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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Oct 13. 2021

마흔여섯,   첨 배운 자전거로 세상을 누비다(4)

일 년 간 3000 킬로미터를 주행한 워킹맘의 경험담

(4) 조금 더 다양한 도전, 경춘선 숲길과 마포구 출장.


어떻게 자전거를 일 년에 3000킬로미터나 탈 수 있었던 거지? 하고 놀라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비결을 공유하자면, 그렇게 타는 줄 모르고 탔다 정도가 답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도리어 살아가는 게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더 고달팠던 지라 오히려 자전거에 맘을 쏟는 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면 다소 이상해도 설명이 되려나.


20년 10월은 정말 할 일이 많았다. 진정으로 맘을 내려놓고 쉴 시간이 없었다. 이 와중에 자전거에 정 붙이고 집착하는 힘으로 겨우 고달픈 시간들을 뚫고 나왔다. 요즘 청년들 말로 '덕질'이라고 하던데 한 번 빠지면 푸욱 빠져서 평균 이상 레벨로 올라가는 재미를 즐기는 성향 정도로 풀어쓸 수 있겠다. 이를 테면 '건강한 집착' 같은 건데, 좋아하는 것을 맘에 담으면 설렁설렁하지 않고 항상 그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며 좀 더 전문성을 갖기 위해 애쓰고, 그 과정을 즐기는 성격으로도 말할 수 있겠다.


자전거 덕질을 시작한 나는 일단 출퇴근길에 집중했다. 비가 안 오면 늘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다녔다. 몸에 열이 나지 않는 한 자전거를 타는 걸 원칙으로 했는데, 다행히 많이 건강해진 터라 몸이 아파서 자전거를 못 탄 적은 없었다. 다만 밤에 잠이 부족했던 며칠은 사고가 날까 봐 걱정되어서 자전거를 몇 번 쉰 적이 있긴 했다.


아침 8시까지 차로 아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다. 그렇게 집에 오면 8시 15분에서 20분이 되는데, 초반에는 8시 55분 정도에 허덕대며 출근하던 것이 나중에는 50분도 되지 않아서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21년 들어서면서 아들이 좀 더 자란 후엔 함께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고 나는 학교에서부터 바로 회사로 향하게 돼서 출근 시간이 몹시 안정되게 됐다.


늘 같은 코스로 계속 다니니까 길에 익숙해져서 좋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 갈수록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도 계속 주행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이건 마치 피아노를 칠 때 하농 연습곡으로 손가락을 일단 풀고 체르니의 본곡으로 들어가던 옛날 레슨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출퇴근 코스에서 자전거의 기본을 닦고 나니 나중에는 어떤 변형 코스던 잘 다닐 수 있게 됐다.


처음 시작할 땐 정릉천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무서워서, 월곡역 비좁은 보도를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을 행여 다치게 할까 봐, 상월곡에서 돌곶이로 가는 오르막길이 버거워서, 계속 자전거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나자 사람들 사이 공간으로 천천히 주행할 수 있게 됐고, 오르막길을 조금씩 더 올라가나 싶다가 어느 날 쉬지 않고 통과할 수 있게 됐다. 내리막길 극복이 가장 늦어서 모든 어려운 구간을 극복하고 난 후 제일 마지막으로 내리막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브레이크를 이용해서 내려갈 수 있게 됐다. 구간이 익숙해지고 난 후 기록 경신하는 재미에 빠져서 물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출퇴근 코스가 완전히 몸에 익는다 싶으니 다른 길에 대한 동경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도를 놓고 주말을 이용해 집 근처에 나들이 갈 수 있는 데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리하여 왕복 13킬로미터 정도에 떨어져 있는 경춘선 숲길 공원을 아들과 함께 가 보기도 했다(커버 사진). 


시월의 마지막 날, 아름다운 단풍 사이에서 금관 5중주와 경상도 사나이의 코믹 버블 공연 등을 보았는데, 자전거로 가니 화창한 날씨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나 주차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간편하게 공원 내로 진입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서 하루가 저무는 게 아까울 정도였던 시월의 마지막 날. 아들과 함께 경춘선 기찻길 사이에 앉아서 숲길을 수놓는 노래를 듣고 즐거운 공연을 보았다. 울긋불긋한 단풍 사이로 작지만 단단하게 자전거를 달리던 아들의 모습을 뒤에서 자전거로 따라가며 실컷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자전거 배우길 너무 잘했다 싶었다.



주말뿐만 아니라 나는 출장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11월 6일에 마포구에 자리한 '생명의 숲'에서 특강을 할 일이 생겨서 자전거 출장을 계획했다. 지도를 놓고서 길을 구성해 보고 시간을 재보면서 자전거 주행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보았다. 자전거로 이렇게나 멀리 가 보는 건 처음이라 약간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역시나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은 모든 부정적인 마음을 잠재웠다.


목적지는 마포구 상수역이었는데 27킬로미터나 타고 간다는 것도 부담이 됐고, 돌아올 체력이 있겠는가도 걱정이 돼서 따릉이를 써 보기로 결심했다. 가다가 힘들면 응봉역이나 옥수역에 세우고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따릉이 앱을 깔고 회원권을 구매했다.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찌저찌 자물쇠도 풀고 자전거를 대여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몹시 잘한 결정으로, 나중에 나는 한강에서 태산 같은 맞바람을 받으며 주행하느라 기력을 다 써 버려서 22킬로미터 구간부터는 거의 정신력을 써서 주행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심해서 자전거 주행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따릉이 자전거가 꽤 무거워서 힘이 더 들었다. 우이천과 중랑천에서는 그나마 갈만 했지만 나중에 한강 서편에 이르렀을 땐 바람이 나를 뒤로 밀어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서울숲 근처를 통과할 때 메리골드 꽃밭에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잠시 쉴 땐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보았다. 몸이 고되다는 생각도 잊었고 자전거를 타고 출장 가기로 한 게 참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메리골드 꽃밭 위로 뭉게뭉게 피어나던 구름은 마치 푸른 하늘로 올라가는 용처럼 보였다. 용은 멀리 보이는 갤러리아 포레를 휘감아나가며 승천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 나는 자전거 주행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강바람을 뚫고 110분 동안 27킬로미터를 달려서 마포구 출장지에 도착했다. 용케 중간 지하철역에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이 도전을 포기하고 싶다는 약한 마음을 누르고 마포구 상수역에 도착했다. 출장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대신 자전거를 탔었지만,

출장지에 도착해서 커피 한 사발 뜨끈하게 마신 걸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검정 원피스로 갈아 입고 생명의 숲으로 들어가서 해외의 불법 벌채 사례에 대해 발표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더 어렵고, 따릉이로 가느라 더 무겁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내서 더 기쁜 날. 이 날은 나의 쉰다섯 번째 자전거 주행이었고, 그때까지 가장 긴 거리를 주행한 날이었다. 내 능력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니 몹시 뿌듯하고 기뻤다. 이 기록은 나중에 여러 번 깨지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경험이야말로 자전거 타기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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