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으니까
오늘 점심은 우리 맛있는 거 먹자. 배달 음식.
줌(Zoom)으로 수업을 대체하고 있는 남편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집에 있다. 이제는 삼시 세 끼를 함께 하는 사이. 그리고 육아를 더욱 진하게 함께 하는 사이.
오늘은 오전부터 내 컨디션이 삐그덕 삐그덕 하더니, 점심에는 기필코 배달 음식을 먹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다짐은 언제나 남편에게 유효하기에 이번에도 이견없이. 그래 그러자!
오랜만에 먹는 반반 피자는 맛있었다. 쉬림프와 포테이토.
아이는 눈을 번뜩이며 새우와 감자 토핑을 먹고 싶어 했다. 나는 피자 위에 수놓아진 새우와 감자를 쏙쏙 건져내 아이가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아이도 함께 먹으려고 시킨 피자이지만, 쉬림프 피자와 포테이토 피자에 쉬림프와 포테이토가 쏙 빠져 있는 피자라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며 피자를 먹을 때에도, 내가 가진 새우나 감자를 모두 주는 일은 없었다. 적당히 반반씩 나눠먹으면 되었지. 아이에게는 '적당히 반반씩'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내 것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나만 있을 뿐이다.
새우와 감자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피자는 피자니까. 남편과 나도 맛있게 먹었다. 셋 다 만족했으니 훌륭한 식사였다.
아이 낮잠을 재우고 나오니 심상찮던 컨디션의 이유를 알게 됐다. 바로 오늘이 생리 시작일이었다는 것.
남편은 내게 진통제 두 알을 주었고, 곧 저녁 수업에 들어갔다. 6시부터 9시까지 예정되어 있던 수업이었다.
아, 난 죽었다.
유난히 오늘은 기운도 없고 누워만 있고 싶은 기분이었기에, 남편 없는 3시간이 까마득했다. 하지만 남편이 건네준 약이 잘 들었던 것인지, 아이와 둘이 있어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인지, 아이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우리는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역할놀이를 하고, 노래를 듣고 춤을 추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온 남편의 메시지.
오늘 수업 1시간 단축. 내가 목욕시키면 되겠다!
수업을 단축한다는 말도 반가웠지만, 그 뒷말이 참 고마웠다.
오늘 유난히 힘든 아내의 컨디션을 배려한 마음 씀씀이. 그의 배려가 내 하루를 빛나게 하는구나.
평범하디 평범하게 흘러간 오늘이지만 그래서 더 감사한, 그리고 소중한 하루였다.
행복은 이토록 가까이에, 내 곁에 팔딱팔딱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