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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Sep 16. 2020

쓰기: 일기를 통해 삶을 읽다

쓰면서 감정으로부터 해방되기


 


글쓰기는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독서 코칭 일을 하면서도 매번 느낀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독후노트를 쓸 때면 항상 책의 장면을 그리고 싶어 한다. 당연히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정말 그림 그리기가 좋아서 색연필까지 동원되는 몇을 제외하면) 글 쓰는 게 부담스러워서이다.


주인공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편지를 써보세요


간혹 이런 주제가 나오기라도 하면 밥맛 잃은 사람이 밥숟가락 놓듯이 연필을 내려놓는다. "못 하겠다."며 처연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문제집 쪽수대로 문제 푸는 식의 작업이 아니기에 마음이 없이 글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글이 아이에게 찾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곤 한다. 냄비에 담긴 물을 끓이기 전 예열하듯이 고요히. 그러다 시간이 차곡차곡 아이가 넘기는 책장과 함께 넘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연필로 꾹꾹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글이 모인다. 모아놓은 글들을 보고 있으면 그 투명함에 웃음도 나오고 감탄이 나올 때도 있다.


빨간 머리 앤을 읽은 한 아이가 앤에게 편지를 썼다. '앤아, 언제 정신 차릴래? 빨리 철 좀 들어라.'


비단 어휘력과 논리력이 부족한 아이들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건 아니다. 다 큰 성인 역시 글쓰기에 큰 부담을 갖는다. 글을 못 쓰건 유려하게 잘 쓰건 관계없이 글쓰기는 '어렵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광활히 떠도는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 중에서 괜찮은 글감을 찾기에도 마땅찮을뿐더러 이왕이면 잘 써야 한다는 강박도 한몫한다. 그리고 자기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건 어쩐지 스스로도 확정하지 못하는 자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 글을 써야 할 명분들은 많다. 특히 유수의 전문가들과 매체, 그리고 수많은 명저서들까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매일을 기록하는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일단 마음을 먹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까지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이후의 관문들로 인해서 쉽게 일기 쓰기를 포기하곤 한다.


첫째, 특별한 소재로 써 내려가야 한다는 부담이다. 일기 서두엔 늘 “제목”란이 있는데 여기서 막혀버린다. 사실 거창하게 타이틀을 붙일만한 사건이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피로로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 씻고 나갈 채비를 한다. 그리고 익숙한 바깥 생활을 몇 시간 보내고 돌아온다. 오는 길에 특별한 밥 약속이라도 잡히면 일이 생기지만 보통은 귀가한다. 집으로 돌아와 “하기로 했던 알찬 계획들”을 종종 모른 척 외면하고 지친 몸을 뉘인다.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들로 인해, 쓰일 일기들도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같이 느껴진다.


둘째, 자리에 앉아 “창작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루를 마친 뒤 자신을 돌아보며 사색하는 시간은 사실 우리에게 어색하다. 그 낯섦으로 인해 익숙한 다른 일상이 여간해선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주장을 한다. sns, 유튜브, 다른 여가생활도 다 각자의 명분이 존재하기에 일기 쓰기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만이 마음속에서 나그네처럼 떠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무려 63년 동안 빠짐없이 일기를 썼고 그 일기를 토대로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 '바보 이반 이야기' 등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미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역시 습관적으로 기록한 메모와 일기들이 자신의 탁월한 연설문에 큰 재료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일기를 통한 ‘성공사례’들은 아주 많다. 그런데 역작이나 연설문을 집필하진 않을 보통의 사람들에게 일기는 어떤 의미인 걸까.




