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책상 없는 영국직장

by Scribblie

우리나라 관공서를 스마트 워크스테이션으로 운영한다고 상상해보자.


정해진 자기 책상 없이 아무 자리에 앉아서 개개인에게 주어진 랩탑을 꺼내서 모니터에 연결한다. 옆에 앉는 사람이 언제나 바뀔 수 있다. 팀장도, 과장도, 국장도 자리가 없다. 그들의 자리라고 비워두지 않는다. 킹스턴은 그런 핫데스크 방식을 2018년 초에 도입했다. 순간 이상적으로 느껴지면서 '한국도 이런 방식으로 하면 안 될까?' 생각했지만 이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일찍 출근(하라고 강요당)한 팀 막내가 사무실에 들어선다. 텅텅 비어 있는 데스크를 보면서도 공용 테이블에 가 앉는다. 오늘도 몸 한 군데 의지할 데 없이 지나다니는 모든 선배들의 시선을 다 받아내고 이런저런 입담의 미끼가 된다. 이 상상에서 깨어나며 몸서리가 쳐져 고개를 내져었다.

한국의 관공서는 서열순으로 앉는다. 팀장을 중심으로 우청룡 좌백호처럼 급수 순서로 배치된다. '과장님 좌석' 그리고 '벽'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과의 차석은 과장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과장님 좌석에 따라 좌석 서열이 우측에서 시작할지 좌측에서 시작할지 정해진다. 또 등 뒤에 벽이 있거나 캐비닛이 있어서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 상석이기에 서열 순서가 시작하는 것은 벽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그 말인 즉, 막내는 언제나 근무시간 내내 뭘 하는지 오가는 사람에게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앉게 되고 누구나 지나가며 한 마디씩 던질 수 있는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호받지 못하는 자리의 파티션으로 내려앉으며 돌 사이로 몸을 숨기는 도마뱀처럼 어떻게든 자리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공무원 조직 문화를 모르면 일반 직장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뭐 좀 보이는 곳에 있으면 어떠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승진의 기쁨은 더이상 말석에 앉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고 승진해도 기쁘지 않았던 것도 서열로 하다 보니 등 뒤가 벽이었는데 내 등을 모두에게 보여야 하는 자리로 가게 되었을 때였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큰 조직은 좀 다르지만 구청단위는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다. 큰 조직도 시시콜콜 왈가왈부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성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다, 그래 한국에서는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문화 안에서 싹트는 것이고
유연함이 아니라 오히려 위화감이 될 터이지.

아마 이 제도를 한국에 가져다 놓으면 어쨌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상석은 상사가 차지하도록 배려될 것이고, 사무실 공간 비용 절약을 위해 잘려나간 자리의 희생양은 바로 서열 맨 하위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잘 정착되었을까? 영국에서도 습성을 못버리고 가장 좋은 자리에 개인 소지품을 두고 자리를 찜해놓는 직원이 있었고,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깨끗이 치우지 않아서 자리에서 밥을 먹지 말라는 이메일이 돌기도 했다.

핫데스크 방식에 영국인이라고 다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보란 듯 좋은 자리에 자기 물건을 두고 자리를 맡아뒀던 늘 애증 관계에 있었던 클로에.


그렇다면 킹스턴에서는 왜 핫데스크 방식이 시행된 것일까? 그것도 한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너무 갔다 싶을지 몰라도 2011년 시행된 Localism Act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2017년 4차 산업과 함께 참으로 이슈가 된 또 하나가 지방분권화였다. 대체 4차 산업과 지방분권이 왜 모든 포럼이나 컨퍼런스에서 같이 언급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뭔가 연관관계로 이해하고 그렇게 엮어 간 건 오류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그냥 두 가지가 따로 또 같이 진행되었을 뿐이고 어떤 접점이 있을 수도 있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다시 역순으로, 이 이야기가 왜 로컬리즘법 시행으로 거슬러 올라가는지 이야기해보겠다. 핫데스크의 주된 목적은 사무실 공간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사무실에 사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면 실제로 그 사람이 있든 없든 공간은 유지되어야 하고, 조직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공간이 부족하면 건물을 임차해서 임대료를 내야 한다. 기관 소유의 건물이라 할지라도 만약 그 공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다른 주체에게 임차해서 세입예산으로 잡을 수 있다. 즉, 모든 이유는 세이빙(Saving)이다. 영국의 어떤 제도의 취지, 서류에서 세이빙이라는 말이 빠지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왜 그렇게 세이빙을 강조할까? 영국은 선진국, 선진국은 부자나라 아니었던가? 그러면 중앙정부, 지방정부 모두 부자가 아니던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 탓을 최소한 킹스턴 구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지방분권화 때문이라 투덜거렸다.

