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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Oct 16. 2021

마흔여섯,   첨 배운 자전거로 세상을 누비다(7)

일 년 간 3000 킬로미터를 주행한 워킹맘의 경험담

(7) 보조 운동은 달리기로, 10킬로미터 달리기 경험담.


자전거를 첨 타던 날에 내가 세 바퀴만 돌고서 바로 3.3킬로미터를 주행했다고 이야기하면, 내게 엄청난 운동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결코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제자리암이긴 해도 수술을 받아서 5년이나 암 이력이 남아 있던 환자로서, 2017년 이전에는 제대로 된 운동을 해 본 경험마저 부족했던 지라, 나 역시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전거를 배울 수 있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다.


두 가지 정도 얼떨결에 잘한 일이 있어서 그 덕에 빨리 배웠지 싶은 게 있다. 한 가지는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이전에, 대략 일 년 정도 달리기에 먼저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다리 근력이 어느 정도 잘 붙어 있었고, 지구력도 제법 생겨서 웬만한 강도에도 별로 숨차지 않고 주행 자체를 잘 버티게 됐다. 숨차기로 따지자면 자전거보다는 달리기 쪽이 훨씬 숨차다. 


두 번째는 앞에서 살짝 말했던 2인용 자전거를 자주 탔다는 사실이다. 자전거를 못 탔던 나를 위해서 남편이 특별히 주문 제작해 온 2인용 자전거는 우리가 차가 없을 때고 있을 때고 항상 우리와 시간을 함께 해 왔다. 남편이 앞에 앉고 내가 뒤에 앉아서 나는 페달만 힘차게 돌려주면 됐는데, 알게 모르게 이때 균형 감각을 몸에 익혔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혼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을 때 몸이 그 균형감을 기억해내고 금방 흉내 내면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달리기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 보자면, 2019년 9월에 복직하면서 시작한 운동으로서 회사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니 중국에서 하던 운동량에 비해 턱 없이 운동량이 줄어들자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대안으로 선택한 운동이다. 점심시간에 정릉천을 달리기 시작했는데, 눈 부신 가을날 개천가를 달리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근심 걱정이 사라져서 너무 좋았었다. 점심은 주로 김밥으로 해결했었는데, 정릉천 앞에 있는 김밥집에 먼저 들러서 김밥을 주문해 놨다가 달리기를 양껏 하고 돌아오면서 그걸 사 들고 들어와서 업무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요기를 하곤 했었다. 자전거를 점심시간에 타던 전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달리기 할 때 해 본 가락이 있어서 쉽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달려본 적이 별로 없고, 체지방도 많다 보니 조금만 달려도 숨이 턱에 차 올라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했다. 달리기 할 때 듣는 노래 리스트를 만들어서 똑같은 구간에서 계속 들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얼마나 속도가 빨라지는지 음악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어서 좋다. 애플 시계를 차고 달리므로 시간과 속도를 더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긴 하지만, 자기 감각으로 속도나 운동의 질을 느끼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같은 구간을 달리는 전략'을 썼다. 


이 전략은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나중에 나는 동일한 시간 내에 청계천 구간까지도 달릴 수 있었다. 점심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나는 12시 25분에서 30분 사이에는 반드시 온 길을 되돌아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갱신 구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전략은 나중에 자전거 출퇴근에도 그대로 반영돼서, 내가 출퇴근 구간에 점점 익숙해져 갈수록 출퇴근 시간이 점점 단축되어 가서 무척 신났다.


달린 지 11개월째에 접어들었을 때 드디어 나는 기록할만한 터닝포인트를 통과했다. 동해안을 따라서 10킬로미터 뛰기에 성공한 것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사천에 묵으면서 평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동해안 달리기를 성공했다.


