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 전화를 걸었을 때, 다행히 나와 통화했던 직원이 받았다. 전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양해부터 구했다. 출판사 직원은 아니라고, 괜찮다고 사무적으로 응대했다. 차라리 그렇게 대하는 태도가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에게 낫지 싶기도 하다. 직원은 내 원고가 다음 달 월간지에 실릴 예정이라고 했다.
아빠와 딸이 산책하며 주고받는 이야기가 진한 가족애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나. 가족애라. 그것도 진한? 나는 그녀의 말에 웃음이 빵 터질 뻔했다. 우리가 그렇게 진한 가족애가 있었던가. 고개가 35도 각도로 틀어지며 물음표 서너 개가 허공에 두리둥실 떠올랐다.
그보다 더 어이가 없던 건, 내가 쓴 글이 ‘가족애’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는 거다. 나는 딸과 산책하면서 기분 전환과 에너지 충전을 했다는 점, 딸이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부쩍 자랐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점, 딸 가진 아빠로서 느낀 부심을 글로 전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해몽이 탁월해 꿈처럼 들렸다.
어쨌든 나는 딸에게 카톡으로 “다음 달 월간지에 너와 나의 이야기가 실린다”라는 소식을 알렸다. 딸은 한참 후에 메시지를 확인하고, 빵이 펑, 터지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자주 쓰는 이모티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40대인 나는 그저 빙그레 웃고 말 따름이었다.
작가 정여울은 이승원 작가와 함께 쓴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이란 책 프롤로그에 40대에 들어선 작가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이제 40대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든다. ‘그때는 겁났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참으로 많아졌다. 20대에서는 견딜 수 없었던 아픔을, 이제는 견딜 줄 아는 노하우가 생겼다.
20대에는 순수하지만 편협했던 내가. 30대에는 무척 산만하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로워졌다. 30대를 거치면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것들, 20대에는 불가능했지만 30대에는 가능해진 수많은 것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후반으로 향하고 있는 나의 40대 전반전은 어땠을까. 나 역시 그때는 겁났지만, 지금은 괜찮거나 웬만한 두려움은 개나 줘도 될 만큼 단련됐는가. 아니, 난 아직도 시골길을 걷다가 셰퍼드인지 똥개인지 구분하지 못할 개들이 왕왕 짖으면 머리가 쭈뼛 설만큼 무서움을 느낀다.
단단히 옭아맨 철창에 갇혀 나오지도 못할 건데, 어쩌면 지나가는 사람이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난 그래도 그곳을 지날 때, 인간은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운 의성어를 목청껏 높일 때, 섬뜩함에 소름이 돋는다. 그건 비단 40대를 넘어 50대를 거쳐 60대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남의 눈치 전혀 보지 않고 남이야 어찌 되었건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 이런 눈치 없고 막가는 사람이 잘난 사람 대접을 받고 또 이런 사람들이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소리를 들으면 개들은 웃어. 웃지 않기가 힘들지. 그야말로 개수작이야. 사람들의 속담에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거야. 개의 말이 너무 건방졌다면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하지만 내 말을 틀어막지는 말아줘. *
느닷없이 ‘개’ 이야기로 빠졌는데, 기자도 독자들과 소통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작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단순한 ‘글로 생활자’라기엔 직업이 갖는 역할과 엄중함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래서 ‘기자 정신’과 ‘소명 의식’이 확고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바닥이 언론계라고 생각한다. ‘작가 정신’을 잊은 작가들이 문단계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처럼. 쓰되, 배워야 하고, 독자를 두려워하되,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걸 취재해야 하는 게 또 기자의 본분이리라.
그러니 글을 쓸 땐, 작가나 기자나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가져야 제대로 된 밥값을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정도의 비아냥을 들을지도 모를 터. 어쩌다 또 개 이야기로 빠졌는지. 글이 아주 개판이 돼 간다. 기왕 개판으로 흘러가는 김에, 개 이야기나 더해 보자. 그때, 내가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처럼.
