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마지막 날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휴가보상비를 주지 않으려는 회사의 입장 때문에 연말에 강제 휴가라도 쓰는 것 같은데, 이 조직은 여전히 휴가를 내는 건 말로만 "편하게 써"이지 휴가를 다녀오면 "오랜만이네"소리를 듣는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매너 텁텁한 곳이다. 과거에는 휴가를 내놓고도 출근하는 게 마치 잘하는 것인 양 여겨지기도 했으니 그래도 세월 많이 달라졌음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은 어떨까? 영국 공무원들도 휴가 가는 게 그렇게나 눈치 보이는 일일까? 영국 공무원은 휴가가 며칠이나 될까? 우리처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여름휴가도 2일이나 3일 정도로 쪼개서 쓸까? 참으로 궁금했더랬다.
누군가가 다른 구청으로 이직을 했을 때, Leaving Lunch를 먹으러 웬일로 버스를 타고 멀리 이동하던 때였다. 매니저 리사와 같이 앉았는데, 리사가 먼저 휴가에 대해서 물어왔다.
한국은 휴가가 며칠이야?
설명하다 보니 야박도 하다 싶었던 게, 신입은 휴가를 6일만 줬다. 19년에 바뀌어서 지금은 신입 휴가가 11일이라고 한다. 연차가 올라가면서 조금씩 늘어서 5년이 지나면 21일이 된다. 정확하게는 20일이고 전 해에 병가를 쓰지 않았을 때 21일이 된다. 영국도 휴가 일수가 비슷했다. 우리의 휴가 일수를 듣더니 리사의 반응이 ‘휴가가 많네?’같은 표정이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그런데 사실 상 영국은 공휴일이 정말 적다. 영국은 Bank holiday라고 부르는 공휴일이 8~9일 정도밖에 안된다. 한국은 15일 정도 되니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휴일이 많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휴가 기근에 시달리고 멘탈이 털릴까?
19년 여름이었다. 팀에서 하고 있던 도시재생사업 추진이 물올라 있던 시기였다. 주민공청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상상으로 지금 직원들이 다들 쫀쫀하게 긴장해 있는 상태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공유 캘린더를 보니, 해당 사업 팀장이 그 공청회 주간에 휴가고 당일에도 휴가였다.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이들은 이런 게 당연한 건가 문제가 안되나' 혼자 속으로 생각하던 차에 용역사와 현장 미팅을 하러 팀 직원과 같이 이동하던 중이었다.
로버트도 휴가고, 케빈도 없고 대체 어쩌라는 거야?
영국에서 겪은 직원들 중에 유일하게 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속도와 처리로 일을 쳐나가던 쌤의 말을 듣고 이게 영국인들도 아주 당연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구나 싶기도 했다. 팀 내 가장 굵직한 사업인데 팀장은 아내 생일이라고 안 나오고 과장도 여름휴가라는 건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물게 일 잘하고 비슷한 답답함을 공유했던 쌤은 그 행사가 끝나고 그해 8월 5년 가까이 몸담았던 그곳을 떠나 프리랜서가 되었다.
여하튼, 정해진 여름휴가 기간도 없었을뿐더러, 단지 중요 행사가 있는 시즌에 휴가를 갔다는 것뿐만 아니라, 기본 2주씩 휴가를 간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고, 정.말. 부러웠다. 자신의 휴가를 자유롭게 장기 여행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 눈물 나게 부러웠다. 우린 5일만 붙여 써도 오래 다녀왔다는 눈치가 보이고 10년 재직하면 쓸 수 있는 10일 휴가도 싹 붙여 쓰지 못하고 끊어 쓰는데 말이다.
그렇게 겉에서 볼 때는 아무렇지 않게 2주씩 장기 휴가를 다녀왔고, 그러고도 로버트는 승진하여 재계약했다. 휴가와 승진은 상관이 없나 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참 낯설다. 그렇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특급열차를 탄 듯 잘 돌아갔냐 하면 그렇게 보이진 않았고, 그저 개인의 권리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침해받지 않는 것이 당연 당당해 보였다. 일에 문제가 없었다면 쌤이 투덜거릴 일도 없었겠지. 이런저런 이유로 영국은 사업 추진의 속도감이 우리와 정말 달랐고 효율성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이 참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진행되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무엇을 이루어내겠다고 승모근이 화가 날 정도로 경직해가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인 공청회 전에 주기로 한 워크샵 워크시트를 당일에서야 받을 수 있어 바들바들거렸던 것은 나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꾸 독촉하는 저 동양인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