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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Sep 27. 2023

다 지나갈 거야

우리의 시간을 응원해

6월 3일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던 같다. 후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엄마는 전날 마지막 입원을 하셨고 나는 엄마 병실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장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하며 부의금만 전달을 했다. 후배의 아버지는 간이 안 좋으신 상태였고 병원에서 어떻게 손 쓸 새가 없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 계셨던 아버지의 임종을 아무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고 했다. 후배의 가족들에게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최근 후배와 짧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명절에 어디 가니?"

"아무 데도 안 갈 거 같아요."


후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할머니가 큰아버지 댁에 계신데 치매가 있으세요. 아직 얘기를 못 했어요."


치매가 있는 할머니가 충격받으실까 봐 당신의 아들이 먼저 하늘로 갔다는 얘기를 아직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명절은 가족끼리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후배에게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처음엔 괜찮으신 듯 보였는데 100일 지나면서부터는 좀 힘들어하세요. 몸도 아프다고 하시고 살도 많이 빠지셨어요."


어머니의 몸이 아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음과 정신이 고단한 시간을 보내면 몸도 아프기 마련이다. 병원 가서 검사를 한들 병명도 없다. 마음은 자신의 상태를 내보일 수 없으니 형체가 있는 몸을 통해서 '이렇게나 아픕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20대 후반인 후배는 집에서 맏이이고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유학을 가려고 준비를 한참 하고 있던 차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왜인지 모르게 유학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지나고 보니 늦어진 이유가 다 있었구나 싶다. 후배는 아버지 장례 이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원래 계획대로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어머니와 동생을 보니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느꼈다.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겠다고 스스로 결단을 했고 유학은 취소가 되었다.  맏이로서 가진 책임감이었다. 


아버지를 보낸 이후 이뤄져야 할 행정적인 절차와 많은 일들을 후배가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나둘씩 해나가는 것은 '처리'가 아니라 '감당'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일들이다.   


"너는 제대로 울지도 못했겠다."


사망신고, 금융권 정리, 퇴직처리 등 그 모든 것을 감당해 내면서 후배는 엄마를 챙겨야 했고 아버지가 없음을 확인해야 하는 그 모든 과정도 마주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정신은 차리고 있어야 했고 울고 있는 어머니 옆에서 같이 울고 있을 수 없는 후배였다.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 거 같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후배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렸고 우린 낯선 순간들을 숱하게 마주하고 있다. 같은 듯 하지만 다르고, 또 다른 듯 같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의 시간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말하지 않아도 오며 가며 마주치는 눈빛으로 슬며시 잡은 손으로 그 마음이 잘 전해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짧은 안부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후배를 한번 안아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역시 '안아주는 것'은 마법과 같은 행동이다. 백 마디의 말이 필요가 없다. 


"다 지나갈 거야."


우리의 시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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