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부조리, 사회의 부조리
"그러나 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단순한 것은 없었다.
가난도, 갑자기 생긴 돈도, 달빛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의 고른 숨소리마저도..."
흑백의 배경에 낭만적으로 그려진 파리의 밤. 압축적으로 그려진 표지가 참 아름다워 보였던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서전을 읽고, 그의 작품 세계에 막연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처음으로 읽고 싶었던 책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다. 그러나 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아쉽게도 대여를 할 수 없었고, 다른 책들을 읽으며 낭만적이었던 파리에서의 밤은 서서히 잊혀 갔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내려간 도서관에서 신간 도서 코너에 꽂혀 있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견했다.
절망에서 도망쳐 '사랑'에서 구원을 얻으려 했던 인간이 '운명'이라는 폭력 앞에 무너지는 이야기
출판사 서평으로 이어지는 결말을 읽으며,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캐서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더릭에게 사회의 부조리인 '전쟁'은 고통이자 회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전쟁의 이전에는 진정한 '사랑'이 그러한 존재였고, 어쩌면 사랑으로 대표되는 '진심을 다하는 삶'이 그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프레더릭은 본질을 마주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캐서린을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에게서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마주하고 프레더릭에게 그것을 일깨워주려 한다. 전쟁 이야기를 거부하는 프레더릭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캐서린의 모습은 그녀가 가진 삶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20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인생을 산 나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삶은 부조리 그 자체였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묘사된 전쟁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작은 사회는 늘 부조리했다. 태생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지는 못하는 비관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런 시선을 거두고 보더라도, 내가 살아온,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러한 크고 작은 부조리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외면을 선택한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는 없고, 저항할 힘은 없기에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초인적인 힘을 가진 비범인이 이 부조리를 타파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믿어버린다.
그러나 세상을 바꿔온 것은, 나를 둘러싼 사회를 직시했던 작은 힘들이다. 전쟁 이야기를 외면하여 그를 인정해버린 프레더릭과 달리, 전쟁의 부조리를 깨닫고 종전을 주장한 징집된 농민들, 신분 차별의 역설을 깨달은 백성들, 독립의 필요성을 느꼈던 민중들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나의 삶과, 나를 둘러싼 나의 사회를 한번 직시해보자.
그로부터 진정한 삶을 살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