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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Oct 12. 2021

마흔여섯,   첨 배운 자전거로 세상을 누비다(3)

일 년 간 3000 킬로미터를 주행한 워킹맘의 경험담

(3) 늦게 배운 자전거에 밤새는 줄 모르고. 기록앱 선택은 필수.


그렇게 자출퇴근을 통해 꾸준히 타기 시작한 자전거는 10월 13일에 누적 거리 100킬로미터에 달하게 됐다. 당시 누적 시간은 10시간 18분이었고, 라이딩을 나간 횟수는 총 14회였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냐면 기록 앱을 통해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데이터는 나의 힘! 자전거에 앞서 달리기에 빠져 있던 일 년 동안 체질량을 기록하는 인바디나 매일매일 식단을 기록하는 눔 등 기록 앱을 요긴하게 썼던 경험이 있는 지라, 이번에도 나는 자전거 주행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 앱 저 앱 비교하며 궁극의 앱을 찾아보았다. 


내 선택은 스트라바(strava)였는데, 자전거뿐만 아니라 달리기와 수영도 기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수영을 한 번도 기록해 보진 않았다는 게 아쉽지만) 그리고 같은 구간을 달릴 때 최고 기록은 얼마인지, 혹은 오늘의 기록은 몇 번째 정도로 빠른지 알려주는 것도 좋았다. 끝으로 같은 구간에서 다른 유저들은, 심지어 내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얼마만큼의 속도로 자전거를 주행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자전거나 달리기에서 기록 앱은 꼭 필요하다. 자신을 격려하는 데에 이만큼 좋은 동기 부여 장치가 없다.


스트라바를 쓰기 전엔 애플 시계를 썼다. 아이폰과 연동해서 기록이 되는 장점이 있었고, 손목에서 간단하게 조작해서 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자전거를 출발하기 전에 자주 잊게 됐고, 그리고 내가 신호 때문이나 목이 말라서 멈출 때에도 시간이 계속 흘러가서 자신의 속도에 대한 정확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스트라바는 내가 멈출 때 기록을 함께 멈췄고, 내가 실제로 달린 궤적을 그대로 그려주는 장점이 있었다. 애플 시계를 주로 쓸 땐 시계로 재고 스트라바에는 매뉴얼 모드로 내가 기록을 했던 반면, 스트라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로는 직접 스트라바를 시작해서 앱이 기록을 하도록 했다. 


10월 13일 출근에는 43분을 소요했다.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었다. 사실 첫 자출은 당최 그냥 뛰어서 간 것과 크게 차이가 안 날만큼 느렸었다.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알게 돼서 기뻤다. 이 날 퇴근길에서는 한 버스와 무려 네 개의 정거장에서 계속 만나기도 했다. 북부간선도로는 무척 막혔고, 나는 점점 안정감이 생겨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후로 퇴근길에서 차막힘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서 무척 보람되고 좋았다.


10월 19일에는 자전거를 탄 누적 거리가 201 킬로미터를 주파했다. 특히 18일에는 하루 동안만도 41 킬로미터를 탈 수 있었다. 주말 당직을 서기 위해 정릉천-청계천-중랑천-우이천에 이르는 네 개의 강변을 돌아 자출퇴하고 거의 기다시피 귀가했는데, 두 남자가 또 나가자고 해서 영혼을 놓고 셋이 함께 밤 자전거를 탔다(커버 사진). 


이 날은 자전거 도로로 달린 만큼 속도가 제법 나서 신났는데 자퇴에서 시간당 15.6km란 기록을 세웠다. 이는 여태까지 중에서 최고 속도로 하마터면 중간에 다리 터지는 줄 알았다. 처음으로 자출퇴했던 세 번째 주행을 생각해보면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한 수준이었다. 가족들과의 함께 탄 밤 자전거 나들이 동안은 시간당 11.5km를 기록하며 총 65분을 탔다(울 아홉 살 꼬마 스피드가 제법이다. 아직도 꼬마가 나보다 잘 타고 있는 시기였다. 표지 사진에 자전거 세 대 나란히). 이러다 내가 철인 3종이라도 나가게 될까 봐 스스로 두렵기까지 했다. 한다면 하는 내 성격이 좀 걱정됐다. 이렇게 재밌어하면 곤란한데. 뒤늦게 자전거에 눈 뜬 자, 거의 바람난 수준이었다.


한 달째 자체 점검을 해 보니, 30일 동안 302킬로미터를 달성했다. 총 45회 자전거에 올랐고, 총 28시간 반을 탔다. 그간 요령도 늘고 출퇴근 시간도 점점 단축해 갔다. 꾸준히 틈 나는 대로 했던 덕이다. 그런데 늘 같은 빈도수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휴일에는 아들을 돌보느라, 그리고 회사 스케줄이 바쁠 땐 지쳐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체력이 달려서 빠져야 했던 날들이 아까웠지만, 운동도 중년의 생활에 어느 정도 합의를 보면서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추석 연휴가 이어졌을 땐 가족들을 돌보느라 못 탔고, 10월 마지막 주엔 회사에서 전략과제 발표를 준비해야 해서 못 탔다. 그러다 보니 휴일이 없는 11월이 되려 기대가 됐다. 운동을 안 할 때엔 휴일이 없어서 11월이 야속했는데, 운동할 시간이 간절하다 보니 휴일 없이 일상이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11월이 든든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이 속도로 가면 21년 1월에는 천 킬로미터를 돌파할 수 있는 걸까? 과연 자전거를 타는 걸 기록하는 건지, 아니면 기록을 내기 위해 자전거를 타는 건지 애매한 상태에 이르렀다. 중독에 가까운 이 사랑은 블랙. 케이팝(K-POP) 가사가 어쩐지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뭔 소린가 했더니 이런 블랙이었구만. 겨울에 검푸르게 동상 걸리는 건 아니겠지. 겨울 자전거는 추위가 관건이지 싶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탈 일을 생각하며 집에 도착해서 주자(주차 아님)해 보니 어느 틈에 바구니로 살포시 날아 들어온 가을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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