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 학생 복장

교복, 패션, 구두

by BeyonJ



내가 국,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패션이란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물론 있었겠지), 내가 모르고 지냈을 뿐일 것이다.


국민학교 다닐 때는 특별히 입었던 옷이라고는 기억이 안 난다. 재동 국민학교 때는 학교 교복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는 늘 교모하고 교복을 입고 다녔다. 1, 2 학년 때는 설날 새 옷을 입고 아버지 따라 만종리 큰아버지댁에 간 생각이 났기는 하는데, 새 옷을 입을 때마다 옷이 딱 맞지 않고 늘 컸던 기억이다.


새 옷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항상 생각이 나는 것이 있는데, 전에 말했듯이 국민학교 2학년 끝나고 원주에서 서울로 이사 올 때 작은형 하고 나에게 새 옷이라고 그 당시 처음 나온 소털로 만든 천으로 옷을 지어 입혔는데, 그 옷이 얼마나 불편하고 부끄러웠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외에 국민학교 때는 일반적으로 무엇을 입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무얼 입고 특히 기뻤거나 하는 기억보다는 소털 새 옷을 입고 불편하고 특히 창피한 일은 잊히지가 않는다. 얼마 전에 옛날 친구 몇 명과 점심하면서 얼마나 예전 일들을 기억하나 말을 꺼내 보았는데, 그들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기억은 없더라. 당시 대부분 국민학교에는 교복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집에서나, 학교 갈 때, 또 드물지만 외출할 때에 어떤 옷차림이었었는지 우리 모두 아무도 기억 못 하고, 또 어떤 옷을 입었을 때 가장 기뻤고, 어떤 차림을 했을 때 가장 부끄러웠는지 잘 생각나지 않고 (소털 옷 제외) 내 친구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중고등 학교 때의 외출복에 대한 기억은 확실하다. 학교 갈 때와 기타 외출할 땐 항상 교복이었으니까. 그렇치만, 그 외 집에 있을 때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집에서 입던 옷이 무엇인지는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티셔츠, 블루진이 없던 때니까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무엇이었을까 나도 궁금하다.


중학교 때는 겨울에 파란색 두툼하고 엉덩이 아래까지 덮이고 목에는 토끼털 같은 칼라가 달린 점퍼 (outerwear)가 입고 싶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도 잘 몰랐고, 집에다 사달라고 해도 사줄 수 있는 정도의 값 인지도 모르고 해서, 사달라는 말도 못 하고 해서 그냥 지나갔었다. 그때는 학생들 대부분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속에 면 내복 한 벌만 더 껴 입었었고, 몹시 추울 때는 스웨터 하나 더 껴입고 그위에 교복 입고 교모 쓰면 그것이 겨울 외출옷차림이었다.


대학 때도 돈 드는 패션은 우리 대학생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다니던 학과에서 몇 명은 카바레에 춤추러 다니는 (그때 내가 보기에는) ‘개념 없는 인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옷, 구두에 신경 썼는지 모르지만 우리 일반 대학생들은 바지는 주로 군복 바지 검은색으로 물들여 줄여 입는 것이 지금 Blue Jeans 만큼 유행이었고, 사시장철 그걸 애용했다.


대학생들, 특히 서울 대학생들은 한 여름 빼고는 늘 교복 입고 다녔는데, 멋 좀 부리는 친구들은 일반복을 입고도 다니기도 했다. 보통은 윗도리는 교복을 입고, 바지는 군복 바지를 검은색으로 물들여서 “홀태바지”로 줄여 입고 다니는 것이 일반 복장이었다. 지금으로는 skinny fit 이겠다. 앉을 때는 무릎을 잘 구부리지 못할 정도로 꽉 끼는 바지였는데, 아버지가 어떤 때는 보시고 “넣고 꿰맸냐 (다리를 넣고, 바지를 꿰맸냐)”고 불평하실 정도였다.


작은형이 법대 3학년, 내가 상대 1학년일 때 아버지 환갑 기념으로 우리 둘에게 정장 양복을 맞춰 주셨는데, 당시로는 대학생들에게 완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또 대학 1년 겨울에 작은형과 얘기 중 가죽 잠바가 입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형이 나한테 아버지한테 얘기 좀 해보라고 부추겨서, 아버지한테 우리 가죽잠바 좀 사 입게 해달라고 여쭈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주 선선히 그래라고 하면서 돈을 주시면서, 네가 돈 달라고 할 때는 언제나 그럴 여유가 있을 때라고 웃으면서 말하셨다. 이 당시 가죽잠바는 얼마나 고급 의류였고, 웬만한 젊은이들은 생각지도 못할 호사였다. 형과 나는 신나게 그 가죽잠바 입고 자랑스럽게 다녔다.


대학 4년 겨울, 아버지가 세상 뜨시고 난 뒤, 크리스마스 때, 큰 형이 나에게 감색 신사복을 해주었는데, 그것을 입고 양복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얼마나 날씬하고 멋져 보였는지 지금도 생각난다. 그런데, 양복은 해주었는데, 와이셔츠는 안 해주었는지, 큰형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 맸는데, 목이 조여서 고생했다.


머리 모양은 보통 이발하고 나중에 고데 (부젓가락 같은 것을 불에 놓아 달군다음 찬물에 한번 칙- 담갔다가)로 강제로 머리카락 넘기고 포마드 바르는 것이 멋 부리는 머리 모양인 것이었지만 나는 머리 기른 시간보다 “스포츠 가리 (crew cut)" 했던 기간이 더 많았다.


