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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Oct 26. 2020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모두 동화에 나와 있다

어른들에게도 동화가 필요하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

 

 <3부 책>

 며칠 전 마음이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마음이 힘들다 보니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말고 ‘빨간불에는 건너면 안 돼.’ ‘물건을 살 때는 돈을 내야 돼.’ ‘해는 동쪽에서 뜨지.’와 같이 당연한 말들을 듣고 싶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위로가 될까 생각하다가 ‘내가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말처럼 내가 알아야 할 당연한 말들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 다 나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난 책이 『모모』(미하엘 엔데)였다.


 『모모』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오래된 원형 극장 터에 정체불명의 소녀 모모가 나타난다. 모모는 옷차림도 허름하고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한 나이가 몇 살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은 그런 모모를 걱정했고 모두가 함께 모모를 보살펴주기로 한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모를 도와주기 시작했지만 점차 마을 사람들은 모모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모모에게는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갈등이 생겼을 때 모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모모를 찾아갔고, 모모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답을 찾게 되었다. 모모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모에게는 ‘시간’이라는 재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모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었고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과 즐겁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모모가 살고 있는 도시에 회색 신사들이 나타난다. 회색 신사들은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유롭게 사는 삶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며 목표를 정해서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이 절약한 시간을 빼앗아 목숨을 유지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행복함과 여유로움,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점차 기계처럼 일만 하게 된다. 모모는 행복을 잃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되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되찾아주게 된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모모』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배려하면서 경청하는 게 중요하다.’라든가 ‘시간을 아끼는 것보다는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게 중요하다.’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 흔한 메시지를 준다. 그런데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흔하고 당연한 말이 정말 맞는지 다시 물어보고 싶어 진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게 맞지? 내가 틀린 게 아니지?’라고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배려하지 않는 사람을 보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을 실패자 취급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끔 지칠 때가 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다행히 모모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게 맞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서 동화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게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릴 때 읽었고 사랑했던 이야기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책은 매일매일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준다. 살면서 책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일상이 힘들어질 때 책을 펼치면 책은 늘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해준다. 마치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모모를 찾으면 모모는 항상 그 자리에서 그들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동화의 단어들은 참 사랑스러운 말들이 많다. '아이들' '꽃' '거북이' 심지어 '악당'이라는 말까지. '책임감' '돈' '스트레스' '업무' '역할'과 같은 말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이런 단어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마음이 괜히 포근해졌다. 동화는 말 그대로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을 때 괜히 숨어 읽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가끔 동화가 필요한 것 같다. 아마 몇십 년 뒤에도 모모는 나를 기다려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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