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전국 배낭 여행, 수학여행
수학여행은 나 고등학교 때는 없었고, 대학 4학년에나 경주로 졸업여행 겸 수학여행을 갔다.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군대가 있거나 해서 친구 하나와 나 둘만 외톨이가 되어 매우 재미없는 수학여행으로 기억된다. 수학여행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전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셔서 임종도 못했는데, 당시에는 병원에서 돌아가셔도 집으로 모셔와서 장례를 치렀다. 나는 대학 4학년 2학기 등록금도 아버지가 해 주신 돈으로 냈으니까, 그 시대에 치고는 참 편한 학생 시절을 보냈다.
중학 3년 이후부터는, 여름 방학 때마다 호수가, 바닷가로 군대에서 쓰는 2인용 A텐트 갖고 캠핑을 다녔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고2 때 친구 다섯 명과 같이 덕적도에 갔던 것이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 1학년 때 친구 네 명과 같이 팔미도에 2주간 캠핑을 갔었던 것인데, 그것은 인천에서 통학하던 친구 한 명이 있어서 가야 될 섬들 가는 배편 등의 처리를 해 주어 가능했던 것이었다.
대학 2학년이 되자, 이제까지 다니던 여행보다 좀 더 규모가 크고, 다양한 볼거리, 놀이거리, 모험과 새로운 경험이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 졌다. 그러자면 우선, 전국 여러 곳을 들려야 하겠는데, 제일 먼저 차비 (기차/버스 등), 다음에는 도시에 들렸을 때는 숙박(여관비)이 문제였다. 가능하면 교통비는 최소한도의 차비로 올라타고, 어떤 방법을 쓰든 필요한 거리만큼 가보자는 무모한 생각으로 시작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각 도시에서의 잠자리는 그동안 낯을 익힌 상대생 중 시골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신세도 지고,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갖고 다니는 군용 A-tent를 사용하며, 끼니는 가능한 한 캠핑 때의 취사도구를 사용해 밥 지어먹을 각오로 떠나보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 같이 갈 친구는 고등학교 때는 친하지 않았지만 대학 와서 친해진 친구 두 명과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비록 대학은 다르지만 대학 내내 친히 지내던 한 명을 합쳐서 나까지 4명으로 정했다.
친구들은 몇 푼씩이나 갖고 갔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내 경우는 아마도 만리포 정도의 여름 바닷가에서 1주일쯤 캠핑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을 갖고 있었고 각자 그 정도의 돈을 모아 공용으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큰누나가 비상금이라고 준 그때 당시 제일 고액권 한 장 (지금으로는 5만 원 권이겠지만 아마도 그때의 고액권은 지금의 5만 원 가치보다는 적었을 것)을 셔츠 소매 끝을 접어 그 속에 넣고 꿰매 주어서 갖고 갔는데 그나마 쓰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 나중에 용돈으로 썼던 기억이 있다. 그걸 보면 정말 비상사태에 이른 적은 없었나 보다.
좋게 말하면 Back pack 여행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주 무모한 여행이었다. 남한 8도를 몽땅 섭렵해 보자는 취지였기에 교통비가 제일 문제가 되었는데, 우선 제일 가까운 역까지만 차표를 사고 나머지는 숨든지, 도망을 가던지 해보기로 하고, 또 그때까지 학교에서 낯을 익힌 시골친구들한데 신세를 지자는 심산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첫날 서울역에서 용산까지 가는 차표를 사서 올라타고, 중간에 차표 조사할 때는 옆칸, 뒷칸으로 피해 다니고, 변소에 숨어가기도 하면서, 평택까지 가서 기차에서 내려 철길 따라 도망치다가 밭두렁, 논두렁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여하간 도망 쳐서 나왔다. 아마도 대천을 첫째 목적지로 정해서 가능한 돈 내야 하는 버스비를 최소화 하자는 의도로 그곳에서 기차를 내렸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다음 날엔가 대천에 도착하여 텐트 치고 밥 지어먹고, 고교 동창으로 고대 럭비반에 있는 친구들과도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상대 교수 한 분이 가족과 피서를 온 것을 보고 인사를 했었다. 그날 밤 내가 배가 몹시 아팠는데, 그렇게 아픈 경험은 처음으로 금방 낫지 않아 대천 해수욕장 병원에 갔는데 아마도 급성 맹장염일 것이라는 진단을 받아서 밤이 새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결론을 내고, 너무 아파서 발을 펴지도 못하고 누어서 고생하다가 어찌어찌 새벽녘에 잠이 깜빡 들었는데, 아픈 것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동안 내 친구두명 (상대 친구)가 그 교수님한테 가서, 우리가 무전여행으로 왔는데 이 친구 (내)가 급성 맹장염에 걸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다고 말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후에 내가 멀쩡하니까, 교수님이 곧 우리 텐트로 올 거니까 빨리 아픈척하고 끙끙거리고 있으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들어 누어서 교수가 와서 들여다볼 때, 아픈 척했는데, 차비에 쓰라고 돈 몇 푼 준 것 갖고 좋다고 신나서 대천을 떠나 전라도 쪽으로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전주, 광주 지나 목포, 여수에 들러서 경상도로 향해 갈 때까지 주로 도시 근처 강가나 바닷가에서 텐트 치고, 밥해 먹으면서 지냈고, 실제로 전라도에서 상대애들 만나서 폐를 끼 친일은 없었다. 그럴 만큼 친한 전라도 친구들도 없었고. 전라도 지나 강(예성강 이던가?)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가 접한 강가에서 캠핑하며, 수영해서 건너가서는 “여기는 전라도”, 건너와서는 “여기는 경상도다”라고 소리치며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사실 이 강의 넓이가 꽤 좁았던 것 같았다.
