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이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1월 18일,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만 해도 코로나는 중국 땅 남의 이야기 같았다. 머지않아 한국에 지금처럼 하루에 500~800명씩 환자가 나오던 코로나 돌풍이 불 때쯤, 지인들이 “영국에 더 있을 걸 그랬다.”는 말을 전해왔지만, 영국을 아는 이상 “아니야, 영국에 환자가 10명밖에 안 생기더라도 나는 한국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해.”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뭐든 최고 나라인 미국이 코로나도 1등을 하고 있어서 그 숫자가 무색하지만, 이탈리아, 프랑스를 이어, 영국도 그 두 달 뒤 코로나 대국에 당당히 명부를 올렸었다. 가디언지가 지난 9월 발표한 기사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100만 명 당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622명으로 영국이 최고였다. 놀랍지도 않았다. 평소 생활 습관, 공공의료 시스템, 가치관을 놓고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영국에 살면서 유럽 사람들은 집은 그냥 땅 위에 박스 케이스를 하나 놓은 것쯤으로 생각하는 외부의 연장선 상인가 생각했더랬다.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는 것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밖에서도 집 안처럼 바닥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것이 더 그랬다. 그런 면은 영국보다 스페인이 더 심했는데, 바르셀로나 공항에서는 의자를 텅텅 비워두고 그 의자에 기댄 채 청년들이 단체로 바닥에 늘어 앉아 스낵을 먹고 있었다. 마치 한국인들이 소파가 있어도 등받이 삼아 거실 바닥에 앉는 몸에 밴 좌식문화가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영국 학교에서도 의자와 테이블 다 있는데도, 아이들을 꼭 신발 신고 다니는 바닥에 모아 앉혀서 영상을 보여주거나 수업을 하고 조회도 한다. 입식 생활을 하는 그들은 왜 그럴까?!
영국은 우리처럼 근무 8시간 외에 점심시간을 따로 1시간 개인 시간을 희생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보장된 점심시간이라는 것도 없다. 따로 점심시간이라는 게 없는 영국 어른들 세상에서, 런던 지하철 튜브에서 샐러드를 먹는 게 매너 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아주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바닥에 놓여있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굳이 샐러드 그릇을 지하철 바닥에 턱 하니 내려놓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왜 꼭 거기에 내려놓아야 하는데?! 무릎에 그대로 두고도 꺼낼 수 있잖아?!’라는 말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끓어오른다.
파리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는 말로만 들어왔던, 길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만 두 살 정도 되는 아기가 바닥에 떨어뜨린 과자를 다시 주워 먹는데 그 부모들은 관전하고만 있었다. 불과 3m 내에 공중 화장실이 있었고 모두가 그 길을 경로로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울고 싶다. 프랑스에 오래 산 친구가, 프랑스인 친구가 어릴 때 길바닥에 떨어진 껌을 주워 씹은 적이 있다고 했다고 해서 무조건 반사로 “우웩”해버렸다는 일화는 그저 영웅스토리가 아닌 것이었다.
이 모든 것, 신발 신는 집 카펫 위에 앉고 그 위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으니 조금만 연장하면 못할 일도 아닌 것일까?
영국은 지금도 일 2만 명의 신규 환자가 생기고 있고, 일 600명이 죽는다. 우리가 500명 신규 환자만 생겨도 난리가 나는 것과 참 다른 모양새이다. 영국 친구들 반응은 락다운의 불편함만 이야기한다. 방역 시스템에 대한 불평은 들을 수가 없다. 어제 왓츠앱으로 영국 상황이 안 좋던데 괜찮냐고 말을 걸었더니 클로이는 “매스컴은 언제나 크게 떠들어 대지, 내가 느끼는 건 그 정도는 아냐.”라는데, 그냥 숫자가 엄청난데 뭐가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걸까. 밖에 사람들이 멀쩡하게 활동하네? 괜찮네? 그럼 나도 다니자. 이런 것일까? 그러니까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 아닐까?
나름 문화 수준이 있는 런던 서남부 지역 지인들 자녀 학교에서도 환자가 더러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클로이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게 아닌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지역 인기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일본인 엄마와 중국인 아빠를 둔 친구가, 딸아이에게 보내온 이메일을 보면, 본인이 서른 명 정도 되는 급우들 중에 유일하게 영웅적으로 마스크를 하는 아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소중하디 소중한 한국의 시각에서는, 11살 이상 만이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규정(COVID Tier)이 참 낯설다. 어른들은 못쓰더라도 애들은 어떻게든 구해다 쓰게 할 텐데 말이다. 추측해보건데, 아이들이 코로나에 덜 걸리거나 경증이라는 것, 그리고 건강 조건이 들쑥날쑥한 서양인들을 생각해보면 아직 성숙하지 않은 폐기능 등으로 인해 마스크 착용의 부작용 등을 고려해서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규정이 아니라고 해서 안 하는 것도 참 생각이 있는 것일까 싶지만, “너는 왜 마스크를 하니? 효과 없대!”라고 한다는 것을 보면, 그 부모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그 친구는 용감하게도 “위험해 처해서 죽고 싶으냐”라고 대응하면 ‘그저 몇몇 정도’만 이해한다고 한다.
