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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락재 Oct 24. 2021

인생

어느 여름날, 그의 얼굴에 시원한 오이팩을 올리고 오디오북 한 권을 틀어 주었습니다. 소설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던 그는 5분이 채 되지 않아 곯아떨어지고 말았지요. 그렇게 한참을 푹 자고 일어나서는 “소설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언제 잠들었지?” 하고 묻는 이 남자는 제 신랑 월리입니다.


같은 직장에서 7년을 일하면서도 서로를 몰랐던 월리와 저는 긴 시간을 돌아 만났습니다. 10살은 꽤 큰 나이차였지만, 또래 남자들이 유치해보였던 저에게 그의 묵직하고 진중한 성품은 참으로 매력적이었지요. 회사 밖에서 월리를 두 번째 만나던 날, 우연히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어머니가 칠순이 되실 때까지 청소일을 오래 하셨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의 나이 열아홉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어머니가 그렇게 생계를 꾸리셨다고. 그 말을 하는 월리를 보면서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겠구나'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그 얘기를 하는 이 사람이 참 좋았거든요. 그늘진 구석 없이 생각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요.


그렇게 알콩달콩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던 무렵, 월리는 저녁마다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잦은 열병이 걱정스러웠지만, 요 근래 결혼 준비로 무리한 탓이라 생각했지요. 상견례 당일, 월리의 체온은 41도까지 치솟았고 정신마저 혼미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차를 타고 이동 중이던 부모님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다. 할 수 없이 동네 내과에서 해열제를 맞고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월리는 땀에 흠뻑 젖은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부모님 눈에도 월리 어머니 눈에도 그런 월리의 모습이 조금은 이상해보였겠지요. 영문도 모르고 고생하던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립니다.


며칠 뒤, 저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을 월리의 직장 상사라고 소개한 그 분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셨지요. 의아한 마음에 나간 자리에서 저는 월리가 회사에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PC 로그인 패스워드를 하루에도 수십 번 잊어버리고, 지금이 몇 월 몇 일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이지요. 그리고는 신경과 검사 결과지와 진료의뢰서를 건네셨습니다. 월리의 인지능력이 치매노인 수준이라는 말과 함께.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 같았습니다. 큰 병원에 가봐야하나 걱정하던 차였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충격받은 제 옆에서 월리는 다 거짓말이라며, 신경과에 다녀온 적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밤새 뜬 눈으로 뒤척이며, 고열과 기억상실증을 동반하는 온갖 질병들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같이 대학병원으로 향했지요. 그의 증세를 듣던 신경과 의사는 증상이 심상치 않으니, 당장 입원해서 검사받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검사에 시달린 월리가 곤히 잠든 그날 밤, 불꺼진 병실에 전공의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조용히 말했지요. 뇌에 큰 종양이 있다고 말입니다. 분명 아는 단어인데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멍하니 듣고 있었지요. 서른 둘, 제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일이라지요. 인생은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이 없다고, 누구라도 뒤통수를 맞으니 너무 억울해 말라던 어느 드라마 속 대사를 참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불행이 내 몫이 되고 나니, 모든 것이 두렵고 억울했습니다. 우리가 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일을 겪어야하는지, 누가 속시원히 설명이라도 해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2014년 6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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