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라고 하면 흔히 이렇게들 얘기한다. 그럼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 사람 입장에서 공감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넌 참 공감 능력이 뛰어난가 보다! 난 못할 텐데.."라는 말을 덧붙인다.
글쎄.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해를 해야만 함께 할 수 있는 걸까?
정말 단적인 예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생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계신다. 술이 조금 들어가고 나면 아버지는 항상 "나는 짚신 신고 다녔고.. 막걸리를 초등학교 때부터 마셨고.."라며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그러면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는 그렇게 안 살았어.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하신다. 반대로 아버지는 온 동네 맛집을 다 섭렵하시고, 저녁에 맛있는 한 끼를 먹기 위해 하루를 보내시는 분인데 어머니는 그에 비해 "나는 회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아직도 모르겠어."라며 맛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먹는 편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내가 경험해보아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편이다. 식이장애도 그래서 상담 분야로 삼았다. 내가 경험해보아서, 더 이해를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웬걸, 상담을 하다 보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들이 더 많이 보였다. 식이장애라고 할지라도 온갖 디테일이 나랑 딱 맞게 똑같은 경우는 오히려 드무니까. 너무 체중이 적게 나가거나 10대 초중반부터 음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 식이장애가 있는 자녀를 곁에서 보아야 하는 부모님의 애타는 마음, 어렸을 때부터 뚱뚱하다고 놀림 받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감히 '이해한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아마 죽었다 깨도 우리 집 푸딩이가 왜 밥을 10초 만에 해치우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먹는 게 아니라 그냥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에 가깝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다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서로 모든 것을 이해해서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지내온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떤가. 나는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좋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를 계속 궁금해해보고, 이해해 보려고도 해보고, 이해하지 못해서 화도 내고 속상해도 해보고, 이해가 안 될지라도 그저 인정하면서 같이 감정을 나누고..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100퍼센트 이해해 줄 거라는 환상은 버리자. (나를 백퍼센트 이해해줄 사람이 어디엔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드니까) 그리고, 나를 다 이해해 주지 못하더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봐주자.
이해하고 싶어 애쓰는, 이해하지 못해 속상한, 이해는 안 돼도 같이 있고 싶어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