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가 되면 은행 지점의 셔터가 내려간다. 하루에 많게는 백 통의 전화를 받고 내점 고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목이 아프고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마치 전반전을 마친 축구선수처럼, 셔터가 내려가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르듯 은행 바로 옆 편의점에 들러 머리를 식힌다. 약 십 분 정도 바나나우유나 비타민 음료를 마시며 머릿속 전원을 내리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다.
을지로 시청 근처 편의점은 상권 특성상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고 평일만 문을 연다. 이곳은 아르바이트 없이 부부가 함께 운영했는데, 아침 일찍 남편 사장님이 문을 열면 오후에는 아내 사장님이 교대를 하는 듯했다. 네 시 무렵 한산한 편의점에서 남편분은 유리문 가까이에서 서성이며 아내가 오는 모습을 기다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연인처럼, 교대 시간만 되면 그렇게도 반가워하는 모습은 전쟁 같은 일상 속의 작은 위로처럼 다가왔다. 넉넉하지 않은 삶일지라도(그들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문학적 상상의 허용으로), 저렇게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따뜻해 보였다.
가끔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날에는 이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편의점마다 방문자 명부 작성란이 있었는데, 항상 아침 시간에 겹치던 한 분의 거주지에는 ‘춘천’이라고 적혀 있었다. ITX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매일 강원도에서 서울을 출퇴근을 하신다니. 가장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따로 사적인 대화가 오간 적은 없지만 아침 편의점에서는 "오늘도 춘천 어르신이 아침을 드시고 있구나." 생각했고, 오후 네 시 무렵엔 "오늘도 부부 사장님이 감동적인 교대식을 하는군.” 생각하며 조용히 바나나우유를 마셨다.
건물 공사로 인해 추억의 편의점도 이제는 문을 닫았다. 부부 사장님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여전히 따뜻한 교대식을 이어가고 계실까. 그리고 춘천의 어르신도 여전히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