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은 영국 관공서

영국도 건축허가 업무는 파이팅 가득

by Scribblie

그 점잖은 영국 사무실, 빨간 바지 게리의 격앙된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주목시켰다. 대놓고 쳐다보는 이는 없다. 하지만 다들 눈과 귀가 쫑긋!한 게 느껴졌다. 운 좋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보이는 자리에서 게리가 보였다. 가뜩이나 안 들리는 영어지만 귀에다 눈까지 온 에너지를 모아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분명 업무적으로 언쟁이 있는 것이었다.


소싯적 구청 건축과에서 일할 때 새파랗게 어린 스물여덟 여자애가 지역 갑부 건축주에게 법대로 좀 하자고 전화통에 대고 소리친 일이 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는 "이제 일 좀 하는구먼"이었다. 뭔가 겉돌던 어린 직원이 의례식을 치르고 무리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장면이었다. ‘잘못한 줄 알았는데 잘했다고?’ 어리둥절했지만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건축과란 "파이팅=업무력"인 그런 곳이었다. 조물주 위에 건축주는 심지어 법 위에 있다. 사업수완 있는 건축주들은 건축 허가를 자주 받아 봤기 때문에 본인들이 법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적막할 것 같은 관공서지만 건축과만은 언제 무슨 일이 터질 지 모른다. 집단 민원이 몰려올 수도 있고 때로 몸싸움이 나서 청원경찰이 달려오기도 한다. 이팀 저팀 신경전이 느껴지는 전화통이 하루 종일 사무실을 메운다.


영국의 구청은 정말 놀랍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조직도라는 걸 볼 수 없다. 당연히 업무 담당자 같은 것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내부 조직망에서도 한눈에 검색이 되지 않았다. 업무명이나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면, 있는 사람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업무당당을 찾을 때 옆 직원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모른다며 알음알음 물어서 알려주었다. 하물며 민원인이 구청 홈페이지에서 업무 담당자 이름? 사무실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언감생심 알아낼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해당부서나 업무별 대표 이메일 정도를 개설해서 개시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제출해야 할 학교 등록 서류 같은 것도 1층 리셉션에 제출하면 해당 부서로 전달해주기에 처분이나 연락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런 걸 더러 관공서가 갑이라고 하는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레슬리는 그랬다. "킹스턴 주민들이 내 개인 메일로 메일을 보낸다고?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저 공무원의 신원은 공용 물품같은 거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아 이 발상은 너무 고급진데......


그렇게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관공서 사무실은 시끌시끌할 일이 잘 없었다. 2년 근무하는 동안 사람들의 귀를 주목시킨 목소리는 빨간 바지의 게리 한 명이었다. 그는 건축허가 담당이었다. 영국의 건축허가 담당은 꽤 재량권이 있어 보였다. 허가 전 사전허가 단계가 있는데 한없이 그 검토기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허가를 받느라 고생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창문 모양 하나 때문에 허가를 거절당해 또 수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같은 건축공무원 입장에서 그 재량권 참 쿨한데?

그렇다면 동네를 영국처럼 아기자기 몇백 년을 지켜 아름답고 맥락 있는 디자인을 유지해나갈 수 있겠다며 위험하고도 들뜬 상상을 아주 잠시 했다. "옆집이랑 디자인이 너무 다르니까 안돼", "예쁘게 좀 해봐" 이런 게 된다는 건가?! 한국에선 그랬다간 당장 과장님이 어디 모를 높은 분에게 전화 한 통 받고 불려 가서 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들을 각이다. 한국의 건축허가는 재량행위는 사실 상 없다고 볼 수 있고 모두 기속행위이다. 그저 법의 해석 때문에 설왕설래하는 경우는 있어도 어우 감히 "옆집이랑 창문 형태가 달라"를 찌꺼린다고? 지구단위계획도 그렇게까지 규정할 수는 없다.


그날 게리는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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