처음 시작은 날씨 때문에 운동을 못하니 체하고 아파서였다. 어떻게든 운동을 해야 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비를 맞으며까지 사천 해변가를 달리고 났더니 몸이 나았다. 아주 천천히 67분을 달렸는데, 혼자서 오롯이 누린 나만의 휴가가 되어 주었다. 비 내리는 동해안을 따라 달렸던 그날의 분위기 그리고 내 기분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그다음 날은 반대 방향으로 코스를 잡고 주문진항을 향해 달려가 보았다. 주문진은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얘기를 거의 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미취학 시절 서울로 와서 남산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하긴 그 시절 얘기도 거의 안 했다. 그래도 회는 잘 드셨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어도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연어가 헤엄쳐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 주문진으로 뛰어서 갔다. 솔숲을 통과하고 해안길을 따라서 백사장을 밟으며 계속 달렸다. 나는 길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싱그러운 젊음, 바다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의 환한 미소, 거친 그물을 울러 매고 항구에서 삶을 헤쳐가는 어부들의 소금기를 보았다. 그 모든 길이 그대로 인생이었다. (커버 사진)



그렇게 나는 이틀에 걸쳐 동해안 사천해변부터 사천진, 하평, 연곡해변과 영진항을 거쳐 주문진항까지 뜀박질했다. 6.9km(제1일)과 10.4km(제2일)를 합치니 도합 17.3km가 됐다. 평균 속도는 킬로미터 당 10분. 버킷리스트 중 한 개였던 동해안 달리기를 그렇게 완성해냈다.



그 후 서울에 돌아와서 우이천 구간에서 두 번 더 10킬로미터를 달성했다. 한 번은 비가 오던 날이라 비옷을 입고 아무도 없는 강변을 혼자 달렸고, 다른 한 번은 햇살을 뚫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강변을 달렸다. 푸르던 바다와 주문진 항을 그리워하며 달리다 보니 강릉 바닷가에서 기록을 냈던 때보다 속도가 약간 단축됐다. 


그런데 달리기에 이렇게 중독되어 갈 즈음 무릎 연골에 문제가 생기는 게 느껴졌다. 이완 운동으로 주 3회 정도 가던 필라테스에서 무릎을 쓰는 몇 가지 동작에서 무릎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족저근막염도 덩달아 생기는 것 같았다. 달리는 게 좋아서 운동을 쉬기 싫었지만, 몸에 이상 증세가 생기니 할 수 없이 운동도 쉬어야 했다. 며칠 운동을 안 하고 쉬니 통증들이 약해지긴 했다. 그래도 운동은 해야 하는데 어쩐다.


고민을 막 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추석 연휴라서 쉬고 있을 때, 얼결에 자전거를 시작하게 됐고 자전거는 훌륭한 대체운동이 되어 주었다. 무릎에 부하가 덜 걸렸고 발바닥도 덜 아파서 좋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달리기로 기초를 쌓고 자전거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자전거도 오래 타니까 다른 종류의 통증들이 생겼다. 그럴 때엔 달리기로 잠시 돌아와 보았다. 그렇게 보조 운동으로 달리기를 병행하면서 자전거로 운동을 하니 더 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자전거는 건강해지고 면역력이 올라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지만, 달리기에 비해 체형 관리나 체지방 감량에는 별 효과가 없는 듯했다. 전반적으로 눈에 띄게 살이 빠지고 싶다면 달리기가 훨씬 효과적이었고, 무엇보다 온몸을 순환시켜서 소화를 증진시키는 것은 달리기가 최고인 것 같았다. 자전거는 아무래도 하체 위주로 돌리니까 유산소가 되긴 하지만 전신을 골고루 운동하는 효과는 아무래도 좀 떨어진다. 운동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달리기의 장점이 돋보이지만, 자전거가 가진 다른 매력들이 - 속도감이나 차량을 대체할 수 있는 기동성, 편한 주차, 환경친화성, 기름값 절감 등 - 워낙 뛰어나서 자전거 운동에 한없이 빠져들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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