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늘 값비싸고 고됐다.
어찌 2년마다 이사를 하는 운명에 처했을까. 그래도 귀국하고 3년이나 산 이 집이 가장 오래 살았네…….
그런 저런 이사에 대한 서글프고 고단한 생각을 하며 존루이스에서 산 스카프를 꼭꼭 눌러 다림질하고 있었다.
그렇게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영국에서 급하게 물세탁할 일도 없었을 거고
이렇게 푸석한 스카프로 만들어놓진 않았을텐데..
눌어붙지 않을 온도가 어디쯤일까 신경써가며 일년에 다섯 번을 넘지 않는 다리미질을 스카프에 할애한다.
그렇다, 이 스카프는 잃어버렸었다. 런던의 85번 버스에 새빨갛게 놓고 내려버렸다. 존루이스 백화점에서 따뜻한 꽃무늬에 홀려 인생 첫 스카프를 사고 채 며칠 지나지 않았었다. 그때의 그 황망함이란…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런던인들의 도덕성과 분실물 시스템을 시험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버스는 공영 그러니까 교통공사에 해당하는 TfL(Trasportation of London)에서 운영한다. 고로, 분실물도 TfL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뇌피셜이 가동되었다.
역시! 있었다. 그때서야 분실물을 Lost Property라 부른다는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 배움의 값은 늘 비쌌고, 아팠다.
분실물에 Property라는 단어는 너무 거하지 않아?
집도 보트도 Property라 부르면서
분실물 신고하는 페이지에는 물건의 자세한 정보를 입력하게 되어 있다. 다행히 아직 존루이스에서 팔고 있던 물건이라 홈페이지에서 제품 정보를 정확하게 기재할 수 있었다.
영국이 늘 그렇듯 잊을 때쯤 연락이 왔다. 노팅힐에 엄마를 모시고 갔던 날이었다. 즐거운 일은 겹치는 걸까?
Baker Street역에 분실물 보관소를 찾으려고 밖으로 나와 역을 반바퀴쯤 돌았다. 역 안에서 보이는 곳에 보관소 문이 있을 거라는 예측도 지나치게 한국적이었던 거였다. 86년이나 이 자리에 있던 분실물센터는 그 이후 머지 않아 South Kensington으로 이전했다.
직원은 찾아가라고 연락을 했으면서도 투명한 부스안에 딱딱하게 앉아 꼼꼼하게 확인했다. 물론 신분증도 필요했고, 돈도 필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분실물을 찾는다고 돈이 들거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영국에서는 15파운드를 낸 기억이 어른거린다. 2만원 넘는 돈을 내고 찾아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찾아본다는 실험의 댓가이다. 다행히 스카프값보다 비싼 댓가를 치른 건 아니었다. “경험+고생”까지 다 돈으로 샀던 타국생활.
런던 카페에서는 시퍼렇게 눈뜨고 있어도 내 테이블에 놓아둔 핸드폰이 어느새 분실된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한국에 온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노트북을 놓고 화장실 다녀오는 걸 보면서 기암할 법하다.
거주하던 곳이 영국 로컬주민 비율이 높은 Outer 런던(런던은 City of London, Inner London, Outer London 총32개구로 구성되어 있다.)이어서였는지, 업무차 런던시내에 출정할 때에는 각별히 조심해서였는지, 아니면 핸드폰 중독자여서 손에서 놓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팔려는 척 브로셔를 보이며 핸드폰을 쓱 가리고 채간다는 놀라운 기술을 당해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 드랍하려고 정신없이 차에서 내리다 핸드폰을 흘렸었는데, 전화를 걸어보니 본인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에게 맡길테니 Elm로드에 있는 펍 근처로 오라고 했던 경험이 있다. 정말 그곳엔 나의 핸드폰을 갖고 있은 사람이 자기 시간을 할애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댓가도 없이. 심지어 핸드폰 케이스 안에는 체크카드도 있었다.
소매치기가 난무하는 런던에서
스카프를 챙겨준 85번 버스의 그 사람은
누구였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분실물 찾기 실험을 끝내고, 약간 때가 탄 스카프와 약간 더 낡은 내가 같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배움의 고단함을 Baker Street 스타벅스에 내려놓았던 기억을, 스카프에 꼭꼭 눌러담으며 다림질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