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랜만에 함께 장을 보던 남편이 카트에 무심히 던져 넣은 빵 봉지를 보고 물었다. 무려 여섯 개 남짓 들은 햄버거 빵이 이천 원 남짓이다. 굉장히 저렴하긴 한데 이걸 무에 쓰려고? 하는 표정으로 갸우뚱거리자 남편이 살살 눈치를 살핀다.
“아니, 싸길래. 이걸로 사라다빵 해먹을 꺼야.”
“사라다빵?”
“그거 있잖아, 빵집에서 파는 햄버거.”
‘아아, 그거.’ 하며 겨우 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물류를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샐러드류, 그중에서도 양배추 사라다를 참 좋아한다. 나야 케챱을 썩 좋아하지 않으니 고개를 젓지만…… 결혼 초 치킨집에 가면 양배추 사라다를 한 접시를 싹싹 비우고 추가로 한 접시를 더 먹는 것을 보며 신기하게 봤더랬지. 나는 들뜬 얼굴로 야채코너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는 남편을 보고 한숨을 폭 쉬었다. 그래, 저리 좋아하니 어쩌겠어. 해 줘야지.
“내가 해줄까?”
“아니야, 너 귀찮잖아.”
“내가 하면 더 맛있을걸?”
그 말에 남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으이구, 귀여운 양반 같으니라고.
“대신 맛없어도 당신이 다 먹어야 한다? 알았지?”
“그럼. 난 해주는 것만 해도 좋아.”
단단히 으름장을 놓고 곧장 소스코너로 가 케챱을 사 집에 온다. 머릿속으로 대강 레시피를 짜고 저녁에 주방에 서자 둘째 아들이 기웃거린다.
“엄마, 오늘은 뭐 하게?”
“아빠가 사라다빵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해 보려고.”
“사라다빵이 뭐야?”
“어, 소세지랑 양배추랑……들어가는 햄버거 같은 거?”
햄버거라는 말이 그리도 좋을까. 아들의 입이 단박에 헤벌쭉 벌어진다. 어이구, 핏줄은 못 속인다.
“왜, 옛날에 엄마랑 시장에 가면 시장에 빵집이 있잖아? 그런데서 파는 사라다빵이 제일 맛있더라고.”
어느새 남편도 뒤에서 살랑거린다. ‘그래?’하며 건성으로 대답하며 잘게 썬 양배추에 간을 하던 나도 어느새 픽 웃고야 말았다.
지금이야 차로 오 분, 십 분. 거리의 마트에서 한 바퀴 휙 돌며 간단히 장을 보거나 인터넷으로 식자재를 주문하면 끝이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장보기란 주부들에게는 일상적이지만 생각보다 큰 이벤트였다. 한번 장을 보면 길면 한주, 짧으면 사흘에서 닷새 정도의 가족들의 식탁을 책임지니 말이다. 게다가 어린 자녀까지 함께 가면 일은 더 힘들어진다. 무거운 짐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싸고 신선한 물건을 고르는 것도 일 인진데, 아이야 장보기를 따라나서는 것이 재미있을 리 만무하니 칭얼거리며 엄마 손을 잡아끌며 보채거나 불평을 쏟아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내가 그랬다.)그러다 엄마가 입에 붕어빵이라도 하나 물려주면 금세 씩씩하게 엄마 장바구니에서 묵직한 봉지를 하나 들어 쫓아오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분명 남편도 그랬으리라.
“아빠네 집은 시골이라, 시장 가야 빵집이 있었거든. 근처에 가기만 해도 고소하고 포근한 냄새가 어찌나 좋은지 몰라. 가판대 가득 빵이 놓여있는데 사실 다 맛있거든? 근데 아빠는 거기서 사라다빵이 제일 맛있더라고. 새콤달콤하고 짭짤한 소스에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양배추가 아삭하게 씹히는데 그게 햄버거처럼 빵 사이에 껴서 먹으면 진짜 엄청 맛있어. 할머니가 그거 사주시면 한 손은 할머니 손잡고 한 손에는 사라다빵을 들고 시장 한 바퀴를 도는 거지. 그럼 하나도 안 힘들어. 진짜라니까.”
“그거야 추억 보정이 된 거지. 지금이야 맛있는 게 천지인데.”
어느새 완성된 사라다빵을 내려놓으며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사라다빵을 집어 든 남편의 얼굴 위에 겹쳐지는 어린 소년의 얼굴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귀찮고, 내 취향이 아니면 어떠랴. 그런 얼굴을 봤는데. 사랑하는 가족의 예쁜 추억을 함께 간직할 수 있다는 것. 별것 아니지만, 이 또한 결혼생활의 행복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오늘도 주방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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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tip아닌 tip이라면 양배추 샐러드를 만들 때 보통 넣는 케챱과 마요네즈 설탕이나 소금 외에 핫소스를 넣어보자. 피자를 시켜 먹을 때 딸려오는 일회용 핫소스면 좋다. 핫소스의 매콤한 맛이 식욕을 더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