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60 공부, 대학 진학

공부 방법, 대학 진학, 학과 과목, 미팅

by BeyonJ



나는 나 자신이 공부하는 머리가 좋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입학 전 그러니까 6살에 1년 정도 서당에 가서 천자문을 배웠는데,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고 그냥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누르 황... 했던 기억밖에는 없다.


국민학교에서는 원주에서든 서울에서든, 또 피난 나가서 든, 그냥 한 반에서 보통 3등 내의 성적을 받았었다. 피난 중 제천에서 중학교 입학해서 2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도 그냥 공부는 꽤 잘하는 편에 속했었다.


환도 후 경복중학교 2학년 2학기에 전학 와서는 그 당시 환도하는 학생 수는 엄청 많고 수용할 수 있는 교실은 한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내가 들어갈 때 내 반에서 내 번호가 112번이었고 한 달 지나니까 125번까지 되어 할 수 없이 반을 나누어야 할 정도까지 되었다. 애들은 드나들 만한 틈새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제책상 남의 책상 위로 뛰어 드나들고, 학생들은 선생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말 안 듣고 이리저리 밀치고 뛰고 난리 법석이여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이놈들이 도무지 공부하는 놈들인가 의심했었는데, 막상 2학년 말 성적표를 받아보니, 그런 정신없는 놈들 중에는 우등 (평균 90점 이상)을 한 애도 있고 80대 상급을 한 애들도 수두룩한 것이었다. 반면, 내 평균 성적이 68점이라는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점수를 받아서 크게 부끄러워, 반에서는 물론 집에다가도 비밀로 부치고, 이런 치욕을 얼른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렇지만, 특별한 공부 과정을 거친 적은 없이, 3학년부터는 남에게 부끄러운 점수는 면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 3 때 드디어 3학년 전체 8 반중 전체 성적이 가장 좋은 3학년 4반에서 1등, 그리고 우리 반에서 단 한 명의 우등생 (평균 90 이상)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특별히 혼자서든 아니면 다른 학원에서든 학교 수업시간 외에는 공부한 적이 없었는데도 그런 성적을 낸 비결 단 한 가지는 나는 공부시간에 딴생각에 빠지지 않고, 선생이 가르치는 것을 열심히 듣고 그날 수업 내용을 꼭 이해하고 지냈던 것뿐이다.


나에게는 학교 수업내용의 중요성과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듣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계기가 있다. 국민학교 5학년 초에 한국전쟁이 발발 할시, 막 분수를 배울 때가 되어 시작도 못한 시점인데 피난 나가서 유구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작은형이 내 공부를 준비시킨다고, 내 셈본 (산수) 책을 펴고 분수에 대해서 나에게 가르쳤는데, 도무지 2분의 1, 3분의 1의 정의도 모르겠고 분수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하겠었다. 형이 큰소리로 가르치다가 내가 모르면 신경질 부렸는데 그러니까 더욱 이해를 못하겠더라. 빨리 이 시간이 지나고 밖에 나가 동무애들하고 놀면 이 세상 평화가 빨리 오겠지라는 생각만 들더라.


그런데, 드디어 유구 국민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첫날 셈본 시간에 분수에 대한 선생의 설명이 있었는데, 대번에 이해가 되고, 최소 공배수, 최대 공약수가 금방 배워지더라. 그래서 나의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의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개인 교습, 학원 교습에 대한 비능률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내 신봉을 굳혀 왔다.


대학에 지원할 때, 전공과를 선택할 때의 나의 기준은, 자신에게나 남에게 보이기에 창피하지 않은 전공이면서도, 신나게 놀 수도 있는 전공이 무얼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 경제학과를 지원하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초, 중, 고 까지는 공부라는 것이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단, 대학이나 그 이상의 공부는 선생이 가르쳐 주는 것 만으로는 분명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진짜 공부는 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대학 시절부터는 완전히 공부에서 손을 뗐다.


대학에 가서의 공부는 단순 암기, 순수 기억, 혹은 딴 사람이 연구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혼자서든, 남의 도움을 받고 정말 말대로 study 하는 것이라야는 것이 내 지론이다.


대학 가기 전의 학생들이 학교 수업 외의, 개인 교습, 학원 교습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사용하고, 효율도 낮고, 애들은 물론 부모까지 몸과 마음이 힘들게 하는 것은 잘못된 교육열이고, 고쳐야 할 교육 방법인 것으로 믿는다. 초, 중, 고 때에는 학교 수업/공부 시간은 최대 6시간 정도 이면 충분하고, 나머지 시간은 건강에 신경 쓰던가 다른 취미를 개발하던가 이후 인생, 생활에 필요한 기능 습득이나 아니면 단순 놀이를 하던가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대학 이전까지는 학교 수업만으로도 공부하고, 대학 이후 본인의 의욕에 따라 정말로 연구하는 체제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중, 고 때 배운 과목으로는 국어, 영어, 수학(기하, 대수), 도덕, 사회, 물상(중), 물리(고), 지리, 국사, 세계사, 미술, 수예, 재봉, 무용 등이 있었고. 또 교과목 중에 음악, 불어( 독어반도 있었음), 생물도 있었다.


