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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곳에서 주저앉아 울었던 적도 있다.

암 요양병원 들어보셨나요?

by 하정 Mar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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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을 받고 나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항암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에 암을 겪으신 분이 안 계셔서 막연한 두려움에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차에 암 요양병원 이란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환우분들이 항암 중에 입원을 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관리하고 식사도 잘 챙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진단받고 한 달 이상 대학병원 진료를 기다리면서 나는 암 요양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병원의 실장님께서 병원을 안내하기 위해 나오셔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병원의 여러 시설과 입원하면서 먹게 될 식단 사진들을 보여주셨다. 그리 고난 후 여러 가지 편의시설을 보여주시겠다고 잠시 상담실을 나와 병원 식당을 지나치게 되었다. 식당을 지나치는데 비니를 쓴 수많은 환우분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나는 그때 잠시 충격을 받았다. 이제 내 자리가 저기구나. 곧 나도 항암으로 비니를 쓰게 되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머리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앉아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픈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항암 하기 싫었다. 내가 왜 무엇을 그렇게 잘못을 해서 이 젊은 나이에 병원에 들어와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은 정말 많이 울었다.


항암 1차를 하면서 열이 나서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렇게 1차는 집과 대학병원에서 지내며 지나가고 2차는 주사를 맞고 집에 머물렀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집에서 식사를 챙기며 지내보려 했었다. 하지만 장염으로 배탈이 심하게 나서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기어 다니면서 집에서 지낼 순 없다는 생각에 요양병원에 입원문의 전화를 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입원을 하니 마침 유방외과 전문의께서 담당 선생님이라 맘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진료를 보고 나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장염으로 식사를 못 하니 수액을 맞았고 컨디션이 호전됨에 따라 그에 맞는 식사가 제공되었다. 요양병원에 가기 싫다고 울면서 통곡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처음 병원 입원은 정말 싫었던 일이다. 온몸으로 나가 환자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내 스스로가 그걸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할까? 입원을 하고 크게 숨을 한번 쉬고 주변을 보았다. 처음에 병원에 왔을 땐 그들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암진단 후에도 그들은 아픈 환자들이고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경계를 나누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와 그들에겐 모두 아프지 않았던 역사가 있다. 우린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입원으로 암환우 친구가 많이 생겼다. 우리는 함께 아팠다. 같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이야기를 하며 너도 그랬구나 너도 그랬구나 아픔을 나누었다. 난 투병기간 많은 환우 벗들과 함께했다. 누군가 온전히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경험을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크고 위대한 경험을 했다.


항암 8차 후 수술하고 나서는 한동안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당연히 기차는 무리였다. 그래서 집이 지방이었던 나는 본 병원 인근에 있는 요양병원에 잠시 머무르며 수술 후 외래진료를 받기로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병원에서의 하루는 마음이 외롭지 않았다. 입원하고 이틀인가 지났을까 비어있던 옆 침대에 새로운 환우분이 오셨다. 급히 암 진단 후 수술을 먼저 하고 항암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분이셨다. 긴 머리가 예쁘셨다.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셨다.


"여기는 스님분이 많이 입원해 계시네요? “


그날 나는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그때 요양병원의 병원복은 회색이었고 다들 비니를 쓰고 있으니 스님인 줄 아셨다고 한다. 그렇게 웃으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조심스럽게 건넸던 그 표정이 떠오르면 웃음이 난다.


맞다.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 나는 나와 그들의 경계를 나누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암 진단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겠지? 조심스럽게 한발 내디뎠더니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워졌다. 주저앉아 울었던 그곳에서 가기 싫다고 울먹였던 그곳에서 어느새 나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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