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란 무엇인가

육수와 양념장은 또 뭐란 말인가

by 류재민

잔치국수란 무엇인가. 결혼식 단골 메뉴였고,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시절 집안 경사가 있으면 동네 사람들 모아놓고 푸짐하게 한 사발 삶아 먹던 '친 서민적' 한 끼 음식 아니던가. 말 그대로 잔칫날 먹는 국수가 '잔치국수'인 것이다.


며칠 전 일이다. 소고기가 든 미역국을 ‘최애’하던 아들이 입맛이 바뀌었다고 그랬다. 나는 "그럼 요즘 너의 입맛은 뭐냐"라고 물었고, 녀석은 “잔치국수”라고 대답했다.


“뭐, 그까이꺼 대~충 냄비에 물 붓고 끓으면 국수 집어넣으면 되는 거 아녀. 아빠가 일요일에 배 터지도록 만들어줄 테니 걱정 붙들어 매!” 호언장담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간은 점점 다가와 약속했던 '그날'이 왔다. 녀석이 와서 물었다.


“아빠, 잔치국수는 언제 먹어?”
“으응?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뭐라고? 잊어버리고 있었단 말야?”
“잊어버릴게 따로 있지. 잊어버리긴! 점심때 해 줄게. 아침부터 면 먹으면 소화 안 돼.”


‘아침부터 면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됐는진 모를 일이다. 단지, 소나기는 피하고 볼 일이었으니. 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검색창에 적은 키워드는 ‘잔치국수’.


잔치국수를 끓이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이 수천 개는 되는 듯했다. 백종원 레시피부터 처음 보는 유튜버까지 다양한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가장 짧은 영상을 택했다. 길면 지루하고, 금방 잊는다. 잔치국수는 정말 ‘그까이꺼 대충’ 끓이면 되는 거니까.


4분짜리 영상을 보고 주방으로 나왔다. 재료의 집안 소재 유무부터 살펴야 했다. 없는 재료는 마트에 가서 사 와야 하니까. 다행이다. 모든 재료가 구비돼 있었다. 다시마와 새우, 멸치 등이 든 다시팩도 냉장고 한쪽에서 육수의 바다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전날 시골집에서 얻어온 당근과 호박도 출격 대기 중이었다.


김치냉장고에서 발견한 다시팩 한 포를 꺼내 육수로 만들었다.

쾌조의 스타트였다. 일단 큰 냄비에 물을 가득 부었다. 아들의 배만 터지게 할 순 없으니. 딸과 아내, 그리고 요리사인 내 몫까지 4인분을 준비했다. 다른 한 냄비에서는 국수 삶을 물을 준비했다. 육수가 거의 끓여졌을 무렵, 국자로 떠 맛을 봤다. 싱거웠다. 다시팩을 하나 더 넣을까, 아니다. 짠 것보다 싱겁게 먹는 게 좋다. 어차피 양념장을 넣을 거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국수 냄비에서도 물이 보글보글 끓으며 허연 거품을 일으켰다. 찬물을 반 컵 넣어 눌렀다. 유튜브에서는 두 번을 추천했지만, 한 번이면 된다. 왜냐고? 내 맘이다. 이윽고 95% 작업이 끝났다. 양념장만 만들면 된다. 아침에 마른 김에 찍어 먹던 간장 양념장이 남았다. 옳지, 이걸로 양념장을 대체하면 된다. 준비 끝!


화룡점정의 시간이다. 참외와 포도와 방울토마토를 디저트 접시에 넣고 장식하니, 이보다 더 환상적일 수 없다. 외출했던 아내가 정확히 시간을 맞춰 들어왔다. 마치 집안 어딘가에 숨어있던 것처럼, 테이블 세팅이 끝나는 순간, 쨘~하고 나타났다.


이제 먹을 차례다. 아들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10분 만에 끝난 나의 초스피드 요리의 별점이 매겨질 순간이다. 아들과 딸, 아내가 일제히 국물 맛부터 봤다. 아들이 불쑥 말했다. "아빠, 이게 잔치국수야? 학교에서 먹어본 거랑 다른데?" "음식은 만드는 사람마다 손 맛이 다른 법이여."


아들부터 차례로 ‘미슐랭’ 별점(5점 만점)을 말했다. “두 개 반”
“딸은?” “음.. 나도 그냥 두 개 반으로 할게.”
“헐!”
“당신은?” “아.. 말 안 하면 안 돼?”
“아, 진짜!!!!!!!” 짜증이 만발했다.
“알았어. 세 개 줄게, 세 개.”


별표 세 개를 고마워해야 하나.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육수가 문제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남해 바다 한복판에 멸치랑 새우 몇 마리 헤엄치는 꼴이었으니. 싱거웠다. 싱거워도 그렇게 싱거울 수가 없었다. 양념장을 믿어봤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마나 맹물인지, 양념장을 넣어도 넣어도 간이 맞춰지지 않았다. 그러다 양념장이 똑, 떨어졌다.

네 그릇을 퍼 냈음에도 이만큼의 육수가 남았다. 마치 남해바다 한 복판에 멸치랑 새우 몇 마리와 다시마가 둥둥 떠 있는 거 같다.


냉장고를 열어 신김치를 꺼냈다. “원래 국수는 김치랑 먹는겨.”
국수 가락에 김치를 얹어 먹고 난 아들이 말했다. “이건 좀 먹을만하네.”
“그럼 별점이 올라가나?” “아니.”
“그래도 과일은 맛있으니까, 좀 더 주면 안 돼?”
“사실, 그거까지 합해서 두 개 반이야.”
“헐!”
“그럼 국수는 몇이고, 디저트는 몇인데?”
“미안하지만, 국수는 1이야.”
아이들은 국수를 절반 넘게 남겼고, 그 남은 국수는 다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아, 잔치국수란 무엇인가.

아들과 딸은 내가 푸짐하게 덜어준 국수를 반 이상 남겼다. 그리곤 둘 다 방으로 들어갔다. 가서, 분명히 나를 씹을 뒷담화할 거다. 아내는 눈치를 보며 겨우 비웠다. 결국 두 아이가 남긴 국수와 혹시 몰라 여분으로 쟁여둔 국수까지 모조리 내 뱃속으로 치웠다. 분노의 흡입이랄까. 아, 잔치국수란 무엇인가. 육수란 또 뭐란 말인가.


아들은 다음부터 절대 잔치국수를 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확은 있었던 거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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