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서울 음식, 도시락, 외식
여름에 참외 철이 되면 참외를 한 접 혹은 반 접씩 사서, 계동 집 마당 가운데 있던 우물에 담가 두었다가 꺼내서 먹었다. 그렇지만, 지금 과일과는 다르게, 그 당시 참외는 다섯 개 중 한 개 정도 비교적 달다고 생각되는 것은 겨우 찾을 정도였다. 내가 대학 다닐 때쯤 되어 "나이롱" 참외 가 나온 다음에야 참외 맛이 제대로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집에서 해먹은 간식으로는 빵떡을 쪄서 먹곤 했는데, 밀가루에 막걸리 좀 섞어서 부풀린 다음 쪄서 먹은 것 같다. 떡은 해 먹긴 했지만 그다지 자주 만드는 메뉴가 아니었다. 아마도 만드는 절차가 복잡해서인가 한다.
지금 애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내가 어렸던 당시는 딱딱한 눈깔사탕이나 길거리 엿장수가 파는 엿이 어린애들이 사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였다. 엿장수가 큰 가위로 소리 내면서 수레 (리어카) 끌고 오면, 떨어진 고무신, 못쓰는 냄비 등을 집에서 찾아 갖다 주면 엿 한두 자루와 바꾸어 주면 먹었다.
1950년대 초 중반, 서울 환도 후 재동 입구 (현 종로경찰서 건너편)에 도넛 가게가 생겼는데, 당시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내가 제일 막내니까 심부름은 항상 내 차례였는데, 도넛 사 가지고 오라면, 신나서 재동 네거리까지 뛰어갔다 왔었다.
여름 철에는 아이스케키 (케이크) 통 들고 다니면서 “아이스케키, 아이스케-키’이라고 소리치는 아이들에게서 이 아이스 케키를 사 먹고 겨울에는 밤중에 “메밀묵 사려” 소리치고 다니는 청년들한테서 메밀묵 사 먹던 것이 또 당시의 최고의 간식 먹거리였다.
시내에는 부산 뉴욕, 뉴욕, 태극당 등의 bakery들이 생겼는데, 큰누나 덕에 그런 빵집에 가서 "빠다빵", 곰보빵, 크림빵, 팥빵 등도 먹었고, 여름 방학 때는 안양 풀장에 따라가서 수영하고, 점심에 오므라이스도 먹고 했는데, 그건 나보다 7살 더 먹은 큰 누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는 도시락을 싸 갖고 학교 다녔던 것 같다. 도시락 반찬은 멸치볶음, 단무지, 콩자반 등등이 주였다. 그래도 점심 먹는 시간은 제일 즐거운 시간이었다. 중, 고 때까지 어쩌다 좀 좋은 반찬을 싸 갖고 온 학생이 있으면 그 도시락 반찬은 근처 놈들이 한 젓가락씩 먹어서 금방 없어지고 남은 밥은 딴 녀석들 반찬을 조금씩 집어다 먹곤 했다. 그때는 겨울에 김치를 기본 반찬으로 많이 싸 갖고 왔는지라, 겨울에 오전 수업 마지막 시간 (제3교시)에는 난로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린 도시락 들에서 김치 익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래도 불만하는 학생이나 선생은 본 적이 없다.
대학 때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가락국수 국물만도 팔았는데 지금 돈 500–1000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집에서 싸간 도시락 먹으면서 그 국물 사 먹으면 호사였지만, 사실 도시락 싸 갖고 가는 것보다, 오므라이스, 우동 등 지금 돈으로 한 3천 원 정도 주고 사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방에 들렸다가, 서로의 사정대로 돈을 모아, 막걸리에 빈대떡,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에 “빼갈” 한 “도꾸리”, 거기에 공동으로 군만두 하나 추가하면 최고의 안주였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서울 음식이 있을까? 어릴 땐, 타지방 사람들의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몰랐지.