내가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에서는 개를 많이 키웠다. 개를 키우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동네에선 아침부터 밤까지 개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멀리서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들릴 때도, 멀리서 오토바이나 차가 다가올 때도, 녀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르렁거리다 소리가 가까워질라치면 매우 크게 컹컹거렸다. 한 마리가 선창 하면 옆집, 뒷집, 건넌 마을까지 릴레이 경주라도 하듯 바통을 이어갔다.
녀석들은 새끼도 많이 낳았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 ‘복순이’도 열 마리를 낳은 적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눈도 못 뜬 새끼들이 어미젖을 한 번이라도 더 물려고 여린 몸뚱이를 달달 떨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중에도 힘이 센 녀석들이 어미젖을 차지했고, 약골들은 아예 한쪽으로 밀려나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그 녀석들이 애처로워 센 놈들 틈을 비집고 넣어주곤 했는데, 개들 어미인 복순이도, 내 어머니 오 여사도 그러지 말라고 했다. 동물의 세계에도 ‘질서’가 있고, 그 질서를 따르는 게 순리라는 듯.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란 그 치열함과 동시에 살벌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녀석들 가운데 일부는 라면 박스에 담겨 친척 집으로 보내졌고, 집에 남은 녀석들은 나와 동생들과 동무하며 자랐다. 녀석들은 똑똑하고 예의 바랐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낯선 사람에게 짖지 말라고 하면 가만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복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뒤란에 가봐도, 헛간을 찾아봐도. 동생들과 온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복순아, 복순아 목청껏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새끼들 키우기 힘들다고 야반도주했나, 개장수한테 끌려갔나, 다른 동네 마실 갔다 수캐와 눈이 맞아 따라나섰나. 복순이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오 여사에게 복순이의 거취를 물었더니 넌 몰라도 된다,고 했다. 좋은 곳으로 갔다고만 했다.
좋은 곳이라. 개들에게 좋은 데가 어디란 말인가. 새끼들과 같이 사는 집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일까. 그때 뇌리를 스치고 지난 장면. 동네 어귀 다리 밑에서 마을 이장님과 어르신 몇 명이 개를 잡는 모습을 흘깃 봤다. 긴 줄을 개의 목에 걸고 다리 난간에 묶는다. 그러면 개는 공중에 떠서 온몸으로 발버둥 치다 숨이 끊어진다. 마치 사형수를 교수형에 처하는 것처럼.
개의 몸통에는 볏짚을 씌우고 불로 그을린다. 아래에서도 나뭇가지와 불쏘시개 따위의 땔감으로 불을 지펴 개를 잡는 모습이 그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개중에 어른들 옆에 서서 그걸 구경하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 처절하고, 비정하며, 끔찍한 현장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다리 아래에서 매캐한 연기와 함께 누린내가 올라올 적에는 먼 길로 돌아갔다.
밤중에 달을 쳐다보고 짖는 개는 슬픈 꿈을 꾸는 개다. 이런 개들은 달을 향해 목을 곧게 세우고 우우우우 짖는다. 짖는 소리가 아니라 울음에 가깝다. 보름달은 가까워 보이고 초승달이나 그믐달은 멀어 보인다. 보름달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달이 점점 세상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
그날 복순이는 새끼들이 얼마나 생각났을까. 아니, 난 그날 다리 밑에 있던 개가 복순이가 아니길 바랐다. 차라리 달을 따라갔길 바랐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서 키우던 개들은 애완용이 아닌 다들 식용이었다. 애완이건 식용이건, 내가 개를 키우지도, 먹지도 않는 이유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베란다 문을 열고 목울대를 세워 짖어본다. 우우우우, 우우우우. 아랫집인지 윗집인지 쌍욕이 날아왔다. 뉘 집 개 XX가 잠도 안 자고 짖냐고. 달 보고 짖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