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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11. 2023

안:따

몇 년 전 전철역에서 난동 부리는 취객을 안아주는 청년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경찰들은 나름의 노력을 하며 공무집행 방해 등의 이야기를 했지만 취객은 진정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내 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그런 얘기는 귀에 들어오기 만무했다. 취객에게 한 청년이 다가가 '괜찮아요.'라고 하며 가만히 안아주었고, 취객은 긴장이 풀린 듯 금세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감정이 격양된 취객이기에 자신이 다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청년은 다가가 취객을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얘기해 주며 토닥토닥해주던 행동은 '저 사람을 안아주고 싶다.'라는 본능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취객을 제압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이 말이다. 청년은 이미 삶의 많은 순간을 통해 '포옹'이 주는 그 따뜻함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기에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엄마를 보내고 난 뒤 처음으로 교회에 갔던 날이었다. 엄마를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약간은 긴장되기도 했다. 상대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나는 나대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를 그 어색함이 슬며시 흐르는 그 상태를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 있었고 그럴 때면 가급적 긴 대화를 하지 않고 인사만 가볍게 하며 후다닥 지나갔다. 그러다 엄마와 친했던 권사님 몇 분을 우연히 마주쳤다. 역시나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던 찰나에 한 분이,


"한번 안아줄게~"


하고선 저만치서 양팔을 한 껏 벌리셨다. 권사님은 '밥은 잘해 먹고 있냐, 아버지는 어떠시냐, 힘내라.'등의 많은 말은 하지 않으셨다. '잘 지내고 있지?' 한마디를 하시면서 나를 그냥 꼬옥 안아주셨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과 포옹을 했다. 자그마한 어른들의 품에 안겨서 한 없이 원 없이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그 모든 것을 통해서 그동안의 설움이 가시고 엄마를 보내는 슬픔이 조금은 다독여지는 듯했다.




글 제목으로 써놓은 '안다'라는 말을 가만히 보니 '안다'의 다른 의미가 생각이 났다. 마치 네 잎클로버를 찾은 거 마냥 말이다. '안다'는 발음의 강세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안:따]는 '두 팔을 벌려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거나 그렇게 하여 품 안에 있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안다]는 '알다'라는 말로 '내가 너를 알고 있다. 심리적 상태를 마음으로 느끼거나 깨닫다.'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결국 '안다'는 [안:따]의 행동 안에 [안다]로서의 의미까지 담겨 있었기에 우리는 매 순간 그 행동 안에서 따듯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를 안다, 지금 니 마음이 어떤지, 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다 안다. 울만큼 울어라.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아질 거다.' 그게 무슨 말이든 내가 듣고 싶은 모든 말들이 안는 그 행위를 통해서 고스란히 전달이 된 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라는 말이 있듯, 그 사람(지금 생각나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한 번의 포옹이 간절히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난 포옹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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