우리 집 반찬으로는 장아찌, 조림, 나물과 찌개가 주였는데, 무로 만든 우리 집표 숙장아찌는 요즘도 내가 가끔 만들지. “숙”이라는 것은 익혔다는 뜻일 거야. 손이 좀 가니까 명절이나 생일 때 해 먹은 것 같아. 무와 오이를 새끼손가락 마디만큼 썰어서 간장에 설탕 넣어 끓인 간장 국물에 하룻밤 푹 담갔다가 다음날 꼭 짜서 소고기를 먼저 볶고 무와 오이를 같이 볶아 양념한 거지. 요즘은 나물도 그냥 볶지만 우리 집에서는 고기와 같이 볶는 나물이 있었지. 무나물과 오이나물. 무나물, 오이나물에 꼭 소고기 넣어 볶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야. 아지 (전갱이) 졸임이라고 일본식 졸임으로 해서 상추에 싸 먹곤 했어.
우리 집에서는 국보다 찌개를 주로 해 먹었는데, 항상 질리지 않는 반찬은 젓국 찌개였다, 무 넣고 두부 넣은, 호박 넣고 두부 넣은, 약간 기름기 있는 소고기를 넣고 끓이는 찌개. 그 외에도 자주 해 먹던 찌개로는 “고기찌개”. 불고기 양념한 고기에 양파, 무를 채 썰어(부피를 늘리려고 그랬던 것 같아) 달달하게 끓이면 국물에 밥 비벼먹고 하면 맛있었지. 나는 지금도 이 찌개를 자주 해 먹어.
아침에는 조개 넣은 두부찌개. 감자볶음. 명란찌개를 자주 해 먹었었는데, (지금은 명란 두 손에 만원이지만) 명란은 두 손은 넣어야 제맛이 나오거든. 두 손은 쌍으로 두 개를 말하는 거야.
예전엔 여름 삼복중엔 육개장이나 민어 매운탕을 먹었어. 삼계탕은 먹은 기억이 없고 닭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고 양계장에서 키운 닭이 아니라서 아주 질겼어. 지금은 민어가 정말 비싸서 먹지도 못하지만 민어 말린 것을 “암치”라고 해서 살은 발라서 참기름 찍어먹고, 뼈와 아가미, 껍질은 호박 숭숭 썰어 넣고 찌개 하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이거야 말로 서울 사람들이 먹던 반찬이다. 지금도 우리는 암치 대신(요즘 사람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말린 대구포로 대신한다.
내가 지금도 된장찌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보면 그때 아마 우리 부모님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는지 된장찌개 먹은 생각이 별로 없다.
생각나는 우리 집 반찬 종류로 목록을 만들어 보았는데,
동태찌개 (맵지 않고 달달하게)
아지 간장조림 (아지가 흔했어)
꽁치구이
유부 간장조림
명란 (도시락엔 항상 찐 명란이 들어있었어. 그때는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던 듯)
고등어구이 (냉장고가 없던 때라 무지하게 짜서 나는 거의 안 먹고)
여름 복날에는 육개장 (그때는 닭이 흔하지도 않았고, 아주 질겼어)
고기찌개 (내가 지금도 가끔 해 먹는 반찬). 양을 늘리기 위해선지 양파나 무를 많이 채 썰어 넣고 달달하게 끓이면 아주 맛있었어.
아침에는 두부찌개 (아침마다 “맛살 사려! 하고 머리에 이고 다니는 아줌마들이 있었어. 이 찌개도 두부, 맛살 넣고 달달하게)
일본식 스키야키도 자주해 주셨다.
모두들 만두를 좋아해서 자주 해주셨어. 식구들이 삥 둘러앉아 만두피를 빚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청운동에 사시는 외갓집 식구들도 다 오시고.
명절에는 갈비찜도 나왔는데, 식구가 많았으니 한 점이나 먹었을까? 갈비 간장에 맛있게 비벼먹은 생각은 나네. 마당에다 통나무를 갖다 놓고 갈비를 도끼로 자르곤 했던 기억.
부침개 (내가 제일 좋아했지) 마당에다 연탄 통을 내다 놓고 거기서 부쳤어. 명절에는 둘째 언니 나도 연탄 통 하나씩에 빈대떡을 수십 장씩 부쳤는데. 노란색이 많이 나라고 외할머니가 치자물로 물들였지.
할머니가 여름엔 꼭 양배추 김치를 하셨어. 달달한 맛으로 맛있지.
