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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덤보 Jun 30. 2024

풀의 정원

초록은 모여서 빛이 된다

마음이 유독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불안이 가시지 않고 어떤 위로도 귓등을 스쳐갔다. 시간이 약이겠거니 하고 고향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밥을 잘 챙겨 먹고 운동을 하면서 몇 달이 지나갔다. 하지만 작은 응어리가 사라지질 않았다.


어느 날은 엄마랑 둘이 절에 갔다. 무교지만 어떤 경로로든 평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엄마의 체력은 계단 꼭대기에 있는 절까지는 허락하질 않았고, 대신 산책로에서 가벼운 산책을 했다. 울창한 나무와 기다란 풀이 반겨줬고, 중간중간 들려오는 새소리가 산뜻했다. 그렇게 초록 사이를 거닐다가, 그 위에 내려앉은 빛을 보았다. 모든 순간에는 빛이 있구나. 당연한 깨달음을 얻고 괜히 콧등이 시큰거렸다.

사진 | Nahee Pak


동생의 사진에도 유독 초록이 많다. 그 애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을까, 사실 오래전 사진이라 기억을 더듬어도 모를 일이다. 다만 장소와 시간이 다른 사진을 보면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 신기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런 경험을 할까?


그러고 보니 글의 제목인 '풀의 정원'은 내 작은 물음표에서 시작되었다. 꽃들이 모인 정원은 익숙한데, 풀이 모인 정원은 영 어색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꽃이 섞여있지 않아도 정원이 될 수 있다는 괜한 치기가 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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