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간 3000 킬로미터를 주행한 워킹맘의 경험담
(12) 인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한강 라이딩. 8달 만에 2000킬로미터 달성.
사실 출장 때 말고도 가끔 한강에 나간 적이 더 있었다. 아무래도 집에서 가까운 편은 아니므로 주행에 대해 시간과 체력에 대해 계획을 세워야 했다. 주행 자체가 쉽게 갈 수 없는 성격이라 그런가, 주로 맘 속에 갈등하는 것이 있을 때, 주로 진로에 대한 갈등이었는데, 각오를 세우고 결심을 다지고 싶은 그런 날 주로 한강으로 나가게 됐다.
나는 그중에서도 우이천에서 중랑천을 통과하여 성수대교 쪽으로 꺾어지는 길을 가장 좋아한다. 한강 왼쪽으로 접어들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울숲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나오고, 거기서 더 진행하면 성수대교, 더 진행하면 뚝섬 한강공원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전망 자리는 서울숲 진입 직전 한강 자리인데, 거기서 오른쪽을 보면 드높은 하늘과 반짝이는 강물 너머로 한남동 경치가 한눈에 보여 장관을 이룬다.
나는 2016년부터 휴직을 하고 3년 간 중국에서 지내다가 2019년 가을에 복직을 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은 12월에 갑자기 외교부로 파견을 나가게 됐다. 좋기도 싫기도 한 복잡한 심정을 달래느라 11월 말 초겨울 쌀쌀한 바람을 뚫고 '나의 한강 자리'까지 라이딩을 나가서 하늘에게 강물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니? 잘 가고 있는 거니?
외교부에 가서 새로 꾸려진 사무실과 새로 만난 동료들과 서먹한 가운데에서도 잘 지냈고, 특히나 기후변화 대사님께 신문기사를 챙겨 드리고 대사님의 언론 인터뷰 및 홍보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자리를 잡아가던 중, 코로나가 터지면서 내가 배속됐던 업무기획추진단이 진행하던 기후환경회의가 무기한 연장되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해단 없이 원하는 직원들은 모두 그대로 남을 수 있었는데, 나는 원래 일하던 홍릉숲으로 돌아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아마 공무원 중에서는 나만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결정을 내리고 WTO를 화두로 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었던 원래 팀으로 복귀할 즈음, 나는 다시 한번 '나의 한강 자리'를 찾았고 다시 한번 푸른 하늘과 푸른 강물에게 응원을 부탁했다. 당최 답이 없는 결정인 데다, 나만 파견을 갔다가 다시 나만 복귀하게 되는 외로운 결정이어서 더 어렵게 여겨졌다. 곁에 있어주는 건, 내 가족, 내 자전거, 그리고 푸른 자연이었기에 거기에 맘을 의지했다.
자전거 주행한 지 딱 1년이 되던 21년 9월 30일에, 그래서 나는 한강행을 택했다. 오늘 같이 의미 있는 날 한강으로 가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리. 나는 뚝섬으로 갈까, 이촌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나의 한강 자리'를 한 번 더 보기 위해서 뚝섬 한강공원행을 택했다. 총 18.7킬로미터를 70분 동안 달렸다. 뚝섬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즉석라면을 하나 사서 계단에 앉아 반짝이는 한강을 바라보며, 건너편 종합운동장과 잠실 정경을 바라보며 맛나게 점심 한 그릇 뚝딱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잠실에서 났고, 대학교 때는 본가가 문정동에 있어서 종합운동장 근방을 자주 지나쳤는데, 강북에 앉아 멀찍이 그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어린 시절을 나이 들어서 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편 강둑과 저 편 강둑 사이가 널찍한 것이 마치 내 청년 시절과 현재 중년 시절 간 시간 차이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며 시간이 흘러갔다. 봄이 되고 날이 좋아 많이 타다 보니 거리가 부쩍 축적됐다. 이윽고 5월 25일에 자전거 주행거리 총 1900km를 달성했다. 21년 다섯 달 동안 1257킬로를 탔던 데에 비해, 20년 석 달 동안 643킬로를 탔던 걸 비교해 보면, 21년에 살짝 운행 거리가 늘었다. 아무래도 경험과 기술이 늘어서일 것이다.
총 라운딩 횟수가 262회였으므로, 한 번 탈 때마다 평균 11킬로를 탄 셈이었다. 출퇴근길이 편도 7.7 킬로인 것을 감안해 생각해보면 평일보다 휴일에 더 먼 곳까지 탄 거였다. 한 번에 가장 멀리 탄 것은 단연 압도적으로 집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역까지로 왕복 60킬로, 그다음은 의정부 부평 국수 가게가 왕복 40킬로, 그다음은 마포구 상수역까지 편도 27킬로였다. 더 멀고 멋진 곳으로 어디가 있을까. 이곳저곳 더 달려보고 싶었다.
자전거 주행 2000 킬로미터 돌파는 6월 2일에 이루어졌다. 9월 30일 이래 여덟 달 만에 도달했다. 이천 킬로미터면 남산에서 베이징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거리이다. 만일 베이징에서 돌아오지 않고 계속 사막을 뚫고 곧장 우루무치까지 가면 2780킬로미터이다. 그나마 좀 나은 도로로 가면 3172킬로미터. 뭔 나라가 그렇게 크담. 가 보고 싶은 이 마음은 대체 뭐람.
나는 늦게 배운 자전거가 재밌어서 오늘도 계속 달리고 있다. 20대에 내장지방을 쌓으며 살아온 과오를 뉘우치고, 40대에 내장지방과 싸우고 있는 노력에 보상이 있길 바라며 매일매일 달린다. 이만큼 건강해졌길 소원한다.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2017년부터이니, 2027년 정도에는 그래도 크게 변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겠는가 기대를 품고 달린다. 고작 4년 지났는데, 큰 변화가 있기를 바라면 욕심일 것이라 생각한다. 꾸준히 밀어붙이는 데에 장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쨌거나 계속 탈 것이다. 늘 새로운 곳을 찾아내고 매일 쉬지 않고 달릴 것이다. 나는 이미 자전거에 푹 빠졌고, 좋아서 달리다보면 사천 킬로, 오천 킬로 계속 쌓여갈 것이고. 어느 날 돌아보면 만 킬로미터에 도달해 있을지 또 누가 아는가. 그다지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속편 예고)
여덟 편 정도 써서 브런치북에서 권하는 스무 편을 맞춰볼 생각입니다.
자전거 타면서 건강관리나 식단관리가 필수라는 걸 깨달아서 그 쪽으로도 공부를 좀 했었는데, 그 노하우도 한 편씩 써 볼까 생각 중입니다. 특히 제가 건강이 아주 나빴을 때 고혈압과 고지혈을 얻어서 기저질환 관리에 대해서도 써 보고 싶습니다. 혈관, 지방, 식단 등에 대해서 하나씩 쓰고 싶어요.
그리고 남대문으로 주행한 얘기와 춘천 의암호를 주행한 이야기도 쓰고 싶네요. (춘천은 두 편으로)
나머지는 필라테스 이야기와 소소한 이야기를 넣은 엔딩으로 꾸리면 딱 떨어지지 않을까 구상 중입니다.
관심을 갖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