로컬리즘은 왜 시작되었을까? 겉보기에는 지방에 자치권을 더 주며 결정권도 자율성도 더 생기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것은, 재정의 자립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영국 중앙정부는 2014년부터 차차 지자체의 재정독립을 시키려 준비했고, 킹스턴은 그중에 지방세가 많이 걷히는 부자 구청인 편에 속해서 100% 재정 자립이 일찍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좋은 말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고, 적나라하게 말하면 중앙정부의 예산 수혈이 일찌감치 끊기는 구청이었던 것이다. 2019년 연초 회계연도 시점에 전 직원회의와 팀 회의에서도 모든 화두는 중앙정부 예산 지원 중단에 대한 것이었고, 각 부서는 예년도처럼 예산을 확보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결국 돈은 정치에 달린 것이고 정치는 표에 달린 것이다. 그 지역을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우선순위로 둘 것이라 생각하면 너무 순진한 것인 건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 당장 표가 눈에 보이는 복지 예산 위주로 편성되었고, 정작 도시환경과 일반인들의 삶의 질과 연결된 도시행정 관련 예산은 후순위로 밀려서 가뜩이나 가지 않는 사업들이 더 가지 않게 되었다.

자, 이제 왜 핫데스크를 했는지 알 것 같은가? 화려하게 IT부리고자 한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연관 고리로 아주 잘 정착된 재택근무도 이야기도 해보자. 이 점은 사실, 개인적으로 꼭 대면보고해야 하고 지면 보고해야 하는 문화를 극도로 혐오하고 관리자들의 노화와 무능의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 사무실의 몇몇은 회의실에서 참석하고, 동시에 외부에 있거나 재택 하는 사람도 구글 행아웃으로 참석하는 것이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그 문화는 정말 좋았다. 우리는 사무실에 없는 것을 개인의 사정이라 탓하지만, 그런 회의에서 개인의 기술적 불편으로 업무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상사든 부하든 각자의 몫이 되는 그 냉정이 좋았다. 아마 그런 문제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겼다면 2년 뒤에 재계약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매니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던 리사는 첫출근 때 2주간 재택근무에 들어가 있었다. 외국에서 새 직원이 왔는데 회사에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하프텀 방학!

하지만, 그 재택근무도 결국 조직과 개인의 세이빙과 관련이 된다. 재택근무를 하면, 사람이 자리에 나오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책상 수가 적어도 된다. 그러면 임대료가 나가지 않거나, 그 공간을 임차해서 수입을 잡을 수 있다. 그래야만 지방재정을 확보할 수 있고 시민들을 위해 예산 계획을 할 수 있다. 개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공교육 이전의 보육시설은 정말 비싸다. 재택근무를 하면 그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버스와 기차(한국에서의 지하철 같은 역할을 기차가 하는 곳이 많다)를 타면 하루 출퇴근 교통비로 만원은 우습게 나가는 곳이 영국이다. 가난한 영국인들이 그래서 자전거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타는 것이다. 그러니 재택근무라도 허용해줘야만 전세도 없는 런던에서 한 달에 방 한 칸 100만 원, 하우스는 400만 원 월세 내면서 겨우 먹고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제도는 사회의 사정과 문화에 근간한다.
그냥 제도라는 껍데기만 떼 오면
안 맞는 하이힐을 신은 듯까지고 속이 곪기 마련이다.

그래서 업무 효율은 좋았느냐 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는데, 그게 재택근무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영국의 텐션이 한국과 다르다. 영국의 이런 시스템이 빛을 발한 것은 코로나였다. 한국은 재택근무가 흔하지 않았기에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데 사기업도 상당 시간이 걸렸지만, 영국은 바로 시작할 수 있었고 넉 달의 락다운 기간 동안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풀타임 재택근무를 했다. 물론, 재택근무가 환자수를 줄여줬다고 말하기엔 영국이 코로나 환자수 많기로 둘째라면 서럽게 지금도 일 7-8 천명씩 환자가 나오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핫데스크는 정확하게 어떤 업무체계와 조직을 바탕으로 어떤 기술적인 방법을 갖고 시행되는 것일까? 2018년 2월 전까지는 킹스턴도 사일로(Silo) 방식이라 부르던 우리나라 관공서와 같이 피라미드 형식의 조직 체계를 갖고 있었다. 업무의 구별과 경계가 뚜렷했다. 하지만 조직 개편 이후 업무와 조직은 Task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도시행정의 경우, 도시계획, 도시재생, 시설업무와 같이 물리적인 부분의 업무를 묶어 나누는 것이 우리가 아는 보통의 조직이듯 킹스턴도 그랬다. 하지만, 개편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도시재생이라고 부르는 Regeneration 부서에서 도시의 물리적인 재생만 맡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재생을 함께 담당한다. 사실 그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따로 떼어 행정을 추진하다 보면 사업의 목표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를 실제로 본 일이 있었다. 둘을 하나의 부서와 Task로 묶어서 하나의 Body로 가면 목표 설정부터 하나로 시작하기에 방향성의 충돌은 생기지 않는다. 이 조직의 개편이 핫데스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면, 팀별로 자리를 앉을 때는 업무의 Mix-up이나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기가 어려운데, 정해진 자리가 없는 경우, 업무의 변화와 진척에 따라 또 그날의 필요에 따라 근거리에 앉을 동료가 쉽게 바뀔 수 있고, 목적하지 않았더라도 낯선 동료와 앉으면서 업무에 새로운 장이 열릴 가능성도 열어두는 것을 핫데스크의 목표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핫데스크 시행과 관련된 조직의 목표, 업무 체계의 변화를 간략화한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글의 크롬북 OS를 기반으로 한다. 클라우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ICT 부서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보안에 대한 관리가 가능하다. 파일들은 업무 관계자들에게 공유하면 접근이 가능하다. 신입들이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한국처럼 그 부서의 모든 폴더를 한눈에 볼 수 있다면 필요해 보이는 폴더를 관리자에게 요청해서 권한을 얻을 수 있지만, 크롬북에서는 수평적 관계로 각자가 폴더를 생성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공유하는 식이다.

