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업을 찾았는데 어느새 끝입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금요일 밤이 가장 기다려지는 직장인.
주말에 할 일이 쌓여있지만, 자다 보면 일요일 밤이 되어버리는 일상
또, 월요일...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왔고 당분간 같은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일..
그렇지만, 그리 싫지 않은 삶이었다.
피곤하고 지쳐서.. 건강이 나빠져서.. 놀고 싶어서..
버릇처럼 퇴사를 꿈꾸고 여유로운 귀촌의 생활을 꿈꾼다고 말해왔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진심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기사 작성, 영상제작, 사진학 이런 과목이 참 싫었다.
기자가 되어 동분서주 무미건조한 글을 쓸 자신이 없었고
모든 친구들의 꿈인 PD시험에 도전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그 당시 필름카메라로 직접 촬영을 하고 암실에서 현상하는 수업은
학과 친구들 모두가 매우 즐거워했던 수업이었는데..
그마저도 나는 심드렁
(대체 왜 신방과에 왔고,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어느 날...
"광고학개론" 수업을 처음 듣던 그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이 예고 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 광고를 해야겠군.. 저거다 저거!
광고라는 단어에 홀려서 인생의 반을 보냈다.
광고학개론을 듣던 그날부터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대로
어떻게 하면 광고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을까?,
대학생 광고공모전 도전,
광고대행사에 광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거길 들어가자.
"꿈"
이라는 것이 난생처음 생겼고 그 이후로
나름 파란만장하게..
꿈을 꾼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굵직한 종합광고대행사를 몇 곳을 거치며 수많은 브랜드와 광고주를 만나,
최선을 다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물론, 힘들고 행복하고 즐겁고 괴로웠지만,
재미있었다.
광고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 후배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20년이 넘도록 일을 하냐고? 왜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냐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던 것 같다.
재미있어서..
몇 십 년을 해도 신규 OT를 받으면 스트레스 받지만 신나고
광고주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제안서를 준비하는 그 과정이 그냥 재미있다고..
그 후배는 내게 OO(변태) 같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딱히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 해온 일인데도
까다롭고 급박한 새로운 일이 다가올 때마다
퀘스트를 새로 받는 설렘과 걱정이 뒤섞인 묘한 감정으로
오히려 차~~~~분~ 해지는 세포의 변화가 싫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즐겁지가 않았다.
광고를 하고 싶다고 정했던 나의 꿈을 대부분 이루었는데
정작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았으며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는 건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참 안 좋았다.
팀을 맡고 있는 리더..
원인불명의 증상으로 같은 수술만 두 번째..
난생처음 당해보는 황당한 사건들..
회사와 상사와 후배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퇴사를 입밖에 냈다.
돌아보면 훨씬 더 힘들고 지칠 때도 참 많았다.
이놈의 회사 내가 때려칠테다!
다시는 대행사에서 일 안 할 거야.
오후 3시에 햇빛 받으며, 카페에서 유유자적 책 보는 게 내 꿈이야.
이렇게 매일 상상했는데 현실이 되었다.
그날도 평범한 출근길이었고, 늘 있던 회의와 보고가 있던 날..
딱히 어떤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늘 있던 상사의 잔소리가 멍~ 하는 소리와 함께 잘 안 들리더니
몸이 살짝 붕~ 뜨는 느낌..
이 공간과 내가 분리되는 묘한 기분..
아.. 오늘이다!
생각이 스친 순간,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놀란 건 아마 나 자신..
계획도 계기도 없었지만 그냥 칼 같이 생각이 그렇게 이르렀다.
그렇게
광고대행사 다니던 직장인의 삶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