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는 타인의 사랑이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매달리는 마음이 없는 상태가 최고의 정신 건강이고 부처님이나 성인의 경지다. 이렇게 되면 사람뿐 아니라 동물·식물·무생물·삼라만상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한다. *
살면서 부처님이나 성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랬으면 벌써 출가해 절에서 염주 걸고 목탁치고 있었을지도.
동식물이나 삼라만상과 관계를 맺고 대화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난 단지 사람과 대화를 통해, 그것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낯선 이들이라도, 하루속히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회복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병원에서 소개한 ‘우울증 자조 모임’에서였다. 우울증 자조 모임이 뭐냐면, 한마디로 ‘동병상련(同病相憐)’ 모임이다. 우울증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소통과 공감을 통해 일상으로 회복하는. 그런데도 있구나 싶어 신청서를 내고 방문했다. 모임 장소는 병원에서 가까웠고, 출입구 앞엔 ‘마음 다짐 상담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한 달 전, 중년 여성과 함께 병원에 왔던 젊은 여자. 이름이 ‘김민아’였던가. 그녀는 혼자 왔다. 내가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원탁 의자 한 귀퉁이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와 서로 마주쳤다. 1초였나, 2초였나. 아주 잠깐. 그 짧은 순간에도 그녀나 나나 병원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엉겁결에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담실 안에는 그녀 말고도 여자 두 명이 더 있었다. 내 뒤로 남자 한 명이 들어오면서 총 5명이 모임 인원이었다. 모임 진행은 상담소 대표 K가 맡았다. 내 또래의 커리어우먼처럼 보였는데, 그녀 역시 한때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산후 우울증을 겪었어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로 엄청난 고통의 나날이었죠. 우울한 건 기본이고, 항상 불안했어요. 수면장애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러다 보니 삶의 의욕이 사라지는 거예요. 집중력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는데 아이는 툭하면 보채고, 그러다 열이 나고, 정신없이 병원에 다녀오면 또다시 기운이 빠지고. 그런 날들이 1년 넘게 계속되더군요. 언제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에 아이랑 같이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그런 K 대표를 살린 건 남편이었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던 남편은 끼니때마다 집에 들어와 밥을 챙겼고, 아내가 약을 먹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확인했다.
“잠이 안 오는 불면의 밤에는 함께 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극진하게 대했어요. 제가 울고 있으면 말없이 눈물도 닦아주고. 그러다 자기도 같이 울고. 그렇게 항상 제 옆에서 저를 걱정하고 끔찍하게 여겼어요. 보통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부처님, 예수님이라도 못 견뎠을 텐데.”
우울증 극복 사례를 얘기하는 건지, 남편 자랑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였으나, K 대표를 살린 게 남편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만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내 아내가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다면, 나도 그랬을까. 이미 지난 것이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걸 굳이 가정할 필요는 없다는 듯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K 대표의 사례 발표가 끝나자마자 회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그녀가 우울증을 극복한 것에 축하인지, 조력자인 남편을 향한 존경의 의미였는진 모르지만. 다음엔 회원들의 자기소개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첫 번째 순서는 K 대표 오른쪽에 앉은 나와 안면이 있는 민아 씨였다. 그녀는 첫 순서가 어색해서인지 잠깐 망설였다. 그리곤 크게 숨을 내쉰 뒤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최근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치매를 앓다가.” 여자의 나이는 이십대로 보이는데, 아버지가 치매였다니. 연세가 얼마였기에. 그녀는 아버지가 나이 오십 줄에 자기를 낳았다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럼 한 달 전 병원에 같이 온 사람이 어머니냐고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친어머니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었고, 병원에서 본 여자는 본처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라고 불렀다.
친어머니는 몇 해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도 친어머니와는 사이가 별로였단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엄마’와 같이 살았다고. 아버지가 바람피워 낳은 자식, 그 ‘주홍글씨’는 학창 시절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래서 밥먹듯이 집을 나갔고, 그때마다 가출팸으로 자신을 찾아온 건 친어머니가 아닌, ‘엄마’였다고. ‘엄마’한테는 자식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돌봤다고 했다.
늙은 아비가 불쌍하다고 여기며 철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병에 걸린 아버지가 더 불쌍했더랬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상을 뜨기 몇 달 동안 손수 병수발을 들었다고. 그것이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자, 사랑이었다고. 신경숙 장편소설『아버지에게 갔었어』의 한 장면처럼.
처음엔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고 정신 차리라고 아버지를 흔들었지만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다음엔 다시 눕게 하고 가슴을 쓸어드리며 아무 일도 아니에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괜찮아져요, 아버지, 라고 속삭였다. 아무 생각도 마시고 주무셔요, 아버지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한 증상이 생겼고, 우울증까지 생겨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그녀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사연을 마쳤다. 다음은 민아 씨 옆에 앉은 내 차례였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소개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직 기자인 류재민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