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레크리에이션
전에 말한 것처럼, 나는 어렸을 때 운동 신경이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고 몸도 잽싸지 않아서,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소원이 운동회에서 3등 내에 들어서 연필이든 공책이든 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다. 공부 성적에 따라 받았던 우등상에 따른 상품은 늘 받아왔던 것이니까 하나도 부럽지 않았는데, 운동으로 받는 상과 상품을 꼭 받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평대에 매달리고 고등학교 때 철봉과 역기를 시작하여 고3 초 여름에는 이미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체격을 만들었고 체력도 좋았졌었다. 그러나, 대학 때는 운동회가 없으니까 여름에 대신 체격을 자랑할 수 있는 수영장에 다니기 좋아했다. 서울에는 우이동에 공중 풀이 두어 군데 있었고, 광나루 강가, 방학 때는 만리포, 대천, 강릉 해수욕장 등도 다녔다.
나는 고상한 취미나 소질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중, 고등학교 때는 여름에는 산/연못/바닷가를 막론하고 물가에서 텐트 치고 캠핑하는 것은 중학교 3학년 이후 대학 졸업까지 여름 방학중에 꼭 해왔었다. 뭐, 이건 운동도 아니고, 고상한 취미도 아니고, 그냥 놀이였다고 생각되어 취미라고 하기에는 좀 뭣한 것 같다. 나는 고3 여름방학에도 제천 의림지에서 캠핑했었으니까. 우리는 학교 공부시간에 선생 말에 집중하면 대학시험 정도는 별것 아닌 세대였으니까 가능했던 것일까 한다.
겨울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을 했지만 이것도 선수급이 못되고 그냥 놀이 삼아했던 정도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주로 창경원 (지금의 창경궁) 연못에서 탔는데, 덕수궁 연못은 몇 번 가보았지만 너무 비좁고 사람이 많아서 그 후 안 갔었다. 대부분 청량리 밖 “미나리꽝” 에서 탔는데, 아주 잘 탔다기보다는 그냥 창피하지 않은 정도 수준이었던 것 같다. 고3 겨울, 가까이 지냈던 깜씨라고 불리던 동창이 학교 스케이트 반에 인원이 없다고 나보고 졸업 앨범 사진에 사용할 스케이트 반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해서 가까운 친구 두어 명과 같이 건국대 연못에 가서 사진 찍어 졸업 앨범에는 스케이트 반으로 나왔다.
군대 가서 KATUSA로 서울 용산에 있는 미 8군 사령부 부관부 행정실 번역반에 근무하면서, 한 막사에서 미군 25명과 카투사 5명씩 같이 살았다. 언젠가, 드디어 1마일 뜀뛰기에서 나보다 더 잘 뛰던 미군 한 명에 뒤를 이어 나는 2등을 했었다. 이것으로 운동의 목표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한 운동은, 운동 자체를 위하거나, 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남한테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것은 내 체력이 현저히 좋아졌다는 것을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학생 때부터, body building은 계속했고 이것은 군대 있을 때뿐 아니라, 직장 생활하면서도, 거의 끊임없이 지속해 왔었다.
고등학교 때는 또 “영어 회화”반에도 들었었는데, 그때 영어연극을 한 적이 있어. 춘향전을 했는데 담당 선생님이 예쁘고 자그마한 젊은 선생님이었지 (영어 연극인데, 왜 춘향전을?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고). 나는 춘향이도 향단이도 아닌 “prompter”였지. 굉장한 경험이었어. Prompter 였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나오는 대사를 다 외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무용 수업이 있었지. 무용선생님 이름이 김정욱 선생님으로 나이가 드신 분인데 꽤 이름이 날리신 분이셨어. 우리가 졸업 후엔 대학교 교수님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용부 아이들은 나중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발표회도 하기도 했지. 우린 무용시간에 “브루마”("사루마다" 같이 생겼는데 넓적다리에는 고무줄로 주름을 넣은 것)를 입었는데 입기 싫어서 곤욕을 치렀지. 그래도 발레 기본 스탭은 그때 다 배웠어.
대학 입학 후 한 달 동안만 사교댄스를 교습소에서 배웠는데, 그때는 교습소가 있었어. 1960년대 초 사교댄스가 유행할 때라서 있었나 봐. 왠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언니들도 나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한 달씩 배우라고 했던 것 같아. 한 달 배워서 기본 스탭만이라도 배우라는 뜻이셨던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카바레에서 바람나는 여자들 얘기는 나보다 10년 이상 윗세대 얘기지 (1930년대 생들). 나보다 10년 위의 여성들은 6.25가 끝났을 때 20대 초반이었는데 내 나이 학생들보다 많이 개방적이고 활발한 여성들이었지. 오히려 10년 아래인 나의 세대가 훨씬 보수적이었어. 이 여성들을 “전(쟁)후파 여성”ㅡ불어로 “아프레 게르”라고 불렸는데ㅡ"전쟁 후의"라는 뚯이지. 모두들 잘못 알고 “아프레 걸”, 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고.
지금은 생각도 못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는 한강에서 수영도 하고, 또 겨울에 강이 얼면 스케이트도 탔어. 학창 시절 6.25 기념식 끝나곤, 한강에 (지금의 한강 인도교였던 것 같은데) 수영도 하러 가고 교각 밑으로 보트도 저어 가고 그랬지.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이지만.
한강뿐 아니라, 고궁 안의 연못에서 스케이트도 탔어. 나는 중1 때 스케이트를 덕수궁 연못에서 처음 배웠는데 (지금은 시청앞길 넓히느라 연못이 반으로 줄었지만), 그때는 칼날이 긴 롱스케이들을 탔지, 그래서 커브 틀 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대학교 땐 경복궁 안에 있는 경회루에서 신나게 탔지 (나, 잘 탔단 말이야).
그 시절엔 문화재 보호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던지 고궁 안에서 스케이트를 탔지만,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지.
대학시절에는 롤러스케이트가 막 유행하기 시작했었는데, 타다가 멈추기 아주 어려운, 쇠로 된 바퀴가 달린 것이었지. 가만히 서있어도 막 굴러가는 롤러스케이트였어. 시청 앞 광장에서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지금 조선일보 자리에는 실내 롤러스케이트장도 있었어.
수영은 고등학교 1, 2학년 때 정릉 풀장에서 친구들한테 처음 배웠지. 정릉과 우이동에 풀장이 있었어. 머리를 물에 박으니까 몸이 둥둥 떠서 신기했지. 그렇게 해서 지금도 할 수 있는 개구리 수영은 그때 배운 거야.
그 시대 부모들은 자기네 애들이 스케이트를 타러 간 건지 수영을 하러 간 건지는 다 관심이 없었어. 어느 집이나 다 그랬을 거야. 사고 터트리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기도 했고. 지금 학생들은 과외활동 모든 것이 부모의 허락하에, 보호 아래 하겠지만.
내가 학생 땐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을 가질 줄 몰랐고, 법이나 룰에 따르는 것은 당연했지. 부모님에 대한 건 절대적이었지만, 아주 민주적이었고 강압적인 것도 없었고, 부모님을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하지도 않았지. 다른 집들은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