개별 문서도 업무 관련자들 간에 공유가 되는데, 구글 dox의 이 공유 시스템은 매우 유용했다. 문서를 만든 사람은 있지만, 공유된 사람 중에 편집 권한까지 부여된 경우는 그 문서를 여러 명이 동시에 접근해서 편집하고 코멘트를 달고 코멘트를 보며 수정하고 추가하며 실시간으로 문서라는 매개를 이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이 방식을 사랑했던 것은, 문서의 권위가 완전하게 사라진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작성해서 팀장이 확인하고 과장이 승인하는 그런 구조의 "서열"퍼런 어려운 문서님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층위에서 접근할 수 있고 권위주의 없는 업무 효율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담당자-팀장-과장 찍고, 다시 팀장이 들은 과장 지시에 따라 한번 더 담당자-팀장-과장"으로 무한 루프 돌던, 돌다 보면 과장이 팀장이 고친 거 싫어서 화내고 결국 담당자랑 과장이랑 직접 대면해서 고치면 팀장이 못마땅해하고 결국엔 담당자가 작성한 원안으로 돌아오던 그 비효율과 권위에 지쳐있었다.

중앙 시스템으로의 접근은 회사 이메일 계정을 아이디로 비밀번호와 개인 핸드폰의 Authenticator 앱에서 임시적으로 발생되는 번호를 입력해서 인증하고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랩탑만 켜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지만, 심지어 컴퓨터가 없어도 어디서나 일 할 수 있었다. 핸드폰에 구글 메일 앱과 구글 dox만 깔고 인증만 하면 모든 업무를 핸드폰으로도 실시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 뚜껑을 덮는다고 해서 업무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영국 공무원들은 절대로 업무 시간 외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메일조차 보내지 않는다는 것!

이런 크롬북 시스템은 멋져 보이지만, 크롬북은 아직 세상과의 호환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프린트를 하려면 파일이 (별도로 할 수는 있지만) 컴퓨터에 저장되는 시스템도 아니고, 프린터도 클라우드 프린터인데 크롬북 기반에서는 출력되지 않아서 윈도우 기반으로 전환해 들어가서 출력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출력은 종이 절약을 위해서 하지 않는다는 마인드라서 그런 것일까? 또, 여전히도 세상은 아직 윈도우의 세상이다. 그리고 MS의 세상이다. 비교적 MS와는 Google dox가 호환이 잘 되어서 구글을 쓰지 않는 곳에 문서를 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나, 한글 프로그램을 쓰는 한국 관공서에 문서를 보낼 때는 3단계를 거쳐야 했다. Google dox로 만들고, MS로 내보내기 저장하고, MS 파일을 한글 파일로 만들어주는 앱을 사용해서 변환해 보내야 했다. 변환이 잘되느냐 하면 물론 아니다. 문서 틀이 다 흐트러져서 일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결국 이건 잔업처럼 이메일로 보내서 개인 노트북에서 MS를 한글 파일에 옮겨서 다시 편집을 하고 보냈다.

그것도 모르고 프린터 드라이버 잡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던지... 결국 프린터기에서 사원증 인식이 안되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 직장의 자료를 활용해서 업무를 할 일이 있어서 한국 직장의 원격 시스템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크롬북 기반에서는 한국의 공인인증을 하고 한국 시스템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ICT 팀에 문의를 했을 때 보통은 이메일로 답을 주지만 이렇게 흔치 않은 일을 벌이는 것은 킹스턴 구청에 하나 있는 한국인뿐이었으니, 결국 ICT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나를 찾기 시작했고 가상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것을 선보여주었다. 결론은 가상(Virtual) 시스템으로 들어가서 접속해야 하는 방식을 써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 접속 방식을 영구적으로 사용할 방법은 없었고 매번 ICT의 승인이 필요했으니 기본적으로 공인인증서로 접속해서 써야 하는 한국 직장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쓸 수는 없었다.

ICT 팀을 당황하게 했던 가상시스템 접속

크롬북 보안의 장점은 영국 회사를 퇴사할 때 발휘되었는데, 영국 회사 이메일 계정이 사라지면서 개인적으로 받았던 업무 교육 자료를 개인 하드디스크에 담아왔는데, 그 파일들이 싹다 고스트처럼 사라졌다.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 글을 따라 읽으며 떠올려보기도 어려운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재밌는 경험이었다. 다음에는 좀 친숙하고 가벼운 영국 직장의 식사문화, 출퇴근같은 근태(?)와 같은 이야기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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