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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덤보 Jul 21. 2024

아무것도 아닌 무엇

바다와 창백한 푸른 점

어릴 때 나는 큰 욕심이 없었다. 그림 그리기, 책 읽기, 공기놀이, 땅따먹기. 좋아하는 일은 많았지만 1등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00이랑 제일 친한 친구가 될 거야!' 같은 소유욕도 없었다. 아, 식탐은 있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피자 한 조각을 더 먹으려고 동생들과 매일매일 가위바위보를 했다.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밌어서 잘하고 싶었지, 누군가를 제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순간에 스스로를 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무엇이 되고는 싶었다.


그 마음을 발견하고 힘들 때, 동생이 찍은 바다 사진을 보았고,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다시금 알았다. 아,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때 오래전에 본 '창백한 푸른 점'이 생각났다.


'창백한 푸른 점'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을 부르는 명칭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며 이 '푸른 점'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이며, 이 푸른 점을 소중하게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의 관점에서 점처럼 작은 이 행성은 수세기 내내 싸움과 약탈, 전쟁으로 얼룩졌다. 아주 잠시 동안 이 작은 점의 작은 부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그와 비슷한 이유로 나 역시 얼룩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돌아보게 해 준 건 바다를 품은 사진 한 장, 오래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었다. 우리가 예술을 접하고 사색하는 이유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마음의 불안에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 세이건의 말대로, 결국 우리는 어두운 우주 속 외로운 알갱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서로를 찌르는 것보다는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게 덜 외롭지 않을까.


사진 | Nahee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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