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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Oct 06.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흥신소

꿈은 이루어진다

가장 먼저 박이 터진 곳은 청군 쪽이었다. 청군에서 터진 박 주머니에서는 종이 꽃가루와 함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글이 새겨진 천이 길게 내려왔다. 곧이어 백군 박도 터졌는데, 그 안에도 같은 글귀가 새겨졌다. 글자 위에 새겨진 별의 색깔만 파란색과 흰색으로 차이가 있었다. 박터트리기는 청군 승리로 끝났고, 체육대회 최종 우승도 청군에게 돌아갔다. 결과가 발표되자 청군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백군에서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순서로 행운권 추첨이 이어졌다. 경품을 후원한 천수만 회장이 비서의 도움을 받아 흰색 통에서 수북이 쌓인 번호표를 뽑기 시작했다. 자전거와 텔레비전, 마사지 기계, 체중계, 야구방망이와 글러브, 사인볼, 전자레인지, 장갑, 비누와 샴푸까지 다양한 경품이 쏟아졌다. 번호가 불릴 때마다 운동장 곳곳에서 탄성과 한숨이 교차했다. 경품에 당첨된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텀블링을 하며 뛰어나오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행복동 첫 체육대회는 저녁놀이 비칠 무렵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쓰레기를 줍고, 천막을 접으면서 운동장을 정리했다. 천 회장은 다운에게 다가와 수고가 많았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정 소장님이 아니었으면, 이런 뜻깊은 행사를 어떻게 치를 수 있었겠소. 고생했어요.”

“별말씀을요. 정말 회장님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렇게 큰 행사를 열지 못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그들 뒤에서 있던 쾌한과 달래도 미소를 지으며 고단했던 행사 준비와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했다. 

“자,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으면 저녁 먹으러 갑시다. 그동안 고생한 분들한테 제가 한 턱 쏘겠습니다.”

천 회장은 열 명 남짓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상철이 운영하는 삼천리 연탄구이에서. 

저녁 뒤풀이에는 천 회장과 정다운 소장, 달래와 쾌한, 행복중 천방지축 나미진 클럽 아이들과 미래와 현재가 참석했다. 학생들은 식당 한쪽에서 갈매기살에 음료수를 마셨고, 천 회장과 성인들은 맞은 편에서 술과 음료를 마시며 전반적인 행사 품평회를 나눴다. 천 회장은 자신의 아들이 천태산과 학생들에게 줄 선물을 따로 마련했다. 그건 바로 타임캡슐이었다. 알약 모양인 타임캡슐 안에는 작은 메모지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가운데를 돌려서 꺼내고 닫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꿈을 적어 그 안에 돌돌 말아 넣었다. 천 회장은 학생들의 꿈이 담긴 타임캡슐을 걷어 종이가방에 주섬주섬 담았다. 

“자, 이건 이제 내가 가져다 행복중 운동장 한 곳에 묻겠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바로 오늘, 제3회 행복동 체육대회가 끝난 다음 꺼내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여러분이 이 안에 적은 꿈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천 회장 발언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모두 함성을 질렀고, 나애리가 벌떡 일어나 천 회장에게 질문했다. 

“회장님, 정말 기똥찬 아이디어에요. 근데요, 만약에 저희가 적은 꿈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해 주실 건데요?”

“해 주긴 뭘 어떻게 해줘? 너희들 꿈이 이루어지면 좋은 거지.”

그 말에 달래가 끼어들며 말했다. 

“에이. 회장님. 그게 아니라요. 예를 들어 현재가 미대에 진학하는 꿈을 적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면 붓이랑 물감이라도 사 줄 의향이 있느냐는 거죠?”

“엉?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군. 좋습니다. 여러분이 이룬 꿈을 뒷받침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이 천수만이 물심양면으로 전폭 지원하겠습니다. 됐습니까?”

천 회장의 호언장담에 식당 안에 있던 참석자들은 일제히 ‘천수만 만세’를 외치며 화답했다. 즐거운 저녁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다운은 조용히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어느새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혔다. 별 무리 사이로 달이 한껏 차올랐다. 다운은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돕는 거야.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기도 하면서. 그게 보람이고, 내가 할 일인 거야.”     


*     


다운이 입김을 불며 흥신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보면서 다운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5년이 지났구나. 5년 전 그날에는 함박눈이 내렸는데…. 오늘 찾아올 의뢰자는 또 무슨 사연을 가지고 올까?”     

달래는 상철과 떠난 신혼여행지에서 보낸 사진을 카톡으로 다운에게 보냈고, 쾌한은 며칠 휴가를 내고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현재는 그토록 바라던 미대에 진학했고, 천 회장은 약속대로 그의 대학 등록금을 모두 대기로 했다. 어르신 문해교실 수강생들도 모두 책을 읽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고, 상철의 신간은 또다시 히트를 쳤다. 

“똑, 똑, 똑”

다운이 회한에 잔뜩 젖어있을 때, 문밖에서 노크가 세 번 들렸다.

“문 열렸습니다. 들어오세요.”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온 의뢰인은 4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긴 외투에 스카프를 걸치고 들어선 그녀는 다운을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다운 씨, 저 기억하세요. 수진이에요.”

수진의 얼굴은 창백했고, 다운은 과거의 기억에 잠자고 있던 한 여인을 떠올리며 미세한 신음 소리를 냈다. 

“어서 오세요. 김수진 씨,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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