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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Oct 27. 2020

17개월, 아이의 마지막 분유를 타고.

너의 자람을 아쉬워하지 않도록


아이의 마지막 분유를 탔다.


마지막 분유를 샀을 때부터 아니 정확히는 마지막 분유를  사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이미 한없이 쓸쓸했다. 16개월의 끝 무렵까지 사실 17개월이 되기 딱 이틀 전날까지 오래도 먹였다. 12개월의 영유아 검진에서 만난 의사는 돌이 지나면 차츰 분유를 끊을 준비를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지만, 모른 체하고 싶었다. 벌써 분유를 끊다니, 아직 아기인데... 문화센터를 통해 알게 된 친구가 "내가 간 병원에서는 18개월까지는 먹어도 괜찮다고 했어요"라는 말이 훨씬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렇게 꾸역꾸역 분유를 샀다. 이미 둘째를 키우는 친구는 "너네 아이는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저리도 튼튼한데 굳이 18개월까지 먹일 필요가 있을까?" 하고 되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체했다.

돌이 지나면 다들 버린다는 젖병의 젖꼭지도 15개월까지 썼다. 누워서 입술을 쭉 내민 채 쪽쪽 분유를 빨아먹는 모습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빨대를 잘만 빠는 아이에게 그리도 오래 젖꼭지를 물렸다. 낮에 우유를 줄 때에는 빨대로 주면서 꼭 밤 분유만은 젖병에 젖꼭지를 꽂아 물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이의 아기스러움을 담고 싶어서 조금 더 그대로 두고 싶어서 미루고 또 미뤘다. 16개월이 되어서야 젖꼭지를 버리고 젖병에 빨대를 꽂아 분유를 주었는데 이번에는 젖병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면서 분유를 먹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결국 17개월이 다 되도록 젖병에 분유를 주고 말았다.

어느 날, 아이가 수시로 먹는 것( 물병이라던지, 마시다만 우유라던지 하는 것들)을 올려두는 작은 테이블에 다 먹은 젖병을 '척'하고 올려두는 것을 보고는 그 순간 깨닫고야 말았다. '아, 이제 정말 분유를 끊어야 할 때가 왔구나.'

아이는 매일 자라고 있다. 그 '자람'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절대 막을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엄마인 내가 아이의 '자람'을 지연시키는 자가 되어선 안되기에 사랑스러운 아이의 분유 먹는 모습을, 아이에게서 나는 사랑해마지않는 분유 냄새를 가슴에 고이 담아 두기로 했다.

언제까지고 제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시간들이 있다. 출산을 하고 갓난쟁이를 집에 데려와 눕혀놓고 보내던 시간들이 그랬다. 아이는 늘 누워 있었고, 먹었고, 잠을 잤다. 그때의 그 작은 생명체가 사랑스럽게 꼬물거리던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랬다. 하루가 똑같이 반복되었고, 아이는 늘 내 품에 있었다. 눈을 뜨면 여전히 작고, 여전히 사랑스러웠으며, 여전히 꼬물댔다. 그때의 하루하루가 아직도 손에 닿을 듯 지척에 있는 듯 느껴지지만 소중한 시간일수록 더욱 소리 없이 기척도 없이 지나가버린다. 손에 닿을 듯하지만 벌써 1년 전 일이니 말이다.

아이의 모유수유를 마쳤을 때도, 내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걷게 되었을 때도,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지금처럼 분유를 끊을 때도 대견하고 기쁘면서 한편으로는 한없이 서운하고 공허하다. '기쁘고 속상해'라는 말이 문장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딱 그랬다. 마지막 분유를 탄 나의 지금의 기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쁘고 속상하다.

앞으로도 아이에겐 많은 처음이 있을 테고, 또 그만큼의 마지막도 있으리라. 그럴 때마다 서운해하고 그럴 때마다 공허해 할 수는 없다. 그 자리에 언제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그저 나만이 기억할 아이의 분유 냄새와 아이의 아기스런 몸짓들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고 이따금씩 꺼내 보면 된다. 아주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아쉽지만 그만큼 더 애틋하게 오늘을 사랑하면 된다.


.
축하할게. 너의 또 다른 마지막을.
엄마가 다 기억할게. 너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엄마는 한걸음 뒤에서 따라갈게. 한 발짝 뒤에서 응원할게. 너무 늦지 않게, 너무 빠르지 않게.

 

알맞은 거리에서 너를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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