 있는 이해 당사자 이야기도 들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명확한 사실관계나 실체적 진실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픽사 베이(Pixabay)

문제는, 불러주는 대로 받아만 쓰는 기자들입니다. 회견문만 대충 정리해서 ‘바이라인(기자 이름)’을 달아 보도하는 기자들이 많습니다.


한번 나간 기사는 상당한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습니다. 더구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려진 기사는 시간이 흘러도 남아 여기저기 떠다닙니다. 뒤늦게 정정보도를 하고, 삭제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활시위를 떠난 화살입니다. 볼 사람은 다 봤을 텐데, 무슨 수로 원상복구와 피해 보상을 하겠습니까.


하나 더 말씀을 드리면요. 살을 붙여 기사를 썼어도 ‘완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분석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거나 전망하는 후속 기사를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한다고 했을 때 무조건 홍보만 할 게 아닙니다. 국민과 지역민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분석하고 전망해야 합니다. 특히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은 없는지 확실히 따져봐야 합니다.


가령 도시재생이나 개발 사업을 한다고 하면, 주거 환경 개선과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요. 사업 대상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이주대책이나 보상은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 환경 피해는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나 환경단체의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 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전면 재검토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자의 역할이고, 사명이니까요. 기사 하나를 쓰고 나면 하루 일 다 끝냈다는 듯 거들떠보지 않는 기자들이 있는데요. 기자로서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받아쓰기 기사는 초등학교 고학년도 며칠만 가르치면 씁니다. 받아쓰기와 구구단은 초등학생 때 떼는 겁니다.

언론사는 중요하다고 여기는 뉴스를 한 번 다루는 데 그치지 않아요. 내일도, 모레도 여러 건의 보도를 계속해서 이어 갑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연이어 보도하는 뉴스가 온 국민이 아는 중요한 뉴스가 되는 것이지요. -구본권 글, 안병현 그림 「뉴스, 믿어도 될까?」 94쪽


추가 취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귀찮거나, 할 줄 모르거나.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기도 하고, 기사를 못 쓰면 데스크(선배)한테 혼나면 어쩌나 겁도 나겠죠.

초2 제 아들이 매주 보는 받아쓰기 프린트 자료입니다. 받아쓰기는 초등학교 때 떼는 겁니다.


명색이 기자인데, 마냥 받아쓰기만 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받아쓰기만 하는 기자는 성장과 발전이 더디거든요. 그런 기자가 많아지면, 사회도 성장·발전할 수 없습니다. 어려워도 써야 합니다. 두려워도 도전하고, 노오오오력해야 합니다. 숙련된 기자가 많아지고, 기사의 질이 향상될수록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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