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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Sep 03. 2024

[케일] 시누이네 옆 아파트에 산다는 건

엄마와 아빠는 고모의 소개로 만났다. 엄마의 친구이자 아빠의 동생이며 나의 고모인 그녀로 인해 우리 가족이 시작됐다. 엄마는 성형수술 하나 없던 시절 오밀조밀 예쁘게 생긴 고모를 보며 아빠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고, 각진 턱에 깊은 눈을 보며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렇다. 남자 얼굴 보는 건 유전이었다.!) 엄마와 고모는 각자 결혼을 하고 명절 때나 가끔 보는 사이로 지내다가 우리 가족이 고모네 옆 아파트로 이사하며 다시 왕래가 잦아졌다. 


옆 동에 사니 엄마의 퇴근이 늦어질 때면 언니와 나는 자주 그 집에 맡겨졌다. 우리만 있던 집과 달리 그 집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그리고 그 집 자매가 늘 북적였다. 우리 자매와 고모네 자매는 나이가 같았다. 그러니까 한 명은 나랑 동갑이고, 다른 한 명은 언니랑 동갑이었다. 한두 살의 나이 차이가 큰 그 시절 동갑끼리 놀 법했는데 우리가 그 집에 가도 둘은 방문 닫고 둘이서만 놀았다. 세상에 사이좋은 자매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주변을 보면 자매는 둘로 나뉜다. 아주 친한 자매와 그렇지 않은 자매. 언니와 나는 후자였다. 옷을 가지고도 싸우고, 리모컨을 누가 들고 있냐, 컴퓨터를 누가 할 차례냐 가지고 많이 싸웠다. 언니보다 드센 나는 늘 언니를 괴롭히고 언니 걸 빼앗았다. 보다 못한 엄마가 언니만 합기도를 보내버렸을 정도니. 나는 동생이 왜 이렇게 이겨먹으려 하냐, 언니는 언니가 돼서 이거 하나 양보 못하냐며 혼났다. 서로 양보하고 사이좋은 고모네 자매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던 우리 자매는 늘 비교가 됐다. 교과서 속 모범 답안 같은 그녀들과 있으면 늘 우리가 틀려먹었다는 생각에 주눅 들었고, 자연스레 피하게 됐다.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을 무렵부터는 고모네 집에 가지 않았다.


바쁜 엄마 아빠 대신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언니. 그런 언니를 질투하면서도 그녀처럼 되고 싶어 했다. 내 친구들보다 언니 친구들과 노는걸 더 좋아했고, 언니가 입는 옷이나 언니가 하는 게임은 늘 따라 했다. 언니 옷은 절대 안 물려 입는다며 똑같은 옷을 사달라고 떼쓰고, 그게 안되면 언니 옷을 몰래 입고 나가 김치국물이며 초콜릿을 묻혀 오곤 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징글징글한 동생인데도 어디서 맞고 오면 쫓아가 혼내고, 우산을 놓고 오면 귀찮아하며 데리러 오던 착한 언니.


언니가 내 세상의 전부였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둘 다 서른 중반. 취향도, 관심사도 너무 달라졌다. 언니의 옷을 봐도 입고 싶지 않고 (그녀도 똑같은 마음이겠죠), 언니가 가지고 노는 레고에도 관심이 없다. 내가 건드리지 않으니 우리의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여전히 둘이 팔짱 꼭 끼고 데이트 갈 사이는 아니지만, 각자의 취미를 응원하고 무너졌을 때 옆에 있어주는 사이인 우리. 


케일과 양배추, 콜라비와 브로콜리의 어린잎은 구별하기 힘들다. 이들은 야생 양배추에서 잎, 꽃, 싹을 개조시켜 만든 사실상 형제자매인 셈이다. 어쩌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빼면 성격도, 취향도, 취미도 서로 다른 사람인 우리. 너무 가까이서 서로를 겨우 견딜 때도 있었지만. 서로의 강한 부분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또 같아지려는 욕심을 버리면 텃밭 작물처럼 서로 조화롭게 잘 자랄 수 있다. 언니를 따라 하려 했던 시간, 다른 자매처럼 사이좋고 싶다는 욕심, 언니는 언니처럼 다정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버리니 비로소 좋아진 우리 관계.


이젠 고모네 자매를 봐도 배가 안 아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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