그 때는 돼지고기는 거의 먹지 않았었는데, 지금 하고는 달리 무지하게 돼지 냄새가 났어.
시월상달(음력 10월 초승) 고사 철이 되면 주위의 집집마다 밤이면 고사떡을 뒷집 앞집 다 돌렸어. 이건 미신이라기보다는 명절처럼 치르는 행사 같았어. 하룻밤에 셋집이나 떡이 온날도 있었어. 찹쌀로 만든 찹쌀떡, 맵쌀로 만든 팥시루떡, 무를 굵게 채 썰어 넣은 무시루떡은 정말 맛있었어. 이런 날은 며칠 전부터 청운동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다 도와주셨지. 다 만든 떡을 장독대, 뒤꼍, 마루, 방마다 갖다 놓고 두 손 모아 “자손 안녕”을 비셨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 명절엔 꼭 약식. 할머니께서 정말 맛있게. 합에(합은 여자 밥그릇, 주발은 남자 밥그릇) 담아 식지 않게 아랫목 보료 밑에 넣어두셨지.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도 할머니와 오래 같이 있어서 명절에는 다식, 약과, 신선로 등등을 만드시는 걸 옆에서 거들고 심부름했기 때문에 눈에 익혔지. 약과는 만들어 조청에 담아서 다락에 두셔서 몰래 꺼내 먹기도 했다. 다식은 쌀가루, 콩가루, 송하 가루, 검은깨 가루를 꿀에 반죽을 해서 다식판에 찍고 했지. 할머니와 나하고 만든 작품들이었다.
우리 집에선 카레라이스도 가끔 해 먹고, 마요네즈도 기름과 노른자로 집에서 만들어서 샐러드에 먹고, 가스레인지도 남의 집보다는 일찍 사용했지.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의 라면은 일본 라면처럼 전혀 맵지 않고 느끼한 맛이었는데, 집 앞 가게에서 사서 둘째 언니랑 연탄불에 끓여서 맛있게 나눠 먹던 생각이 나네. 비닐이 없던 시절이라 라면 봉투를 버리지 않고 지금 비닐봉지 쓰듯 잘 활용했었다.
소공동 국립도서관 있던 자리, 그 앞에 “몽블랑” 이란 빵집이 있었는데 소금 빵이라고 하는 가느다란 빵인지 쿠키 인지도, 또 감식빵도 맛있었다. 뉴욕 빵집의 “고로께 (크로켓)”는 정말 맛있었지. 태극당의 "빠다빵"은 소풍 때 김밥 대신 내가 꼭 사 갖고 가던 빵. "사라다" 빵, 팥빵은 정말 최고였지.
퇴계로에 “아메리카”라는 핫케잌 집이 첨 생겼는데 핫케잌 위에 계란도 하나 올려주고 맛있었어. 충무로엔 일본식 가락국수 집도, 진고개에선 갈비탕도 사 먹곤 했지 충무로에 전기통닭집이 처음 생겼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그런 닭고기는 첨 먹어보았으니.
가족 외식으로는 가끔 아버지랑 다 같이 반도호텔 밑이나 광화문 근처의 중국집 가는 거였는데 그때는 난자완스, 물만두를 먹었어. 짜장면은 별로 기억에 없고.
내가 대학 다닐 땐, 둘째 언니가 직장에 다닐 때라 월급날엔, 식구 중에 꼭 나만 경양식집에 데려갔어.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빵집에 간다던지 그런 거는 거의 없었고 (좀 행실이 나쁜 애들만 갔던 거 같고), 빵집에 갈만한 여유도 없었지. 그땐 그게 당연했고 불만도 없었어.
그런데, 대학 때 다방엔 자주 갔지. 음악 들으러 모두 몰려갔지. 을지로 입구에 “ 아스티”라는 이태리 식당이 있었는데 거기서 피자를 팔았지. 나는 한 번밖에 못 가봤어. 대학 2학년 때 명동에 있는 OB’s Cabin에서 생전 처음 맥주도 먹어봤는데 언니가 사줬지. 거긴 밤이면 유명 팝송가수들이 노래하고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