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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Oct 11. 2021

마흔여섯,   첨 배운 자전거로 세상을 누비다(2)

일 년 간 3000 킬로미터를 주행한 워킹맘의 경험담

(2) 내 자전거가 생기다. 자전거 출퇴근의 시작.


두 번째 주행은 20년 10월 3일이었는데, 달랑 6킬로 주행한 것이었지만 컨디션이 저조한 편이어서 쉽지 않았다. 9월 20일에 중요한 시험을 하나 봐야 했던지라, 그 전 주에는 공부하느라 지치고, 시험 마친 주에는 피곤해서 쩔쩔매다가 겨우 회복했나 하는 시점이었다. 마흔 넘으면 시험도 함부로 보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받기 어렵다는 합격선을 넘길 수 있어서 위안이 됐지만 체력 소모가 상당했더랬다.


두 번째 주행에서 자전거를 살까 말까 망설였다. 이건 마치 처음 운전면허증이 생겼을 때 차를 살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과 흡사했다. 공용 자전거를 빌리거나 아들 자전거로 조금씩 타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기왕 할 거라면 내 자전거를 마련해서 정 붙이며 타야 늘지 않겠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조금 고민 끝에 결국 '앞으로 내가 어떻게 타려 하는가' 내 마음의 방식에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과 상의 끝에 자전거를 사기로 결정했다. 나는 기왕 시작한 거 열심히 탈 생각을 굳혔다.


민트색 자전거를 사고(커버 사진) 그다음 날이었던 4일 일요일에 회사로 출근할 결심을 했다. 마침 밀린 업무가 있었다. 평일에 자전거로 출근할 자신은 없었고, 일요일이라면 시간 제약이 없으니 한 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총 8.5킬로 거리였는데, 자전거 도로로 5킬로 정도 가다가 일반 도로로 3.5킬로 정도 가야 해서 좀 걱정이 됐다. 비좁고 울퉁불퉁한 일반 도로를 주행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이나 다른 자전거들도 피해야 할 텐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 어쩐다. 어떻게든 가보고 싶은데.


한참 지도를 쳐다보다가 유레카! 자전거 도로에서 안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우이천-청계천-정릉천으로 멀리 돌아서 가면 17킬로미터로 한참 가야 하긴 했으나 자전거 도로로만 달릴 수 있었다. 집은 우이천 옆에, 회사는 정릉천 옆에 있어서 이렇게 가면 일반 도로는 몇 백 미터만 움직이면 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도로들은 익히 아는 길이었고 다행히 그리 비좁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회사까지 17킬로미터를 돌아서 가 보기로 결심했다. 예상 시간은 1시간 10분으로 나왔다. 실제 주행에서는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고작 세 번째 주행이라 미숙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자전거와 한 몸처럼 딱 붙어 버린 후에는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을 만큼 시간이 단축되었다.

 

자전거로 출근(자출)하는 것은 내 오랜 꿈 중 하나였다. 우이천 옆에 집을 얻을 때, 혹시나 정릉천 옆 회사로 자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언감생심 막연하게 꾸었던 꿈이 바야흐로 현실로 이뤄지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다음 날 자출할 꿈을 꾸며 경건한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마치 큰 대회에 나가는 선수라도 된 양 가슴이 설렜다. 마흔여섯에는 두근거릴 일이 남아 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무언가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계획을 세우고 가슴을 설레니 너무 좋았다. 게다가 자전거 타기는 기술을 익히는 일이었고, 그 결과 건강을 얻을 것이 확실시되는, 완벽한 프로젝트였다.


나는 식구들이 곤히 자는 아침에 집을 나와서 우이천으로 갔다. 오르막길도 무서웠지만 내리막길은 더 무서워서 무조건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갔다. 타는 것도 좋았지만 아직 기술이 미숙하므로 사고를 내거나 다쳐선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중년 아닌가. 한 번 다치면 크게 다치고 회복도 잘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안전하게 잘 타야 '중년에 자전거 타기'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도전'이 되지, 어디 다쳐서 식구들에게 폐라도 끼치면 그저 '주책맞은 늦바람'이나 되고 말 일이었다.


그날 자출은 성공이었다. 중랑천은 정말 멋진 공간이었다. 탁 터진 강변길을 따라 달리니 가을꽃들이 환하게 맞아 주었다. 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았었다니. 같은 공간에 머무른다고 해서 우리가 같은 차원까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만큼, 자신이 품은 마음만큼,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걸 보고 다른 걸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중간에 몇 번씩 자전거를 멈추고 물을 많이 마셨다. 그래서 시간이 더 걸렸지만, 초보 자전거 주행자에겐 필요한 쉼이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홀로 혹은 삼삼오오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테니스를 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모두가 조용한 일요일 풍경을 건강하게 흔들어 놓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2019년부터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했었는데, 그 경험이 자전거를 한 번에 익히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았다. 달리기 얘기는 뒤에 따로 해 봐야겠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중요한 일이 있었던 월요일은 건너뛰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10월 6일 화요일에 자전거로 출근을 감행했다. 자전거 도로로는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일반 도로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역시나 생각을 바꾸어서, 사람이나 자동차, 다른 자전거 등과 위험한 상황이 예상되면 그냥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가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자전거 경력이 미천한 지라 뭔가 나타나는 것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다 무서웠다. 그러나 그 모든 두려움보다 '해보고 싶다'는 내 열망과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는 내 호기심이 훨씬 더 커서, 나는 겁은 어디다 잠시 넣어두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네 번째 주행과 퇴근하는 다섯 번째 주행을 감행했다.


이 두 번의 주행은 처음 해 보는 일반 도로(오프로드) 주행이었고, 특히 다섯 번째 주행이었던 자전거 퇴근은 첫 번째 야간 주행이었다. 어둑어둑해지는데 자전거를 탈려니 더 어려웠으나, 낭만이 넘치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달리는 주행의 매력은 어딘가 남아 있을 내 두려움을 잊게 만들었다. 집으로 갈 때엔 오르막길이 덜하고 길이가 더 짧아지는 월곡역-석계역 구간을 선택해서, 총 6.7킬로에 50분이 소요됐다. 이 거리는 나중에 일상 퇴근길(루틴)이 되고 난 후엔 30분에서 35분 정도로 시간이 단축됐다. 퇴근길에는 자동차나 버스를 타는 것보다 자전거로 익숙한 길을 가는 게 훨씬 빠른 셈이 됐다. 모험심 자극, 건강 획득이란 장점 위에 시간 단축이라는 장점까지 얹게 됐다. 나는 한동안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는 재미에 푹 빠졌고, 시간 단축을 위해 길을 연구하고 지도를 보고 장비를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첫 번째 야간 주행 때 석계역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내 가슴이 뛰니 사람들의 발걸음도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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