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교환을 시작하며
영국 교환을 시작하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왜 하필 영국이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이유로 영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았던 부류는 영국 축구를 좋아하거나 해리포터를 좋아한다는 이들이었다. 이외에도 셜록홈즈를 사랑해서 선택했다는 친구나 독특하지만 윔블던 경기를 보고 싶어서 오게 되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영어를 첫 번째 언어로 쓰는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에.
물론 대륙 철학의 중심이자 니체의 고향인 독일, 실존주의의 온상지인 프랑스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국만 해도 학교가 20개는 되는데 독일 프랑스까지 다 고려한다면 평생 교환 지원은 요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일단 영국으로 결정한 뒤 그 안에서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늘 수백 가지 생각에 가득 차 있는 나는 이렇게 별 것 아닌 이유로 어려운 결정들을 치워버리곤 한다.
이런 방식은 빠른 선택을 가능하게 해 주지만 나중에 그 선택의 과정에 대한 후회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나는 영국에 온 뒤 때때로 '영국' 자체가 나에게 맞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 조금도 고려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후회하곤 했다.
그 어떤 환상도 없이 시작한 교환생활은 예상보다는 삭막했다. 한달간의 유럽과 극명한 비교를 이루는 영국의 우울한 날씨, 그리고 삭막한 도시 풍경을 견뎌야 할 이유가 적어도 나에게는 없었다. 물론 런던이 아니라 '리즈'였던 것도 하나의 영향이 있었겠다만 날씨는 런던이나 리즈나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부족한 것은 확실히 불편했다.
항상 '목적'을 위해서 인내했지 아무 이유 없이 인내해본 경험은 없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그 날씨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였고 나 역시 꼭 아름다운 날씨에만 행복한 것은 아님을 배웠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생활이기도 했다. 가끔 내리쬐는 햇살은 한국에서와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주었고 목적으로부터의 해방은 진정한 자유를 주었다.
그러니까 이 일기는 여행기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떠남이 아닌 돌아옴에 방점이 있는 영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일기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속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영국 도시 이곳저곳을 여행한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영국에서의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플랫메이트와의 시간, 거리를 따라 놓인 마트를 걷는 시간, 그리고 회색 도시의 풍경까지도. 그러니 영국에서의 여행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는 그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꼭 영국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었음에도 영국 생활에서 어떻게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목적론적 인생이 너무나 당연했던 과거의 내가 조금씩 좁은 시야를 벗어나게 된 시간의 역사에 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