부산까지 가서야 같은 상대 친구중 한명의 집에 갔는데, 자기 방에서 같이 잠자고 저녁, 아침밥을 얻어먹었는데, 그것이 유일한 친구 덕 본 케이스였다.
대구로 가면서 해인사에 들렸는데, 그때까지 버스에 올라타서 버스값 "깎아달라"라고 하고 아니면 "조금만 그냥 태워달라"라고 우긴 것은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저지른 부끄러운 과거였다. 해인사에 들렸으니, 팔만대장경을 봐야 되는데 그걸 보관하는 건물이 별도로 있고, 그곳은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는 건방지게 "국립 서울대학 학생들이 교육목적으로 국보를 보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라고 하면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금방 2-30명의 젊은 승려들이 몽둥이 들고 우리를 둘러쌌다. 그때에도 그 절에는 200명이 넘는 승려들이 있던 곳이라 잘못하면 크게 당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돈 내고 보았다.
그 이후 두서너번 해인사 들렸어도 다시는 들어가서 대장경은 본 적이 없다.
경주에 가서는 점심을 사 먹을 수밖에 없어서 추탕을 시켜 먹었는데 그때까지 추탕이라고는 신설동 형제 추탕 밖에는 먹어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탕 속에 미꾸라지는 보이지 않는 걸쭉한 된장국이 추탕으로 보이지 않아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추탕 (기타 지방에서는 추어탕)이 만들고 끓여 먹는 방식이 지방마다 다르다는 것을 몰랐었을 뿐이었다.
경주 불국사 들러 석굴암 돌아보고 내려올 참에 불국사 앞에 검정 지프차가 서있는데 그 번호판이 보통 번호판이 아니고 무궁화 같은 무늬가 있어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차 주인이 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그냥 들여다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차 주인이 혹시 검찰청과 관련이 있냐고 묻길래 "아니오 나는 그냥 대학생이요"라고 대답했는데도 내 이름을 묻길래 가르쳐 주었더니, 나를 무슨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후에 당시 검찰 총장이 조 씨였지- 나를 그 사람 동생쯤으로 착각했던 것 같아) 말씨가 금방 사근사근해지면서, 경주 시내까지 태워다 준다고 하고, 형님한테 잘 말씀드려달라고 해서, 작은 지프차에는 우리 네 명이 다 탈 자리가 없어서 나만 그 차를 타고 내려왔다.
후에 생각하니, 당시 이승만 대통령 양아들 이강석의 행세를 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스캔들도 처음에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어떤 특혜를 원했다면 그 사람도 나를 하늘같이 모시고 필요하다면 금전이나 어떤 혜택도 제공했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경주에서 무전여행을 끝내자고 결정하고, 서울로 돌아올 때는 정식으로 기차표를 사서 타고 올라왔는데 그러고도 돈이 좀 남아 마지막에는 남은 돈을 약간씩 나누어 가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 모험적이지도 않으며 남에게 권하고 싶은 경험은 아닌 것 같아도, 오랜만에 그때 그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담으로 서로 웃으면서 기억을 했는데, 그중 친구 한 명이 금년 봄에 저 세상으로 떠났고, 나머지 두 친구도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으니 그 이야기도 곧 끝날지 모른다.
지금 젊은이들이 얼마간 저축했다가 국내나 해외로 back-pack 여행하는 것 하고는 그 질이 다른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런대로 젊었을 때의 추억으로 남긴다는 생각으로 간직하고 있을까 한다.
우리는 고 3 때 수학여행 간 것이 기억난다. 그 당시는 고3, 봄에 경주에 수학여행을 가곤 했지. 그때 여관 이름 안동 여관 (왜, 이런 거를 기억하고 있지?)이었던 것이 생각난다. “Teen Canteens” 이란 AFKN 프로에 춘 춤이 그때 유행한 Twist 춤인데 고3 때 경주 수학여행 가서 방에서 모두들 이 춤을 추고 그랬어.
중3 때는 여주와 강화도. 전등사 밑에 있는 여관에서 잤는데 아침에 여관에서 싸준 김밥을 들고 마니산에 올라갔지. 무지 높았던 기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