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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Oct 23. 2021

마흔여섯,   첨 배운 자전거로 세상을 누비다(11)

일 년 간 3000 킬로미터를 주행한 워킹맘의 경험담

(11) 여의도 출장길 60킬로미터 도전!


5월 12일에 여의도에 위치한 산림비전센터로 출장 갈 일이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 회의가 아주 드물게 열리는데, 이번에 중앙아시아 ODA에 대해 설명 드릴 일이 마침 생겼다. 그래서 나는 큰맘 먹고 자전거를 타고 가 보기로 했다. 가기 전에 체력을 차곡차곡 쌓는 계획을 비롯하여, 어디서 쉴 것인가, 어느 자전거를 쓸 것인가, 어떤 길을 타고 갈 것인가 등의 세부전략을 세웠는데, 그 모든 과정과 생각마저 다 기꺼웠다.


최장거리 도전 이틀 전인 5월 10일 점심 때는 오랜만에 정릉천을 걸어보았다. 일종의 워밍업이었는데, 어쩐지 달리기가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다. 달릴 때만 쓰는 근육이 있다던, 그래서인가 달릴   쪽에 생기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살살 다시 달려 보았는데, 모처럼 햇살을 뚫고 강가를 달리니  좋았다. 이 날은 2.6 킬로미터를 10’ 30”/km로 뛰었다. 8개월 만에 다시 시작한 것치곤 나쁘지 않았다. 그즈음 무릎이 아파와서 달리기에서 자전거로 바꿨는데요즘은 자전거로 움직일  아픈 곳이 생겼고살은 어째  찌는  같아서 불만스럽고 불안했었다. 그러던 것이 이 날 잠깐의 달리기로 몸이 시원해졌고 배변이 원활해졌다밤에 잠도   잤다순환이    같았다.


그래서 하루 전날인 5월 11일에도 우이천을 달렸는데 속도가 나쁘지 않았다. 이 날은 총 6킬로미터를 9’ 50”/km로 달렸다. 10킬로미터를 한 번에 주파하던 호시절보다는 못했으나, 그래도 2킬로를 쉬지 않고 스텝을  구간이 있었다. 후반에는 2킬로 미만으로 걷기도 했지만, 순환이 잘 돼서인지 반바지를 입고 뛰었는데도 느껴지는 공기가 열대의 겨울처럼 따스하면서도 청량했다. 전날 워밍업 덕분인가 이 날 컨디션이 괜찮아서, 오후에 아들 데리러 학교에  때에도 1킬로 정도를  진행했다오르막 구간에서도 괜찮았다제법 오래 쉬었는데도 마치 지난주 정도에 멈추고 일주일 정도 쉬었다가 다시 달리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여의도 출장길을 완주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언젠간 수영을 얹어서 꼭 철인 3종을 해 보고 싶다는 뜬구름 같은 소망도 품어 보았다.


이틀간 달리기로 충분히 체력을 끌어올린 다음, 대망의 도전일 5월 12일 오전에 자전거로 출장길에 올랐다. 응원이라도 해주듯이 날이 몹시 맑고 화창했다. 자전거는 따릉이로 골랐다. 내 자전거로 가면 가볍고 편하겠지만, 그냥 다녀오는 게 아니고 도착해서 2시간 정도 심도 깊은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기에, 회의를 다 마치고 기운이 없다면 대중교통으로 돌아오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자전거가 있다면 꼼짝 못 하고 3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돌아와야 할 테고, 잘못돼서 몸살이라도 크게 나면 여러 향후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될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면역력이 저하되면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몸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일단 편도만 달리면 되게 따릉이로 주행하기로 맘먹었다. 자신감은 갖되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걸로.



자전거를 서울을 가로지르는 출장 계획이었다. 무려 노원구, 강북구, 성북구, 동대문구, 광진구, 성동구, 용산구, 서초구, 동작구, 영등포구를 주파하는 장정이었다. 나는 이 날 무사히 강바람을 맞으며 열 개 구의 강변을 만끽하고 여의도에 진입했다. 잠수교를 자전거로 건널 때 여의도 안으로 자전거로 진입할 때 여러 번 큰 희열을 맛봤다. 멈출 수 없는 이 중독을 어찌할 거나.



회의를 마친 후에 왕복은 못할 것 같았으나 일행들을 배웅한 후 국회의사당 역 앞에 있는 따릉이 대여소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고 대여를 질러 버렸다. 그래서 그마저도 해냈다. 그런데 오는 길에는 확실히 힘이 부족해서, 집까지 11킬로미터 남기고 몸속 연료가 떨어져서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몸속 에너지가 바닥나는 경험은 태어나서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안전과 생존에 대한 욕구가 강한 나는 몸 쓰는 일을 극한까지 하는 걸 꺼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나는 충분히 연료를 넣지 않은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섰고, 그나마 물도 넉넉히 가지고 출발하지 않았던 바람에 반포대교 정도에서는 갖고 있던 모든 물과 식량이 다 바닥나 버리고 말았다. 


웃긴 것이 세빛섬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잠시 앉아서 가방을 있는 대로 뒤져보니 프로바이오틱스가 한 포 나왔는데, 그걸 천천히 녹여 먹으니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정말 힘이 불끈 솟는 것처럼 느껴졌다(커버 사진). 그러나 역시나 식량이 아니었던 지라, 그것은 기분에 불과했고 그 후 2~3킬로미터도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몸은 에너지 방전 사인을 보내기 시작했다. 마치 내 차에서 기름이 바닥났다고 알려주는 주유 등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체 나는 어디에서 뭔가를 사 먹을 수 있는 걸까. 옥수역과 응봉역에 주차를 하고 편의점을 갈 것인가 망설이는 와중에 그냥 통과해 버렸다. 너무 기력이 떨어져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그 전철역 계단을 올라갈 엄두가 안 났다. 


대신에 나는 중랑천까지 더 이를 악물고 진행한 후, 길가에서 가건물을 차려놓고 라면 등 음식을 파는 할머니들에게서 커피와 과자를 사 먹었다. 국희 땅콩샌드 한 통을 한 번에 다 먹어치운 건 맹세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것도 연양갱 하나와 함께, 맥심 냉커피를 곁들여 먹깨비같이 먹어치웠다. 좀 멀찍이 떨어져서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분이 희한한 친구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내 먹는 걸 쳐다보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신나게 먹어치웠다. 그 덕에 나는 집까지 겨우 완주할 수 있었다. 단순히 다리 힘이 안 빠지면 오갈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초보라서 몰랐던 것이고, 되려 관건은 아주 기초적인 에너지와 몸속 기운의 문제였던 것이었다.


하마터면 집에 못 올 뻔했다. 집으로 올 때는 연료 흡입한 시간만큼 갈 때보다 더 걸렸다. 이렇게 왕복 60킬로미터에 평균 15km/hr을 기록하였다. 인생이 경이롭고 나쁘지 않다. 배우 윤여정 선생님의 말씀이 정답임을 자전거로 확인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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