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부러진 것처럼 다리도 부러졌으면 했다

맞아, 그때도 혼자였네

by 아는이모

“어디로 가려고? 지하철 타려면 이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선배. 오늘은 그냥 걸어갈게요.”


또각또각. 부츠컷 청바지 안으로 보일 듯 말 듯 한 7센티 힐 따위는 문제 되지 않는다. 지하철 네 정거장 거리도 50분이면 충분하다. 이유는 다양했다. 바람이 시원해서. 배가 불러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노래가 듣고 싶어서. 발가락 위 물집도 하루 이틀이면 새살이 돋아나던 때 (지금은 한 달 전 물린 모기자국도 그대로다). 아이리버 MP3에 이어폰을 꽂고 캔맥주 하나를 들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이름 모를 해방감에 숨이 트였다. 홀로 걷는 시간만큼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끝없는 외로움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마셔라- 마셔라- 부어라- 부어라- 술이 들어간다.’




술로 소문난 동아리에서 술을 배웠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또는 민증(주민등록증) 나온 기념으로 호프집에서 마신 술맛이 아니었다. 쓴맛, 시원한 맛도 아닌 술은 내게 그냥 ‘無’ 맛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술잔이 비워지기를 바라는 무언의 압박을 못 이겨 삼켜버리느라 맛을 느낄 겨를이 없던 게 맞겠다. 머리가 핑 돌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혀가 꼬이기 시작하면, 이 좋은 걸 음미하지 않고 삼켰냐며 위장에 스며든 알코올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빈 술잔을 확인하는 무리가 취해 떠나면 나 또한 부리나케 편의점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350ml 딸기우유를 사서 집 근처 운동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스무 바퀴면 깨려나?’


딸기우유에 꽂힌 빨대를 씹으며, 운동장을 걷고 또 걸었다. 울었다, 웃었다, 욕했다, 취기를 빌려 한껏 쏟아내고 나면 달아올랐던 얼굴도 꼬였던 스텝도 멀쩡하게 돌아왔다.


이십 대 중반,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술잔을 채워주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선생님이 되어 학교로 떠났고, 나를 포함한 몇몇 남은 이들은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참된 스승이 되기 위한 소명의식 따위는 없었다. 나의 목표는 철밥통 직장에 시집까지 잘 간, 효도하는 그 집 딸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불합격을 딛고, 합격을 해야만 했다. 몇백 대 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체 모를 이론과 법령을 외우고 또 외웠다. 지금 이 공부가 신성한 교실에서 필요한 지식인지 의심하는 건 사치였다. 빼곡히 적은 글자가 머릿속에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다.


외운 걸 확인하는 시간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를 믿지 못하는 의심이 커갈수록 몸과 마음이 굳었다. 시간이 아까워 바나나 1개와 미숫가루로 끼니를 해결하길 수개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구역질이 났다. 먹은 것도 없는데 토하려고 악쓰는 내가 안쓰러워 화장실 변기 앞에서 울었다. 목 밑까지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 가득 찼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걸었다. 마음이 부러진 것처럼 다리도 부러졌으면 해서 혼자 걷고 또 걸었다. 딸기우유 대신 맥주 한 캔을 손에 든 채로.

그때의 난, 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단 걸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그만둘 정도로 힘든 게 어느 정도인지, 힘들면 어떻게 그만두어야 하는지 몰랐다.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이 정도 고통은 겪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에 무지할까. 정신을 놓을 만큼 취하고, 다리가 부러질 만큼 걸어야 고통을 잊는 걸까. 무리에 휩쓸려, 남들 눈에 보기 좋게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 일이라고 왜 미리 말해주지 않을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포기하고 참는 게 당연하다고 왜 함부로 말하는 걸까.

걷다 생각했다. 잘 살고, 잘 죽는 일은 수학 공식처럼 명쾌한 답이 없다는 걸. 다만, 정해진 답을 찾기란 어려워도 구멍을 메울 방법은 다양하다고. 시선에 압도당해 사는 사람은 자신의 빈 구멍을 찾느라 메울 생각은 하지 못한다고. ‘안정’이란 이름으로 행복을 덮으려고만 한다고.


혼자인 시간에서 만난 그 세상이 알려줬다.


자신을 잃어가는 데는 무감각해지지 말라고. 안정의 반대말은 불안이지 불행이 아님을.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불안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불안을 감싸 안을 이유가 우리에겐 얼마든지 있다고.


내면의 감각을 돌보고, 나에게 오롯이 집중해야 닿을 수 있는 세상이 있으니, 그 세상에서 널 돌보라고. 혼자인 시간에 엄습하는 칠흑 같은 불안을 이제는 반겨줘도 된다고.


편의점에서 여전히 2+1 행사를 하는 딸기 과즙 우유를 볼 때마다 텅 빈 운동장을 돌던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때도 혼자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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