당시 모든 대학 교수는 옷차림부터 후줄근했는데, 3학년 때 금융론을 가르치는 교수 한분이 현직으로 한국은행 고위직이면서 서울 상대에 출강했었는데, 옷은 감색 (Navy blue)의 싱글 슈트를 깔끔하게 입고 상의 윗주머니에는 하얀 손수건을 빳빳하게 접어 넣고 있는 자태가 좋아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꿈은 가져본 적이 있다.




내가 국민, 중, 고등학교 때는 기성품 옷이 없던 때라, 집에 돈이 있던 없든 간에 사입을 옷이 없었어.


추석이면 양장점에서 “간단 후끄 (원피스)"를 하나씩을 맞춰주셨고, 스커트는 시장에서 옷감 사서 만들어 주셨지. 그때는 “후레야 치마 (flare skirt)" 유행했었는데 만들기 쉬어서 고등학교 때는 나도 만들어 입었지. 학교에서 재봉이란 교과과목이 있어서 배웠어.


집 밖으로 외출할 땐 꼭 교복을 입었지. 그때 교복은 애리 (칼라)를 빳빳하게 풀 먹여서 따로 달아서 입었는데 얼마나 빳빳한지 목둘레가 벌겋게 될 지경이었다. 고등학교 교복 중에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 까만색 교복 치마허리에 “공갈 반도”를 했어. 까만 비닐로 만든 넓적한 벨트인데 꼭 조여 매서 허리가 잘록하게 보였지. 그거 안 한 여학생은 거의 없었을걸. 우이동에 등산을 갔을 때도 교복을 입고 당연히 치마를 입고 갔는데, 학교에서 소풍 갈 때는 하얀 체육복 바지를 입고 갔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검정 운동화를 신었는데 이화여고는 여름에 흰 운동화를 신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이 부러워했어. 그래도 고3이 되어선 우리도 흰 운동화를 신었지. 분필가루 물에 타서 운동화에 하얗게 바르기도 했다.


대학 입학하고 첫 생일에 엄마가 명동 “송옥”이라는 양잠점에서 꽃무늬가 있는 실크 블라우스를 맞춰주셨지. 실크는 고급스럽지만 물빨래를 할 수 없고 매번 다림질을 해야 돼야 했지. 그때는 화학섬유 옷이 없었기 때문에 집집마다 다리미는 필수였지.


고등학교 때 나일론실이 처음 생겨서. 그전에는 면양말이라 금방 구멍이 났었는데 이런 화학 섬유실이 나와서 집집마다 굵은 나일론실로 양말을 떠서 신었지. 화학섬유라 보온이 하나도 안되고 얼마나 발이 시렸는지 몰라.


대학 때는 타이트스커트를 입고 다녔는데, 뒤가 좀 트인 스커트는 좀 야하다고 못 입었지만. 또 맘보바지(쫄쫄이)가 유행했는데, 국산품이 없던 시절이라 남대문 “양키시장”에서 스판 옷감으로 만든 쫄쫄이 바지를 사 입었어. 고등학교 때 입던 수영복은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축 처지는 져지 옷감이라 형편없었는데 대학 때는 양키시장에서 스판 수영복을 팔았지.


나는 보라색을 좋아해서 바지도 보라, 스웨터도 보라, 겨울 코트도 보라로 입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지. 계절 따라 코트도 바꿔 입고 다녔는데, 겨울엔 over coat, 봄에는 spring coat, 3-4월엔 Burberry coat (바바리 스타일 코트), 비 올 땐 rain coat 등등. 레인코트는 비닐이 아닌 방수된 얇은 재질의 감이었는데, 웬만한 학생들은 비 올 때는 이런 레인코트를 입었지. 코트 얘기를 하니까, 내가 고3 봄에 경주 수학여행을 기차 타고 다녀왔는데 서울역에 엄마와 둘째 언니가 바바리코트를 (쌀쌀해서 입으라고) 갖고 왔던 기억이 난다. 마중 나온 가족은 나, 하나뿐이라서 어깨가 으쓱했지.


콤비 구두라고 바닥이 평평한 구두를 대학생들이 많이 신었는데, 나 때는 아니고 나보다 세 살 많은 둘째 언니 시대 까지만 유행했었어. 그때는 옷을 맞추면(기성복이 없었으니) 완성되기 전에 꼭 가봉을 했거든, 그런데 구두도 가봉을 했단다. 그래도 뒤꿈치가 까지고 그랬지. 그때는 운동화라고는 실내화 같은 것 밖에 없어서 평상시에는 운동화 신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어.


내가 대학 다닐 때는 하이힐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등교할 때도 하이힐 신고 다녔어. 그 언덕바지가 많은 학교 꼭 하이힐을 신고 다녔지. 아스팔트로 된 교정 바닥엔 하이힐 구멍이 수없이 많이 나고. 체육이 들은 날엔 교문 앞 구두 닦는 집에 구두 맡기고 흰 운동화를 빌려들 신고 갔지. 그래서, 등교 땐 구두 닦는 집이 성시를 이뤘어.


몇 학년 때인가? 빨간 구두를 맞췄는데 등교 때마다 아버지께서 뭐라 하실까 봐 몰래 신고 가느라 애썼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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