사소할지라도 기록해보는 시도


 블로그에 종종 일기를 올린지도 어느덧 2년이 좀 넘었다. 모은 일기는 아직 400편 정도이고 전부 비밀글로(발행할 때마다 ‘비공개’로 체크했는지 아직도 몇 번이나 확인한다) 저장되어있다.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20살 즈음부터였지만 번번이 중도포기였다. 일기장에 쓰면 누군가 볼 것 같고 보관도 까다로울 것 같았다. 한때 유행한 감정일기도 시도해봤다. 대형 팬시점에서 구입한 감정 일기장은 에메랄드빛 표지에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심지어 그날의 감정을 표시하라고 각가지 모양의 스티커도 동봉되어 있었는데 살짝 발그레한 캐릭터들의 표정들과 감성이 맞진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는 시도로 마무리가 되고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 역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다 기록 삼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마저 꽤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사진도 올릴 수 있으며 빠르고 간편한 (정 올리기 싫으면 그날 찍은 사진 하나만 저장했다.) 블로그 포스팅'으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큰 포부는 없었으나 그저 차곡차곡 일상의 순간을 기록해나가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반가운 변화가 찾아왔다.



다름 아닌 관찰이 주는 힘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일기를 통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내게 일어나는 일들과 감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억은 사실과 감정이 결합되어 있다. 우리가 '그렇다.'라고 기억하는 많은 일들도 사실은 감정과 생각의 필터를 거치고 난 뒤에 마음에 기록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오늘 나를 지나쳐갔다.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누군가 지나쳐간 일은 상황에 불과하지만 무시당한 느낌은 오롯한 내 감정이다. 일기는 이처럼 작은 상황의 순간들을 시간의 점으로 만들어 기억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내밀한 마음의 흐름들이 기록으로 남아 내 삶을 관찰하게 도와줬다.



내일은 출국일이고 눈이 왔다. 엄마에게 일이 늦을 것 같아서 데리러 와달라고 했는데 눈이 온다고 안 된다고 했다. 내일이면 난 비행기 타고 여기에 없는데. 눈 좀 온 게 그렇게 대수인가? 그런데 나도 이상했다. 이상할 정도로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이 날은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울고 일기를 쓴 날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이 날 나의 감정이 사실은 7살 적 즈음의 생각들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늘 맞벌이를 하셨고 바쁘셨기에 비 오는 날에도 유치원 버스 앞에서 하원을 기다리신 적이 없으셨다. 아니 못하신 게 맞다. 그러나 그 어린 맘엔 짝꿍 어머니 우산을 함께 쓰고 집 가는 내 처지가 속상했었다.


 작은 일에서 출발한 마음의 욕망과 불안은 시시때때로 불청객처럼 마음을 두드린다. 그 눈 오는 날, 엄마의 한마디는 사실 그 자체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날 흘렸던 눈물은 내가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학습했던 '상대의 부재로 인한 무력감'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불안과 감정은 이미 이전부터 나와 함께였던 것이다.


이렇게 서툴게나마 감정의 파편을 찾아가다 보면 감정을 고요하게 마주하게 된다.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삶이라는 실험 속에서 몇 번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주인공을 조금씩 공감하기 시작한다.



일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장점의 대부분(탁월한 표현의 원천, 자기반성과 건설적인 인생계획 등)에는 이처럼 “관찰을 통한 자기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고 믿는다. 일상의 일들 속에서 감정의 파편을 갈무리하다 보면 우리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마음 한켠의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된다.

 

 따라서 삶을 적극적으로 관찰하는 행위는 흘러가는 시간과 현상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내밀한 애정의 작업이기도 하다. 관찰자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둘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기를 쓰기 위해 (일종의 보고서 삼아) 삶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곤 한다.


<모리와 함께 하는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과 계절, 내 삶이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애쓰는” 행위이다.


설령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쓰고 난 일기의 적극적인 애독자가 되길 권한다. ‘피곤해서 이것만’ 이 한 문장만 써 둔 일기를 다시 보면서  “이때 참 힘들었지.”라며 웃기도 하고 지금은 결과마저 과거가 된 계획에 설레어하는 모습을 읽어보는 건 꽤 큰 의미가 있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의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중


그리고 그런 하루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사는 오늘 역시도 언젠가 기억될 하루라는 책임감이 마음에 찾아온다. 지금 이 순간, 그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엔 항상 배움의 기회가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지금 내게 찾아온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나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의 나누었던 그 마음들이 소중해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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