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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32,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32.

- 렐리에고스에서 레온까지(24.6km)

by 지구 소풍 이정희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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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에고스는 알베르게만 몇 곳 있는 아주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느긋이 아침 7시 반경에 출발했다. 스페인 북부 최대 도시인 레온은 구경할 곳이 많기에 연박을 하기로 하고 호텔을 예약하여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레온으로 가는 순례길은 어제처럼 추수가 끝난 밀밭과 사탕 무밭, 옥수수밭이 번갈아 펼쳐있다. 큰 도로 옆을 걷는데 노란 나뭇잎들이 많아지며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가을아, 제발 천천히---'


 점점 아침 안개가 진해지더니 세상이 흐려지며 시야는 몽환적이다. 안갯속에 다가오는 자동차 불빛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주인공이 긴 코트 깃을 올리고 안갯속에서 걸어 나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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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순례자 조각

 다음 마을인 만시야 데라스는 어제 머문 시골 릴리에고스와는 달리 은행과 상가가 제법 크고 멋진 곳이었다.


 성벽이 보이고 마을로 들어가는 성문이 보였다. 성문 앞 로터리에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고뇌와 수행을 나타내는 조각과 벽화를 보았다.


"이 길은 고생길이야!"

"너는 왜 걷고 있니?"


카페 간판도 사색적?카페 간판도 사색적?

 사람들이 6km를 더 걸어 이곳에 숙박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어제 이곳에 머물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며 어제 아름다웠던 숙소를 벌써 잊어갔다.


 '변덕스러운 망각의 동물---'


  이 마을 역사에 대한 설명 안내판에 친절하게 QR 코드가 있어 찾아보며 성벽 돌길을 걷다 똥을 밟았다. 

 소똥인지 엄청 많아 왼발이 푹 빠져버렸다. 바로 뒤에 오던 외국 아저씨들이 좋아라 크게 웃는다. 어찌나 크게 웃는지 나도 따라 웃을 뻔했다.


 친구가 아침에 똥을 밟으면 운이 좋은 날이라며 레온에 가서 복권을 사라고 한다. 자기도 1달러 즉석 복권을 사서 10달러에 당첨된 적이 있었다며 속담이 꼭 맞는다고 위로를 한다. 또 결혼식 하는 날, 비나 눈이 오면 잘 산다는 속담을 말하며 주변 사례를 말해준다.


 나는 평생 복권을 산적도 없고 공짜가 생기거나 큰 요행이나 행운도 없었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지금이
큰 행운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속상한 일이나 나쁜 일도 좋은 속담으로 위로를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적절하게 들려주는 사람이 있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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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레온이!


 자동차 도로 옆으로 길이 이어지며, 눈앞에 있는 포르마 강 위의 비야렌테 다리(Puente de Villarente)가 나온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나는 여러 다리 중에서 독특하게 휘어진 모양과 20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 다리들과 많이 비교된다.


 지루한 아스팔트 큰길을 걷다 보니 세계적인 자동차 판매장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자동차 매장은 없었다. 스페인에 와서 우리나라 자동차를 별로 보지 못했다. 또 오지랖 넓게 우리나라 경제, 젊은이들 일자리까지 걱정이 된다.


 레온주의 가장 큰 도시 레온을 표시가 곳곳에 보인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길에서 대강 생장에서 브루고스까지는 1/3, 레온까지는 2/3 걸었다고 말한다. 길고도 아득한 길이었다.

 시내 입구 큰길에 성당처럼 보이는 관광안내소 건물이 특이하다. 앞면 지붕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새집이 눈에 띄었다.


 레온은 스페인 북서부의 최대도시이다.

 중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다리를 건너 현대적인 시가지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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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고 큐모가 큰 시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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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의 호텔

 좁은 거리의 오래된 집들 사이 울퉁불퉁한 돌길을 지나니 구시가지 광장 입구 200년이 넘은 커다란 건물이 호스텔 콰타르이다.


 '와! 개인실에 폭신한 하얀 면 침대와 전용 욕실이 있다. 이틀 밤의 행복이다!' 


 숙소 테라스 문을 여니 3분 거리에 있는 레온 대성당 옥탑과 빛바랜 건물들의 주항 색 지붕이 연륜을 나타내고 있었다. 오래되어 낡았는데 새것에게 없는 멋짐의 아우라가 있다.


 '백발의 미소가 빛나는 품위 있는 노인들처럼.'


  숙소를 나서면 광장의 노천 바와 술집에는 술과 전통 음식과 사람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저녁식사를 하려고 검색하니 8시에서 8시 반에 영업을 시작하는 식당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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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앞 광장

 스페인의 가게들은 영업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1시 반에서 5시까지는 점심 식사와 씨에스타 시간을 위해 거의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녁식사 후 대성당 야경을 보러 나섰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좁은 상가 거리를 지나 환하게 밝혀진 엄청난 규모의 레온 성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밤 8시가 넘어 레온 대성당은 문이 닫혀있고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당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고 있다.


'여행자 티를 내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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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지만 뭔가 아쉬워 가깝지 않은 부르고스 대성당보다 간결하며 힘이 있는 레온 성당이 더 오래 머문다.


 내일 낮에 다시 밝은 대성당 내부와 시내 투어를 할 예정이다. 역사와 문화에 자부심이 넘치는 레온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에 다음 날이 기다려진다.


산티아고 기다려♡


331km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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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깨어 먹기, 자두 줍기


한국 라면 얻어먹기한국 라면 얻어먹기


 순례길을 걸으며 길가에서 포도, 무화과, 블루베리, 산딸기를 따먹고 오늘은 호두와 자두를 주워 먹었다.

 그리고 저녁은 목포에서 오신 친절하고 잘생긴 아저씨가 끓어주신 유럽산 한국 너구리 라면과 신라면에 계란을 넣어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매일이 참 좋다


♡이런 내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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