중, 고 때는 교정이 작은데 테니스코트로 쓰는 바람에 조회 설 때 외에는 운동장을 가로 건넌다는 것 절대금지였지. 그때 받은 교육으로 지금도 어떤 교정에 가든지 그런 행동은 안 하고 있다. 한쪽 옆에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는지, 가을에 감이 많이 매달릴 때는 감을 주제로 한 시도 쓰게 하고 그랬어. 그때는 배구가 인기 종목이었는데, 9인 배구를 했었다. 학교 뒷마당은 배구코트로 사용했지.


내가 학창 시절에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지금처럼 컴퓨터는 물론이고 타이프 라이터도 대중화 되질 않을 때이니까 속기사가 인기 종목이었지. 영문 속기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그때 영문 속기학원이 많이 비쌌어. 그래서 책을 사서 혼자서 공부했는데, 역시 나는 끈기가 없어서 하다가 말았다.


또, 나는 불문과에 꼭 가고 싶어서 고3 때 퇴계로에 있는 “알리앙스”라는 불어 학원에도 몇 달씩 다녔단다.


내가 대학입시 때는 우리 때와 우리 윗 학년 때, 2년만 대학 시험 볼 수 있는 연합고사가 있었는데 시험이 아주 어려워서 5, 60% 정도만 붙었어. 그래서 내가 지원한 대학도 반수 이상이 미달이었지.


그래도 몰리는 과는 많이 모였지 내가 응모한 불문과는 4:1이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5명이 가서 나만 떨어지는 불운을 겪었지. 나는 막 울고 재수한다고 고집부렸지만 엄마께서 미달인 우리 과에 넣어서 할 수 없이 입학했지. 그렇지만 대학생활은 그런대로 재미있게 잘 보낸 것 같아. 대학 교정엔 봄이면 목련꽃이 정말 많았고, 가을에 코스모스가 기가 막혔어. 그렇게 많은 꽃을 처음 보았어. 언덕이 많아서 강의실 가려면 운동이 저절로 됐지.

그때도 학교 식당은 있었는데 거의 안 갔어. 메뉴가 별로였던 것 같았으니까. 지금처럼 다양했으면 자주 이용을 했을까?


대학 때는 국어(교양과목으로 어느 과던지 2년 동안 들어야 했고), 체육도 마찬가지로 교양과목으로 모든 과 학생들이 다 들어야 했다. 기독교 학교라서 채플도 9학점은 꼭 들어야 했고, 그 외는 전공과목들이었다.

우리 과는 이과에 속한 학과인데 내가 들어갈 때 처음 생겼어. 몽땅 1차에서 떨어진 애들이라 다 머리들은 좋았지. 그런데 과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같아. 배우는 과목도 어려웠어 해부학, 위생학 이런 거였거든 연세대 의과대학 시체실에서 시체해부 같은 거 해보고… 지금도 무섭다!!


대학 때, 1, 2학년까지는 교양과목으로 국어, 체육시간을 일주일에 2번은 꼭 들어야 했지. 지금도 기억나는데, 국어시간에 (여러 학과가 같이 들음) 출석을 부르는데 “지화자” 하고 불러서 우리가 몰래 많이 웃었어. 지화자라는 이름의 학생이 있었단 말이지.


일주일에 3번은 대강당에서 12시부터 30분간 꼭 채플을 들어야 했는데 (9학점) 많이 빠져서 학기말에 조교 쫓아다니면서 출석으로 해달라고 졸라댔지.


1학년부터 5월에 데모가 시작됐는데 (한일 국교 반대 데모- 그때까지는 일본과 국교가 없었거든). 그래서 데모를 막으려고 방학을 일찍 해버리곤 했어. 우리 학교는 2학년 때부터 데모에 참가했지만 나는 그런 거 하고는 관심이 없었어. 3학년 때에는 여학생도 막 잡아가고 라디오에서 방송하는데 내가 늦게까지 안 들어와서 집에서 찾아다니고 난리가 났었는데 나는 미안하게도 영화 한 편 보고 집에 와서… 아마 야단맞았을걸.


4학년까지 조기 여름방학을 했으니 그 시절에 학교에서 뭘 충분히 배웠겠니.


경무대 옆 전차 종점에서 전차 타고 광화문에서 신촌가는 버스 갈아타고 학교 갔지. 그때는 신촌이 종점이었고, 신촌 이상은 버스가 없었으니까. 홍익대학 다니는 애들은 신촌서부터 걸어갔지. 내 친구 하나가 미술을 잘해서 서울대 지원했는데 떨어져서 홍대를 갔어, 그래서 그때 그 학교에 가봤는데 그때는 완전히 시골이었지. 이 친구가 오드리 헵번을 그려줘서 한참을 갖고 있었는데.


나의 대학시절에 그룹 미팅이 첨 생긴 것 같다. 입학하던 해 봄에 서울대학 신입생 전부와 우리 대학 신입생 전부와 창경원(창경궁)에서 무작위로 단체 미팅이 있었어. 전무후무했을 거야. 우린 그냥 친구들과 몰려다닌 것 같아. 별로 기억이 없는 거 보면 재미없었나 보다. 우리 과는 아니지만 그때 거기서 인연이 돼서 결혼까지 한 애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1, 2학년 때까지만 하지, 3학년 되면 미팅 초대도 안 왔지.


또 기억나는 건, 대학 때 월남전이 한참이었을 때라, 남자 친구가 월남전에 간 애들도 있었어. 월남전 참가한 남자 친구가 보낸 편지를 보자고 놀리기도 하고 했지. 6,25 때 미국 청년들이 우리나라 참전한 것과 상관관계도 있고 또 우리나라 군인들이 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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