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고이 잠든 반바지를 꺼냈다. 오랜 잠을 깨우려 분무기로 칙칙 물을 뿌렸다. 바지를 탈탈 털고 두 다리를 끼워 넣었다. 거울 앞에 서서 앞뒤로 돌아봤지만 역시나 맘에 들지 않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든 멍, 모기에 뜯긴 자국, 자잘하게 터진 실핏줄, 메스가 지나간 자리가 눈에 거슬린다. 여름철 난든벌로 반바지를 입지 않는 이유다. *난든벌 : 드나들면서 입는 옷(캐주얼)
열 살 무렵, 처음으로 백화점에 갔다. 사라졌다 나타나는 돌고 도는 계단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도 안 타본 놀이기구를 타는 마음으로 까만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내 몸을 실은 계단이 위로 움직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반짝이는 조명을 보다 그만 발을 옮겨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뾰족한 모서리에 무릎이 콕 박혔다. 하얀 타이즈 사이로 끊임없이 피가 새 나왔다.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무릎에 빨간 약을 발라줬다.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움푹 파여 연고를 발라도 딱지의 딱지가 가시지 않던 곳. 몇 달에 걸쳐 힘들 게 아문 자리는 새끼손톱만 한 새살로 채워졌다. 상처가 아물고 온전한 흉터만 남긴 채, 종아리는 한 뼘 더 자랐다.
십 년 후, 엉덩이 아래 세로 5센티미터 흉터가 생겼다. 허벅지 안에 생긴 달걀만 한 혹을 떼 내려면 전신마취는 필수였다. “비키니 입어도 티 안 나게 예쁘게 꿰매 줄게요.” ‘반바지도 아닌 비키니라 …….’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옆에 있던 아빠가 머쓱하게 웃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속옷을 벗고 초록색 가운을 걸쳤다. 봉긋한 비닐 모자를 쓴 채로 차디찬 철 침대에 누웠다.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를 들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바람이 맨살을 파고들었다. 모공이 바짝 쪼그라들고 털이 곤두서더니 온몸이 덜덜 떨렸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발가락을 힘껏 웅크렸다. 곧 하얀색 액체가 튜브를 타고 정맥으로 흘렀다.
무의식과 의식의 중간쯤, 흰 가운을 걸친 무리가 흐릿하게 보였다. 웅성대는 소리 사이로 듣지 말았어야 할 말이 귀로 스몄다. “잘 봐둬, 열아홉 살 여자 몸을 어디서 감상하겠어.” 만 19세 환자가 아닌 관상용 마네킹이 된 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발가벗은 찰흙 덩어리에 불과했다. 버럭 소리를 지를 수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허벅지에 반창고를 바르며 침묵하는 간호사가 미웠다. 아니, 마취를 이겨버린 또렷한 내 청력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잘못 들은 걸 거야. 설사 진짜라고 한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 스스로 돼 내는 게 최선이었다. 난 무력했다.
어깨에서 팔까지 세계지도처럼 찍힌 화상 자국을 보고 여정이 말했다.
“그건 상처가 아니라 흉터예요.” (드라마 더 글로리 중)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동은은 고데기에 덴 흉터를 긴소매로 가리고 다녔다. 옷에 쓸려 진물이 나도 가려운 걸 참고 또 참으며 긴팔을 입었다. 우린 왜 흉터를 가리고 지우는 데만 급급한 걸까. 상처와 흉터의 차이를 곱씹어 봤다. 상처가 아픈 상태면, 흉터는 아픔이 지나간 자리 또는 새살이 돋아난 흔적이다. 상처가 아니라 흉터란 여정의 말은, 쓰라린 기억보다 새롭게 돋아날 삶을 바라보라는 응원이었을 테다. 상처를 안고 사는 것보다 흉터를 지니고 사는 게 훨씬 가벼우니까.
20년 전 기억이 허벅지 위 하얀 수술 자국처럼 선명하다.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비집고 나와도 여전히 흉터는 남는다. 아리게도 어떤 흉터는 상처를 그대로 품고 있다. 흉터 안에 스민 상처를 어찌해야 할까. 빨간 약을 바를 때 입으로 후후 불던 바람. 함께 아파하고 속상해하는 눈빛. 잘 때마다 덧 발라진 연고. 적당한 길이의 밴드를 고르는 손가락. 그런 것들이 있으면 조금은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