대학가도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도 젊은 계층이 가장 조심을 하지 않는 것이 이슈가 되었듯 오프라인 개강도 하지 않는 런던의 대학가 펍(Pub)은 여전히 줄을 선채 붐비고 있다. 그날도 신규 환자 2만 명, 사망자가 600명을 찍던 락다운 중인 날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는 있는 모습이 걱정’이라며 그 입무거운 친구가 한 소리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보리스 존슨은 집단 면역을 몸소 보여준 실천력 있는 총리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의 개념 대로, 정말 죄다 걸려서 약한 개체는 속아내 버리고 강한 개체만 끌고 가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싶었다. 우후 죽순 죽어나가는데 영국 정부는 초기에 ‘마스크 소용없다. 동양의 문화일 뿐이다. 손만 잘 씻어라.’라고 홍보했었다. 그때는 우리나라도 마스크 수급이 원활치 않던 때였다.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2차 산업 패망한 나라.. 마가렛 대처 때 모든 기반 산업 다 민영화하고 외국에 다 팔아넘기고, 모든 공산품은 EU에서 받아쓰는 나라이니 급가동해서 마스크를 만들어낼 능력도 없을테지.. 공급을 못하는데 마스크 효과 있다고 말할 수도 없을테지, 어차피 중산층 이상 귀족들은 사립병원 이용해서 나을테니 일반 민중은 자가면역으로 살아남을테면 살아남고 아니면 속아내자는 건가, 덕분에 고령층이나 빈곤층 인구가 줄어들면 복지 예산도 줄이고?’하고 거친 생각을 했더랬다. 목숨도 다 같은 목숨이 아닌 겐지, 계급사회 영국에서는 높은 분들 목숨과 워커 계급의 목숨 값이 여전히도 공공연히 다른 것인지.
우습게도, 동양의 문화일 뿐이라더니 공공장소 마스크 착용을 규정화하였고, 댓글엔 그러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조롱이 한 바가지이다. 조롱은 좋은데, 부득불 안 쓰겠다고 자기 목숨 담보하는 걸 보면 그들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궁금해진다.
영국은 그런 나라이다. 최첨단 기술들을 보면 이래서 선진국이구나 싶고, 일상의 삶을 보면 이래서 어떻게 사나 싶다. 영국에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하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일반 의료 시스템 때문이었다. 영국이 마치, 미국이 의료보험 민영화로 잃어버린 공공의료에 대조되는 공공의료 성공축으로 회자되곤 하지만 한국인 눈에는 그리 보일 수가 없다. 병원비가 무료인 NHS 체계가 어떤 나라에서 보면 꿈같을 수도 있다. 외국인이지만 의료보험료를 2년 치 냈기 때문에 자궁암 검사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들 손에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기에 검진은 받지 않았었다. 우리처럼 일반 의원들이 진료과별로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 1차 의료 기관인 GP라는 가정의학과 같은 의원에 등록하고 다니게 된다. 무료라는 것은 좋으나, 차라리 돈을 몇 파운드라도 내더라도 2주씩 기다리다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병이 자가 치료되거나 혹은, 감기로 죽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국에서 2015년부터 2020년 사이 감기로 인한 사망자수가 11,000명이다. 한국이 감기로 인한 사망자 수가 2,300명 정도인 것과 비교해보면 인구수가 1000만 명(16%)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환자수가 5배 이상 많은 것은 의료 시스템 문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의료시설이나 집기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기에, 만약에라도 코로나가 의심되거나 아픈 상황에 우리나라처럼 즉각적 입원이 안될 것도 예상이 되었고 일에 대처하는 속도의 어마한 차이를 알기에, 한국이 영국보다 코로나가 심각했을 때에도 한국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던 이유였다.
다만, 첨단 기술의 수준과 투자 부분에서의 역량을 알기에 백신은 먼저 개발되고 보급되어, 속아낼 유전인자 이미 속여지고, 집단면역 어느 정도 형성되고 백신 보급되면, 힘의 논리 상 백신 조달력이 떨어질테고, 철저한 자가 방역으로 집단면역이라고는 없을 한국보다 코로나에서 먼저 벗어나는 게 아닌가 슬며시 생각해보았었다. 아닌 게 아니라 봄쯤에 예상했던 그 징조가 보이는 듯하다. 그때가 되면 국민성과 IT 보급 활용력으로 성공적 이어 보이던 한국의 방역과 정부의 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게 되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 나라와 국민을 지켜나가느냐 하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모든 나라들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