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도 엄연히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영국
뉴몰든 웨이트로스는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간단한 한국 식료품을 사야 할 때는 바로 옆에 서울프라자가 있는 뉴몰든의 웨이트로스에 가기도 했다. 1타 2피랄까...
그날은 특별히 아이와 함께 뉴몰든 웨이트로스로 주중 생존을 위한 주말 쇼핑을 갔던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라운드 어바웃을 270도 돌아 초행엔 지나치기 십상인 좁다라한 웨이트로스 주차장 입구로 능숙하게 들어갔다. 주차 후 서울프라자에 살짝 들러 간단히 한국식료품을 사고 별미로 아이에게 한국 과자를 사주고 빠르게 빠져나왔다. 한국인인데도 느낌적 느낌이 달라서 어색했던 한인 상점(사실 뉴몰든의 모든 한인가게에서 그랬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지라도..)을 나와 경쾌하게 웨이트로스로 옮겨겼다. 카트를 뽑으려고 지갑에서 1파운드를 찾아 헤매는데 50센트밖에 없는 게 아니던가. '대체 동전들은 왜 두께가 달라가지고 말야.' 포기하고 무겁지만 바구니로 해야겠다며 돌아서는데, 누가 불러 세웠다.
그는 웨이트로스 출입구에 늘 앉아있던 홈리스였다. 순간 살짝 멈칫했는데, 그는 끈이 달린 반짝이는 무언가를 내게 내밀고 있었다. 우리가 카트에 넣을 1파운드가 없다는 걸 알고 동그란 금속을 쓰라고 내민 것이었다. 우리네의 정서 상 홈리스와 소통한다는 것이 여전히 낯선데, 게다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받는다고? 난 그 순간 내가 놀라거나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믿고 있다. 정확하겐 믿고 싶다. 웃으며 정말 고맙다고 했다.
쇼핑을 하는 내내 고마운 감정과 기쁜 듯 낯선 듯한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다. 이것이 그의 나름의 비즈니스인가 하는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다. 계산대에 오기 전에 물 한 병과 비스킷 한통을 더 샀다. 그리고 그에게 가짜 동전을 함께 돌려주었다.
영국에 왔을 때 너무나도 신선하고 놀랐던 장면은 바로 길거리 홈리스에게 평범한 사람들이 눈높이를 맞추며 앉아서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네 서울역이나 노숙자들은 마치 시공간을 달리하는 듯 보통(?)의 사람들과 유리되어 살아가고 우리는 늘 경계를 하며 지내는데, 영국에서는 노숙자들도 그저 주거의 방식을 달리할 뿐 보통 사람이었고 경계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그들은 우리의 노숙자들처럼 울분에 차있다거나 그렇다기보단 그저 거리 생활이 편안해 보였다. 누군가에게 경계선을 만들지 않는다는 건, 나 자신의 긴장도도 낮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영국은 또 한 번 편안했다.
지금도 출근길 M&S 앞 그 아저씨는 잘 계시는지, 킹스턴역 굴다리에 비가 오던 겨울철 한동안 이불만 남아있어 잠시 걱정시키던 머리가 무릎만큼 긴 분은 이번 겨울을 잘 나셨는지... 가끔 안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