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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Oct 15. 2021

마흔여섯,   첨 배운 자전거로 세상을 누비다(6)

일 년 간 3000 킬로미터를 주행한 워킹맘의 경험담

(6) 타거나 달리거나, 탄천을 따라 경기 남부 첫 진출.


80번째 자전거 주행은 경기도 성남시에서 용인시로 넘어가는 탄천길을 달렸다. 자전거로 서울 밖을 달린 건 첨이었다. 이 날은 달리기까지 병행해서 멀티 운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서 더 즐거운 경험이 됐다. 강변 너머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맵쌀한 초겨울 바람을 만끽하며 신나게 탄천길을 따라 달렸다(커버 사진).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힘차게 페달을 밟다보면 자전거 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강은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는 듯 남쪽을 향해 구불구불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커버 사진).


친구네에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갔다가 아들들이 함께 놀고 친구는 집에서 할 일을 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탄천을 향해 달렸다. 뛰다가 인터넷에서 찾아둔 자전거 대여점(바이크 렌탈샵)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 탈 생각이었다. 따릉이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것이라서 경기도에선 빌릴 수가 없었다. 요즘은 카카오 T 바이크를 빌릴 수 있는 것으로 알지만, 20년 11월 말만 하더라도 경기도 성남시에서 공유 자전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근 일 년 만에 카카오가 빠르게 공유 자전거 사업에 뛰어든 듯하다.



나는 처음 2킬로미터를 달려가서 미니벨로 자전거를 빌리고, 4킬로미터를 자전거로 계속 남하했다가, 다시 북쪽으로 4킬로미터를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한 후, 2킬로미터를 다시 달려서 최초의 장소로 복귀했다. 총 4킬로미터를 달리고, 8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주행했다. 시간으로는 달리기에 40분이, 자전거에 50분이 소요됐다. 속도로 보면 달리기는 시속 10km, 자전거는 시속 12.7km였다. 오랜만에 달리는 거였고 자전거는 남의 거에다 첨 가 보는 도로였으며 날씨는 그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험한 조건 속에서 해낸 거라 스스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조금 더 달리거나 주행할 수 있었지만,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 한 시간 가량 운전을 할 것을 감안하여 에너지를 일부러 남겨두었던 것을 감안하면, 달리기 5킬로미터, 자전거 10킬로미터 정도는 한 번에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여기에 수영을 1킬로미터 정도 진행할 수 있다면 세미 철인 3종으로 가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선수급의 속도를 낼만한 수준은 아니므로,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지치지 않고 세 운동을 하루에 완주해내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질 것이다. 선수급으로 기록을 내는 것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었다. 그저 처음 해 보는 운동의 영역에 발을 디뎌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2016년만 하더라도 내 건강 상태는 정말 처참했었다. 고지혈증을 몇 년 달고 살던 나는 그 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휴직을 했는데, 마지막 달에 결국 고혈압이 발발하고 말았다. 따로 운동을 강하게 하진 않았어도 점심때 뒷산 정도는 돌았었는데, 마지막 달에 휴직을 준비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서 부동산을 다니며 집을 보러 다녔더니 두 주도 채 되지 않아서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고혈압 약을 계속 먹게 됐다.


휴직을 하고 남편이 직장을 다니던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서 한 일 년 계속 앓았다. 집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조금 걷기만 해도 숨이 찼고, 8천 보를 넘겨서 걸을라치면 그날 밤에 미열이 나거나 염증 증세가 생겼다. 쉽게 피로해졌고 세상 병은 다 달고 사는 기분이었다. 조금 얘기를 할라치면 기침이 났고 혈색도 나빠져서 사람이 시들시들했다.


이 모든 상태는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12년 출산 이후 제대로 산후조리를 못하고 계속 아이를 돌보다가 2013년 자궁경부 상피내암 수술을 받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정신까지 무너지는 게 싫어서 2014년 하반기에 복직을 감행하고 열심히 일을 해나갔지만, 어린 아들을 혼자서 키우면서 일도 하는 것은 한 사람이 다 하기엔 무리였다. 아침에 뛰어서 회사를 갔다가, 저녁에 뛰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베이비시터와 교대를 했다. 그리고 잠들 때까지 아이를 돌보던 생활이었다.


그 시절 내게 운동은 사치였다. 일단 아이 맡길 곳이 있어야 운동을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데, 나는 운 나쁘게도 육아를 고대할 인력이 없었다. 남편은 해외 출장이 대부분이었고, 시댁은 외국에 있었고, 친정은 서울에서도 떨어진 데 있었지만 얼마 안 있어 그나마도 강원도로 이사를 가 버렸다. 베이비시터는 이미 가용 가능한 시간을 다 채워서 쓰고 있어서 더 부르게 되면 예산 초과라서 불가능했다. 나는 결국 내 건강을 담보로 잡고 끝까지 버티다가 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휴직을 할 수 있는 현실이 어찌나 고마웠는지.


2017년부터 차츰차츰 기력이 좀 회복되는 게 느껴져서 헬스 그룹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조금만 운동을 해도 숨이 차고 병이 도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이 나지 않는 한 운동을 매일 간다는 규칙을 세우고 지켜냈다. 그러나 한 일 년쯤 지났을 때 비로소 몸이 운동 강도를 어느 정도 견뎌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라테스도 추가해 보고, 나중에는 검도도 추가해 보았다. 하루에 만 보를 걸어도 끄덕 없게 됐다 싶더니 만이천 보에서도 몸이 견디게 됐다.


그즈음 고혈압약이 다 떨어졌는데, 어지럼증 등 증상이 사라진 듯하여 며칠 약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로 혈압을 주기적으로 체크해보니 정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복직하기 전까지 고혈압약을 끊고도 살 수 있게 됐다. 하룻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는 한 혈압은 그 후로도 정상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나중에 복직하고 나니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어지럼증이 시작됐고, 그래서 다시 고혈압과 고지혈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발발하고 나서 스트레스가 쌓이니 어지럼증이 좀 심해진다 싶었다가, 약을 정기적으로 먹고 자전거도 꾸준히 타곤 하니 적어도 약을 먹는 동안은 증세가 없이 편하게 몸이 유지되고 있다. 악착같이 자전거를 타는 이유에는 기저질환을 다스리고자 하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수영장에 가봐야겠다. 내 수영 실력은 형편없어서 자유형을 할 땐 숨이 턱에 차고 - 가끔 가라앉고 - 배영을 할 땐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한쪽으로 비딱하게 간다. 그래도 수영을 익혀보고 싶다. 안 해보고 겁먹지는 않을 생각이다. 자전거는 하나도 탈 줄 모르는 데도 해냈다. 되려 현재로선 달리기, 자전거, 수영 중 수영을 제일 못하지만, 그래도 이미 어느 정도 할 줄 알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수영이 제일 빨리 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조금만 달려도 토가 올라왔다. 자전거를 시작할 때엔 앉아서 중심도 못 잡았다. 수영은 그래도 물에 뜨고 앞으로도 갈 줄 아니 상태가 훨씬 낫다. 혹시 모를 일이다. 정말로 언젠가 미래에 세미 철인 3종 경기 대회에서 중년 그룹에 이름을 올리고 뛰고 있을 지도. 간단히 생각해보면,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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