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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를 끊었다.

엄마만 기억하는 시간.

by 한여름


아이와 따뜻하게 이어져있던 끈 하나가 또다시 끊어졌다.

우리는 함께 있었다. 한 몸인 채로 함께하다 10달을 채우고 만나는 날, 서로를 꼭 안아줄 수 있게 된 그 날, 제 할 몫을 다하고 끊어져버린 탯줄처럼 이제 더 이상 쓸모없어진 또 하나의 끈을 끊어낸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하고 말한 후 젖을 물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딱딱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처음 느끼는 고통으로 아파했던 날들, 모유량이 적어 걱정하던 날들, 모유를 거부하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같이 울었던 날들, 100일만 참아보자며 새벽마다 졸린 눈으로 유축하던 시간들, 젖을 빠는 아이와 장난치며 함께 웃음 짓던 시간들, 젖을 문 채 잠이 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땀에 젖은 머리를 몇 번이고 쓸어 넘기며, 따스한 발을 만지작 거리던 시간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새벽 첫 수유가 너무나도 힘이 들어 아이와 함께 누운 채로 잠결에 수유를 했었다. 그렇게 함께 꾸벅꾸벅 졸면서 나는 모자란 잠을 아이는 주린 배를 채웠다. 그렇게 특별하고도 소중했던 생애 다시없을 그 시간을 뒤에 두고 11개월의 모유수유를 마무리한다. 왜 이리도 허전한 걸까. 아이를 품 안에 꼭 안아서 재우면서도 젖을 물린 채 꼭 안는 때와는 분명 다르다. 볼을 비비적거려 보기도 하고 있는 힘껏 꼭 껴안아도 보고 온 얼굴에 뽀뽀도 하고 아무리 진한 스킨십을 해보아도 그렇게 친밀한 행위는 다시없으리라. 어쩌면 그 시간은 배를 불리는 시간이 아닌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와 나의 마음에 사랑을 가득 채우는 마음의 식사시간. 그리고 어쩌면 나의 영역표시 같은 것일지도.. '너는 나의 아기고, 나는 너의 엄마야.’ 같은 것 말이다.


몸무게는 자꾸만 줄고, 날이 갈수록 더욱 말라가는 나를 안타까워하시는 친정엄마를 보며, 이제 그만해야지 그만해야지 하던 게 여기까지 와버렸다. 금세 적응해가는 아이와 달리 질척대는 쪽은 언제나 나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그 소중하고도 따뜻한 시간을 보내지 못해 질척대는 중이다. 주변에서 들었던 말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쿨하게 젖을 떼는 아이에게 어째서 너는 울고 불고 젖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진심으로 가슴 깊이 섭섭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애착형성이 잘 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매일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는 엄마가 아니라면 벌써 끝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끝이 났는데도 질척대는 엄마가 안쓰러워 모른 척 한번 물어주는 지도.

엄마가 되면 아이의 건강에 관한 모든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굉장히 예민해지는 것이 '엄마'라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안에서 길렀고, 내 안에서 나왔으며 내 온몸으로 먹여낸 시간들 때문에 아마도 그러하리라. 조그마한 생명에게 내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그 10달과 똑같은 질량의 조건 없는 사랑. 거저 주는 사랑. 그것이 ‘모유수유’라는 이름의 엄마의 또 한 번의 사랑이다. 아이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이를 끝없이 품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부터 쭈욱,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이며 아이는 엄마의 모든 것이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리 된다.

품 안에서 조그마한 것이 꼼지락거리며 쪽쪽하고 강하게 빨아대는 입술과 그 입술의 온기에서 전해지는 강인한 생명력. 때로는 간절히 때로는 장난스럽게 추는 춤. 우리 둘만이 아는 오직 둘만의 춤. 그 춤을 이제 더 이상 출 수 없게 되었지만, 따뜻하고 따뜻하고 따뜻했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그 시간을, 우리가 함께 안고 뒹굴며 먹고 자며 웃던 이토록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혼자만 기억하게 되어 속이 상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더욱 귀하게 고이고이 간직하려 한다.

- 아직도 매일 '한 번만 더 먹을래?'하고 묻는 ,
내 아이와의 또 하나의 시간을 정리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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