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향 Mar 16. 2023

나는 당신 편

그거면 됐지

(드라마 ‘더 글로리’에 대한 약간의 스포가 담겨있음)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2’ 정주행을 마쳤다. 드라마에는 주인공 문동은, 가해자들, 동은이의 복수를 돕는 주요한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신이 많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이 지내던 원룸 주인이자 부동산 주인인 ‘할머니’가 등장한다.


동은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절, 강물 속에 스스로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은이는 그 사람을 발견한 순간 물속에서 달려갔다. 죽고 싶었던 동은이는 죽으려는 할머니를 구했고, 할머니 목숨을 살린 덕에 동은이도 죽지 않고 살았다. 물 밖으로 나온 할머니는 맨발의 동은이를 걱정했고, 살며시 손을 잡으며 동은이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물이 너무 차다. 그치? 우리 봄에 죽자. 봄에”


이 말을 건넨 할머니는 당장 죽고 싶은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살자, 그래도 봄은 오니 그러니 살자’라고 동은이에게 말하는 듯했다.


그리곤 10여 년이 더 지나고 원룸 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로 할머니와 동은이는 다시 만났다. 끊을 수만 있다면 연을 끊고 살고 싶은, 알코올중독자이자 동은이의 최초의 가해자인 엄마가 동은이를 찾아왔다. 엄마는 부동산 주인인 할머니에게 동은이에 대해서 물어봤고 할머니는 동은이가 이곳에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엄마에게 왜 그렇게 대답해 줬냐는 동은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답한다.


“당신 편 들어주는 사람도 있어야지.”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은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 덕에 그 정도의 하루가 지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겨우 버텼다고 생각한 어느 날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기에 버틸 힘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독히 혼자였다고 생각한 순간들도 누군가의 지지가 나의 삶에 닿았을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도 사람이고, 그 생채기를 다독여 주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아니면 상처를 덮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신은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신다는 그 말은 때마다 시마다 피할 길을 내신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피할 길이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에 지나 온 순간들은 기억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들로 인해 마음은 늘 주춤하게 된다. 기억이란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겪고 보니 그 흔적을 남긴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지우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오고 가는 사소한 말들에 한 번 더 웃게 되고, 읽다가 생각이 났다며 건넨 글귀 하나에 마음에 봄이 찾아온다.


그거면 됐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면 충분하다.

이전 09화 Merry Christmas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