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by 류재민

퇴근해 돌아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은 부재했다. 아내는 회식이 있다고 했고, 두 아이는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신호는 썰렁한 공기를 통해 먼저 알 수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방에 들어가 바지를 벗고, 셔츠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오래 입어 늘어진 추리닝 바지를 입고, 반 팔 셔츠를 입고, 실내화를 신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방 안의 공기를 살폈다. 역시나 공허했다. 거실이나 부엌이나 방이나 공기의 두께와 결은 다르지 않았다. 저녁 일곱 시. 아내에게서 온 카톡에는 냉장고에 밥과 반찬을 해 두었으니 알아서 꺼내 먹으라는 ‘끼니 안내’ 문자였다.


냉장고 문을 여니 눈앞에 맨 먼저 들어온 건 일용할 양식이 들어있는 밀폐용기. 밥을 필두로 멸치볶음이며, 시금치 무침이며, 메추리알 조림이며,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위아래 칸에 나뉘어 정돈돼 있었다. 저 밥은 이른 아침 아내가 정성껏 씻은 현미를 압력밥솥에 안치고, 곧이어 요란하게 칙칙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와 뜸 들이고 김 빠지는 소리를 거친 다음, 어느 사찰에 갔다가 기념품으로 사온 나무 주걱으로 퍼 담은 것이리라.


나머지 밑반찬 역시 마트에서 사 오거나, 시골집에서 가져온 재료를 씻고, 데치고, 볶고, 조리고, 절여서 만든 것이리라. 어느 것 하나 온전한 완제품은 없었다. 간장이든 고추장이든 참기름이든 아내의 손이 한 번은 거쳤을 법한 찬이었다.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밥은 금세 따뜻함을 너머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데워졌다. 아침에 끓여놓은 미역국에 불을 달리고 반찬들과 함께 밥상을 차렸다. 혼자 먹기에는 많다 싶을 정도로 식탁 위가 채워졌다. 밥과 국과 반찬은 간도 잘 됐고, 입에 맞았다.


식탁은 진수성찬이나, 사람의 온기가 빠진 ‘나 홀로 식탁’은 쓸쓸함을 넘어 적막했다. 씹던 밥과 반찬이 한데 모이지 않고 모래알처럼 따로 놀았다. 백미가 아닌, 현미밥이라 씹어 넘기기가 어려운 거라고 애써 위무하기를 몇 번.


현관문 비밀번호 소리가 들린 건 내가 밥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이었다. 학원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딸은 논술과 줄넘기, 아들은 복싱장에 다닌다. 둘은 밖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왔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근처, 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정문 옆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 튀김까지. 순대는 간은 빼고 순대만 달래서, 튀김은 오징어랑 고구만, 김말이를 시켜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었는데, 맛이 아주 끝내주더라고. 녀석들의 옷에서는 분식집 특유의 기름 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다. 밥을 다 먹었는데도 군침이 돌고, 허기가 몰려왔다.

신나게 자랑을 마친 딸은 옷을 갈아입으러 제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출판사에서 걸려 온 전화가 떠올랐다. 아뿔싸. 다시 전화하겠다고 해놓고 깜박했다. 병원 진료를 보다가 냉큼 까먹고 말았다. 갱년기 증후군의 증상이 또 도졌다. 이놈의 건망증! 어따 써먹을 것이여!


전화는 다음 날 걸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열었다. 바탕화면에서 출판사에 보냈던 원고를 찾았는데, 없다. ‘내 문서’ 폴더에 있을까 봤더니, 거기도 없다. 혹시 몰라 ‘휴지통’을 뒤졌더니. 그게 왜 거기서 나왔을까. 아이고, 이놈의 건망증 참.


휴지통을 뒤져 복원한 원고의 제목은 ‘딸과 함께한 산책, 아빠는 설렘’이었다. 200자 원고지 20장 내외라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몇 문단 살을 붙였던 걸로 기억한다.


딸과 함께 산책하고 돌아와 쓴 글이었다. 나는 일요일 저녁이면 습관적으로 아파트 단지 앞,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천변 산책로를 걷는다. 조용히 걷다 보면 어디선가 불어와 맞는 바람이 신선하다. 상쾌함이 그만이다. 일주일 동안 묵었던 스트레스가 바람결에 날아가는 듯.


한발 두발 걸으며 새로운 일주일을 계획하고 설계하곤 한다. 그리고 맞는 월요일 아침 발걸음은 다른 요일보다 가볍다. 그렇게 휴일 산책은 나만의 ‘루틴’이 됐다. 아무튼 사색하기에 산책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병원장이 추천한 산책은 이미 하고 있던 거로군. 다만 ‘햇빛 아래서’ 대신 달빛과 별빛 아래서.

그날은 딸이 같이 가자고 현관 앞에 먼저 나와 있었다. 딸과 산책하러 나간다고 생각하니 떨리고 설렜다. 이 얼마 만인가.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까. 딸이 고맙기까지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아침에 비가 와서 쌀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따듯했다. 초가을, 저녁 공기는 집안의 공기처럼 무겁지 않았다. 고요하고 잔잔했다. 오랜만에 딸의 손을 잡고 산책로로 향했다.

