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는 두개골을 여는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종양은 뇌의 정중앙에 있었고, 크기도 매우 컸습니다. 그가 기억상실증을 보인 것도 종양이 커지면서 기억을 담당하는 뇌부위가 짓눌렸기 때문이었지요. 의료진은 수술 난이도가 높아서, 수술 중 사망이나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하는 말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었지요. 이런 참담한 상황을 부모님께 알릴 수는 없었습니다. 수술만 잘 끝나면 예정대로 두 달 후에 결혼식을 치를 수 있을 테니, 모든 것이 해결된 그 때 말씀드리기로 마음 먹었지요.
2014년 6월 9일 아침, 월리는 잠시 나들이 가는 사람처럼 "다녀올게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아무 걱정말고 한숨 푹 자고 나오라고 큰 소리를 쳤지요. 그러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8시간은 지옥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애간장이 녹아내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을 그 날 처음 알았지요.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만난 월리는 몇 시간 전까지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에는 피가 배어난 붕대를 감고, 온 몸에는 시끄러운 기계를 주렁주렁 단 그는 극심한 두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두고 집에 돌아온 그 밤, 저는 신이 있다면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모질 순 없다고 악을 쓰며 울었지요.
월리를 괴롭히던 끔찍한 두통은 수술 후 몇 주가 지나도록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써봐도 효과는 두 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환각과 환청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습니다.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이었지요. 월리는 매일 한복입은 할머니와 원숭이를 보고, 한밤 중에도 꽹과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제가 칼을 들고 죽이려 했다며, 후배들에게 지켜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정작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갑작스러운 실명이었습니다. 수술 직후부터 월리는 앞을 보지 못했고, 병원에서는 수술 중 시신경 손상은 없었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갑자기 시력을 잃은 월리는 밥을 먹지도, 양치를 하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되어 버렸지요. 시각은 인간의 감각 정보 중 80%를 차지한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월리가 눈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지요.
수술 후 2주가 지날 무렵, 월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른쪽 눈에 흐릿하게 빛이 보이는 것 같다고. 며칠이 지나자 시야각이 조금 더 넓어졌고, 우리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머지않아 양쪽 눈 모두 정상 시력을 회복할 거라 믿었지요. 그러나 전문의 소견은 달랐습니다. 일시적인 증상이라며, 양안 실명을 피할 수 없을 거란 그 말이 어찌나 야속하고 매정하게 들리던지요. 한없이 흐느끼던 월리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무너져내립니다.
미쳐버려도 하나 이상할 것 없었던 상황에서도 월리는 절망감과 슬픔을 속으로 꾹꾹 삭일 뿐이었습니다. 참지만 말고 소리라도 지르라고 권하는 제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내가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면 누가 내 옆에 남아있을 수 있겠어요" 악몽같은 상황에서도 월리는 여전히 사려깊은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밤이 되면 그는 낯선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잠을 자는 내내 흐느끼고 화를 토해냈지요. 무의식 상태가 되어서야 억눌렀던 절망과 분노를 내뱉는 월리가 안쓰러웠습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유연하지 못했던 저는 차라리 씩씩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이겨내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지요. 그러나 사실 제 속에는 슬픔과 두려움, 분노와 자기연민이 가득했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고단하고 내 속이 지옥 같았지요. 시간이 갈수록 그 감정들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닥친 불행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사람들에게 흉한 모습까지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춰지지 않는 줄 알면서도 공연히 감추려 발버둥쳤지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월리와 제가 느낀 이 모든 감정들이 '불행을 경험한 이들이 보편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처지라면 누구라도 느꼈을 자연스러운 감정을, 우리는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억누르고 가짜 긍정을 강요한 것이지요. 성난 들불같던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독하게 외롭고 무서웠을 나를 나라도 알아봐주고, 따뜻하게 품어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시간을 들여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고단한 나를 알아봐주는 것.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혼자서 변명을 하다 말고,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닌 남을 들여다 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다가올 계절에는 나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것을, 그리고 조금 더 나에게 다정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어떤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해주는 고마운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