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을 다스리는 의외의 방법은
그동안 소홀했던 나에게
정직한 한 끼를 대접합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밤 조림이다. 가을에 딴 밤을 잘 까서 설탕과 간장만 넣고 조리면 달고 끈적한 밤 조림이 된다. 숙성하는 데만 2달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오는 겨울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특별한 간식이다.
맛엔 기분이 담겨 있고, 기분이 맛을 불러내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도 기분에 따라 원하는 맛이 달라진다는데 아래와 같다.
우울함, 무기력함-단맛
사회관계 속 스트레스-짠맛
강한 스트레스(화병)-매운맛
분노와 좌절감-질긴 음식
불안감과 공포감-달고 부드러운 맛
외로움, 욕구불만-담백하고 포만감 있는 음식
출처) 유튜브 ‘다이어트 한의사’
그러고 보면 한창 겨울로 접어들며 추위가 시작될 때 즈음, 붕어빵이나 호빵처럼 달고 따끈한 음식이 당기곤 한다. 이 역시 추위로 인한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이겨내려는 하나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30만 년 축적해온 인간의 생체시계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해서 이성의 영역마저 압도하는 힘을 지닌다.
반대가 되어버린 영양공급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급문고에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가 있었다. 왜 굳이 ‘닭고기 수프’인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워낙 내성적인 성격 탓에 질문은 엄두도 안 냈다. 그러다 우연히 나와 똑같은 의문(사람은 정말 비슷하다)을 가진 반 아이가 국어 시간에 용감히도 질문해줘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선생님은 “닭고기 수프는 죽처럼 환자들이 먹을 수도 있을 만큼 단백질이 풍부하고 건강하니까.”라고 명쾌한 답변을 내놓으셨다.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천천히” 가 목표인 나만의 독서 기준도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출발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혼에 이따금씩 닭고기 수프를 대접하려고는 했어도 내 육체의 입맛은 적나라한 ‘단짠’이다. 그로 인해 체기로 한의원에 가는 것도 월례행사였다.
특히 스트레스가 유독 심해서 뒷목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갈 때면 생크림이 들어간 부드러운 빵이나 크림류의 디저트가 당겼다. 가끔은 대학교 1학년 시절,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전수받은 단짠 레시피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감자튀김을 소프트콘에 찍어 먹는 건데 감자튀김의 따뜻한 소금기와 아이스크림의 차가운 우유맛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또 진하다 못해 걸쭉한 느낌의 커스터드푸딩을 자주 찾아 먹기도 했다. 노란 계란 향이 올라오는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
몸의 독이라는 정제 탄수화물을 먹고 더부룩해져서 소화제를 먹을 때도 있다. 머리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몸은 저항하는 폭군이라도 되듯 자제를 잃고 과식하는 날이다. 쓰린 속을 달래며 후회에 잠길 때면 내가 무척 작아진다.
폭식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마음의 고통도 허기짐도 무조건 억누른다고 해서 그 충동과 감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일정 시간(보통은 2시간 이내)에 평소 양보다 많이, 그리고 멈추지 않고 먹는 폭식은 일종의 식이장애이다. 그렇지만 폭식을 누구나 몇 번쯤은 했으리라 생각한다. 일생의 몇 번 정도라면 걱정 안 해도 되지만 하나의 습관처럼 반복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이걸 ‘폭식 삽화’라고 하는데 비슷한 상황과 감정 패턴에서 폭식을 하는 걸 뜻한다.
내 폭식 삽화는 관계의 불안 속에서였다. 상사, 동료, 친구와 지내면서 긴장과 충돌이 생길 때면 이따금 혼자 많이 먹었다. 폭식을 하면 숨게 된다. 내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부끄럽지 않냐.”라고 다그치는 통에 수치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 하는 건데 먹기 위해 숨는 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과식한 뒤 퉁퉁 부은 얼굴을 마주할 때면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못된 쾌락에 대처하는 자세
최근 자기 계발 강사 김창옥 교수가 ‘김창옥 TV’ 강연에서 쾌락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었다. 쾌락을 좇는 것은 인간 삶의 보편적인 순리이며 좋은 쾌락과 나쁜 쾌락을 구분해서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고 나쁨의 기준은 무엇일까.
김창옥 교수는 이를 “행동을 마친 뒤에 나의 기분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정은 좀 섭섭해도 마치고 난 뒤가 더 만족스러우면 좋은 쾌락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운동처럼 가는 길은 고돼도 땀 흘리고 나면 개운한 이치이다. 폭식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나쁜 쾌락’의 범주에 속한다. 폭식이 주는 후유증은 소화불량, 위염을 넘어서 정신적 건강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돌이켜보면 식이장애(폭식을 포함하여)는 완벽주의 생각, 자기 비난, 낮은 자존감 등의 아픈 마음에서 나오는 신호였었다. 내 소중한 사람이 아플 때 “아픈 거 티 내는 거냐.”라고 호통치지 못하듯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잣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순응하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폭식을 부르는 ‘허기’를 채우는 진짜 방법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조금 배웠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한다는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는 뜻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또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조던 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우선 힘듦을 알아주고 좋은 쾌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그 자책의 시간들이 조금은 짧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만의 ‘뒤 끝이 후련하고 건강한’ 쾌락은 각자마다 그 모양이 다르겠지만 이를 만들어가는 건 나 자신을 데리고 살 때 꼭 익혀야 할 방법이다.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시간을 갖는다. 여전히 힘들 때 폭식의 유혹이 올라온다. 어쩌면 계속해서 이 유혹에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면서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무엇이 가장 알맞고 바른 방법인가를 알아갈 수 있다고 본다.
가끔은 온라인 소셜커머스에서 먹을거리를 장바구니에 잔뜩 담는다. 그러고는 한참을 지켜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그리고 엉뚱한 데서 종종 그 답을 다시 찾을 때가 있다. 일이 안 풀리는 데에 대한 불만이라던가, 쉬지 못해서 체력이 약해졌다던가 원인을 잘 생각해보고 답을 찾으면 이런 저런 해결책을 시도한다.
조던 피터슨이 말했듯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이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진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생각이 시키고 몸이 시키는 모든 것들이 전부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봐도 괜찮다. 나 스스로도 나 자신에 대해 매번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순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나 자신에겐 왜곡될 위험도 크다. 그러하기에 내 영혼을 위해서도 육체를 위해서도 우린 부단히 노력해 나아가야 한다.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만들 마음의 반이라도 진짜 닭고기 수프를 끓일 정성이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