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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혜 Nov 25. 2020

김장 김치 담그기가 두렵지 않은 이유?


지난 주말.

한 해의 숙원 사업인 김장을 마무리 지었다. 

2018년부터 벌써 햇수로 3년째 아이들과 함께 김장 김치를 담그고 있다. 첫째는 8살부터, 둘째는 5살 때부터 고무장갑 끼고 김치를 버무렸다.


첫째와 둘째는 집안일에 참견(?) 하는 걸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요리할 때마다 와서 '계란을 톡 깨트려 보고 싶다, 국을 저어보고 싶다, 야채를 썰어보고 싶다'라고 했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엄청 피곤한 날에는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지만 보통은 자리를 내어주었다. 처음에는 도와주는 건지, 아님 나의 일을 더 만드는 건지 모를 솜씨들이었지만, 차츰 아이들의 실력이 늘어갔다.

이렇게, 아이들은 김장 김치에도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어린아이들이라고 해서 집안일에 예외를 두지 않는 건 어릴 적 기억에 톡톡히 한몫을 한다. 


나는 4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가부장적인 듯하면서도 아닌 듯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집안일은 보통 여자인 언니와 내가 차지했다. 밥 차리는 걸 돕는 일부터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은 당연히 언니와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학업에 있어서는 남녀 가리지 않고 공부 환경을 제공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에서는 차별을 심하게 느꼈던 나는 나중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으면 꼭 남녀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집안일을 시키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요즘은 남자들도 집안일을 많이 돕지만, 여전히 집안일하면 '여자들의 일'이라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나는 집안일이란 누구의 일이냐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치'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이라면 응당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남편, 아들, 어린 딸까지 김장 담그기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시부모님의 표정은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모두의 참여는 당연한 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시부모님께서 절임배추와 양념을 미리 준비해 주셔서 우리는 가서 김치를 양념에 버무리기만 하면 됐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까지 참여하리라는 사태를 예견하지 못하신 시부모님은 아마 1년 내내 아이들 손에서 조물딱 거려 져 숨이 팍 죽은 김장 김치를 먹으며 다짐하신 듯했다. 꼭 본인들 김치는 미리 담그리라고.


그래서 작년에 우리가 시댁에 도착하기 전, 시댁 김장 김치는 미리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도착해서 우리 집 김치만 버무리면 됐다. 하지만 작년에는 배추가 덜 절여졌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줄기에 양념을 팍팍 넣지 않고 잎에만 신나게 넣어서 그런지 맛이 깊게 배지 않았다. 게다가 물이 많이 생겨 1년 내내 밍밍한 김장 김치를 먹어야만 했다.


올해 역시 어머님, 아버님은 두 분 김치만 따로 담가놓으셨다.(현명하신 판단이셨다.)

우리 식구가 딱 앉아서 김치를 버무린 시간은 40분. 이번에는 둘째까지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앉아서 버무렸다. 이제 3년 차가 되니, 줄기 속까지 착착 양념을 넣어 버무려 내는데 김치통 3통을 뚝딱 채워냈다.

어머님도 그 속도에 놀라셨고, 나 역시 숙달되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어 놀랐다.


아이들의 집안일 집안일 스킬이 늘수록, 나는 김장 담그기 같은 집안일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일 년 내내 김장 김치 꺼내 먹을 때마다 "우리가 담근 김치!"라며 아이들이 자부심을 팍팍 느끼게 되니, 적은 시간 투자해서 길고 긴 효용을 누릴 수 있게 되니 어찌 안 할 수 있을까? 


비록 아이들만큼 김장 담그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지만, 최소한 김장 일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모두 함께 해 준 가족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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