가는 동안 딸은 주요 주간 일정을 설명했다. 화요일은 반 전원이 피자파티를 한다고 했다. 소방 글짓기에서 단체상을 탔더랬다. 점심시간 전 간식으로 피자와 콜라를 먹을 예정이라는데, 콜라는 액상과당이 많아서 먹지 않겠다고. 한두 잔은 괜찮다고 했지만, 딸은 그래도 내키지 않은가 보다. 만성 당뇨병 환자인 내게 얼마나 데었으면 그럴까 싶다가도. 뭐, 몸에 좋지 않은 건 안 먹는 게 좋지,라고 했다.

수요일은 체육활동이 있는 날이란다. 딸은 유독 체육을 좋아한다. 요즘 초등학교는 내가 다닐 때와는 달리 체육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걱정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살이 덜 찌고, 체력도 길러질 텐데. 교실에서만 앉아 있다가 급식 먹고, 중간중간 간식 먹고, 하교 후에도 학원에 가서 앉아만 있고, 집에 와서도 야식을 먹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줄넘기도 보내고, 복싱장을 보낸다. 나처럼 살찌지 말라고.


목요일은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체험학습 가는 날’이란다. 옛날 말로 ‘소풍’. 코로나19로 발이 묶였다 몇 년 만에 나들이를 간단다. 장소는 경기도 용인 민속촌. 한데, 민속촌이 우리가 알던 그 옛날 민속촌이 아니란다. ‘자이로드롭’ 같은 놀이기구가 있고, 공포의 ‘귀신의 집’도 있단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들뜨고 설렜을까. 친한 친구 5명이 한 조를 짰는데, 말로는 ‘환상의 조합’이라나. 문제는 남학생들로만 꾸려진 조가 내부 갈등으로 공중분해 된 것. 불가피하게 각 조에서 1명씩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딸이 속한 무리에 남학생 1명이 들어와야 하는데, 누가 같이 앉으려고 할지 걱정이 태산이란다. 버스 좌석에 2명씩 앉아야 하는데, 서로 앉지 않겠다고 미룰 게 뻔하다면서. 걸음 걸을 때마다 한숨을 퍽퍽 쉰다. 잘하면 땅도 꺼질 듯.


“우리 딸이 그 친구랑 같이 앉으면 안 될까? 그럼 친구들끼리 다툴 일도 없고, 그 애는 너한테 얼마나 고맙겠니? 혹시 알아? 그 애랑 좋은 친구가 될지.”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라 그런지, 아니면 단짝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어서인지, 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딸의 ‘절대 거부’ 사인에 크게 웃었다.

아직 오지 않은 걱정은 미리 하진 말라고 했다.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현명하게 판단해 주실 거야. 아빠가 우리 딸 조는 불만 없이 해 달라고 기도할게”라고 안심도 시켰다. 안심이 됐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지만, 뾰로통했던 얼굴은 다소 펴진 듯 보였다.


체험학습을 다녀온 다음 날은 금요일. 줄넘기 학원에서 피구를 하는 날이란다. 피구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라나. 피구를 하는 날에는 줄넘기 학원을 나오지 않던 친구들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인기 만점이라고. 피구를 하고 오면 다시 주말이 찾아올 테니, 딸에게는 신나는 하루일 터.


딸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사위가 어둑해졌다.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가는 길에 산책로에 있는 단골 커피숍에 들렀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딸은 민트 초코를 한 잔씩 주문했다.

커피숍 주인이 “따님인가 봐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옆에 있던 딸은 주인에게 배꼽 인사했다. 주인은 “딸내미가 얼굴도 이쁘고, 인사성도 바르네?”라고 단골에 예우 갖춘 칭찬을 건넸다. 나는 팔불출마냥 실실 웃었다. 옆에 있던 딸은 여러모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살짝 숙이거나 다른 쪽을 쳐다봤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컴컴했다. 그래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가로등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가로등보다 더 눈부시고,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쁘고 인사성도 바른, 딸이 옆에 착 달라붙어 있으니.

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어느새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정수리가 내 가슴팍까지 와 있었고, 아내와는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우리 딸 언제 이렇게 컸나?”하고 물으니 “아빠 몰래 컸지”라고 장난을 쳤다.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나오자. 아빤 우리 딸이랑 이렇게 오붓하게 걸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다. 딸 없는 아빠들은 무슨 재미로 살지 몰라.”


“나는 별로인데, 아빠만 좋은 듯. 딸 없는 아빠들도 나름대로 재미를 찾고 살 거야.”

“에이그, 우리 딸이 이제 아빠랑 농담 따먹기도 할 줄 아네.”


딸은 아무 말 없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의 보드라운 감촉이란. 그 손길에서 느껴졌던 따스함이란. 핏줄에게서 받은 에너지 충전이란. 그 기분은 글로라도 남겨둬야 했다. 그런데 당선작이 아니라고? 아, 그건 순전히 내 부족한 글솜씨 탓이리라.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너는 아픔이면서 그 아픔 낫게 하는 손이므로/ 서로 다른 길 가고 있을 때에도/ 서로 다른 곳 바라볼 때에도/ 네가 나를 살게 했다 **


*류시화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중 「어떤 사랑에서」에서 따옴.

** 앞의 시집「어떤 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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